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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쥐똥나무'라 불리는 사나이
'쥐똥나무'라 불리는 사나이
  • 강판권 계명대
  • 승인 2003.10.02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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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이사

강판권 / 계명대·사학

인간은 나무와 함께 할 때 가장 아름답다. 사람이 나무에 기댄 모습을 나타내는 한자 休에 '쉬다'는 뜻 외에 '아름답다'는 뜻도 들어 있는 것을 보면, 아름다운 모습과 나무는 뗄 수 없는 관계다. 그러나 사람이 단순히 나무에 기댄다고 해서 아름다운 존재일 수는 없다. 나는 몇 년 전부터 어떻게 하면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 수 있는가를 고민하면서 살고 있다. 아름다운 세상은 생명을 가진 존재가 행복하게 사는 것이다.

나는 그간 나무를 생명과 존재로 바라보기 위해 이 세상의 나무를 세다가 인간이 행복할 수 있는 한층 구체적인 실천 방법으로 지난 학기부터 '나무 이름 붙이기' 운동을 벌이고 있다. 그간 나는 나서기 싫어하는 성격, 그리고 운동이 갖는 부정적인 측면 때문에 40년 동안 한번도 스스로 '운동'을 벌이지 않았다. 그런데도 운동을 벌이는 것은 실천 없는 학문이 나를 결코 행복하게 할 수 없다는 자각, 학문과 세상을 결코 분리할 수 없다는 반성 때문이다. 그러나 그 동안 살아 남기 위해 오로지 흔히 말하는 '공부'에 매달렸지만, 책을 통한 공부가 나를 '구원'하기는커녕 오히려 '지옥'으로 내몰았다.

'나무 이름 붙이기'는 이 세상 사람들이 모두 나무와 한 몸이길 바라는 운동이다. 어찌 보면 이는 정말 황당한 발상이다. 나는 자신이 좋아하는 나무이름을 적어내라고 했을 때, 출석을 나무 이름으로 불렀을 때, 메일을 나무이름으로 보냈을 때, 황당해하던 학생들의 모습을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그러나 지금은 나무이름을 불러주면 좋아한다. 이제 어떤 학생은 친구가 어떤 나무 이름을 가지고 있는지조차 안다. 나는 몇 년 전 나무를 세는 과제를 내면서도 경험했지만 나무 이름 붙이기를 통해서도 학생들이 순식간에 변하는 모습을 목격했다. 나는 그런 모습을 감히 '천지 개벽' 혹은 '혁명'이라 부른다. 나무는 학생을 변화시킨다. 그것도 혼자의 힘으로 바꿀 수 있는 힘을 준다. 

내가 학생들에게 아주 익숙한 나무를 통해 정말로 낯선 나무 이름을 갖게 하는 것은 인간의 삶이, 인간이라는 존재가, 학문의 목표가 '생명'에 있다는 것을 직접 보여주기 위해서다. 인간이 나무 이름을 가지면 나무의 삶에 관심을 갖는다. 나무의 삶에 관심을 갖는 순간 인간은 아주 가까운 곳에서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을 터득한다. 나는 이 순간이야말로 지금 인류가 안고 있는 거대한 문제인 환경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실마리를 발견하는 순간이라 생각한다. 온갖 형태의 환경 오염은 행복의 터전을 자신이 살고 있는 공간이 아닌 다른 곳에 있다는 생각에서 발생하기 때문이다. 나무 이름 갖기는 바로 자신이 살고 있는 터전이 곧 '천국'임을 인식토록 하는 '저비용 고효율 운동'이다.

나는 나무이름으로 학생들에게 메일을 보내면서 답장도 나의 나무이름인 '쥐똥나무'로 사용할 것을 당부한다. 이제 많은 학생이 나를 '선생'이니 '교수'니 하는 호칭 대신 그냥 '쥐똥나무'로 부른다. 내가 이렇게 하는 이유는 학생을 비롯한 인간, 나아가 모든 생명과 진정으로 평등한 관계를 만들고 싶기 때문이다. 호칭만으로 평등한 관계를 만들 수 없지만, 인류가 꿈꾸는 평등한 세상은 나무와 인간, 선생과 학생이 같은 가치를 지닌 생명임을 깨달을 때 가능하다. 그래서 인간이 행복하게 살고, 학문이 행복한 삶을 위한 도구이기 위해서는 모든 연구자들이 생물학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믿고 있다. 생명에 대한 무지가 행복한 삶을 위협하는 적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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