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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소국의 학문
약소국의 학문
  • 이장희 한국외대
  • 승인 2003.09.26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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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이사

이장희/한국외대 법학

1973년 대학원에서 국제법을 전공한 이래 국제법과 인연을 맺은 지 어언 30년이 된다. 무엇이 나로 하여금 국제법이란 학문에 도전하게 만들어 오늘날까지 오게 했는가. 솔직히 대학 학부시절에 국제법은 나의 젊은 가슴에 크게 감동을 주지 못했다. 그 이유는 내 기억에 국제법 강의가 너무 이론적이고 사법시험과목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1973년 대학원에 진학해  우연히 재일동포 한국유학생을 만나 재일동포의 지문날인과 외국인등록법 등 재일동포 차별법령을 접한 것이 국제법에 강한 관심을 가진 큰 인연이 됐다. 1965년 한일기본조약이 60만 재일동포를 흥정대상으로 본국은 청구권 자금을 받아냈지만, 정작 재일동포들은 한일기본조약체결 이후 더 큰 차별이 합법화되는 사실에 접했다. 그때 일본의 차별정책과 한국정부의 무관심에 분노를 느끼고 재일동포의 권익보호를 위하는 국제법적 방안에 골몰해, 마침내 소수민족 국제법적 보호조약과 관련한 석사논문까지 쓰게 됐다. 당시는 국제법이 모든 것을 해결해 주는 것으로 알았다. 그러나 그 후 국제법도 힘이 있어야 국제법의 보호법익을 챙길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씁쓸해 한 적이 있다.  

나 개인의 국제법에 대한 인연처럼 한국의 국제법 인연도 애국심에서 출발했다. 최초의 미국 관비유학생 유길준도 나라를 구하기 위해 미국에서 국제법을 공부했고, 한국의 초대 대통령 리승만 박사도 애국충정에서 美 프린스턴대에서 ‘중립국에 대한 연구’라는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뿐만 아니라 대한제국 말엽 우리나라 개화파의 거두 김옥균, 박영효 등이 모두 국제법학에 지대한 관심을 가졌다. 이 선각자들이 모두 국제법에 관심을 가진 것은 서구 열강들에 맞선 애국심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힘이 없는 약소국가로서 국제사회에 생존하기 위해서 마지막으로 호소할 수 있는 것은 결국 국제사회의 규범인 국제법이라고 생각한 게 아닌가 추측된다. 그 당시 개화파들은 국제법을 통해 서구인들의 식민지전략을 미리 간파하려고 했다. 

주지하다시피 국제법은 기독교 문화와 유럽서방국가들의 세계지배논리에서 나온 것이다. 그런 서구의 세계지배논리를 왜 우리 선각자들이 알려고 했던가. 아마도 대한제국말엽 선각자들은 서방열강이 약소국을 식민지화 할 때 명분으로 내세운 논리가 국제법이었기 때문에  사전 대비책으로 필요했던 것으로 보인다. 한국의 국제법수용은 문헌상으로는 불평등한 江華조약체결 다음해인 1877년으로 추측된다. 일본의 花房 대리공사가 조선의 예조판서 趙寧夏에게 ‘만국공법’ 2권을 증정했는데, 이것은 강화조약체결을 철저하게 준수시키게 하기 위한 교육용이었다고 한다. 중국도 이미 지키고 있는 국제법상 공사의 서울 주재를 한국이 지키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세월은 흘러 100년이 훨씬 지난 지금 이 땅의 국제법학도들도 대한제국말엽 선각자의 생각과 별반 다름이 없다. 서방선진국이 무리한 통상 압력이나 외교적 압력을 물리치고 합리적으로 국익을 보호하기 위해 힘없는 나라로서 선진국의 논리를 미리 알아서 대비하는 해야 하는 것은 이전과 다름없기 때문이다. 

한국전쟁이 치열한 막바지에 이르던 1953년 6원 16일 부산에서 창립된 대한국제법학회가 금년에 창립 50주년을 맞았다. 학회의 역사는 한국의 파란만장한  역사와 궤를 항상 같이 하였다. 한일국교정상화 교섭을 하기 위해 정부가 국제법학자들의 도움이 필요했기 때문에 학회창립을 서둘렀다고 한다. 부존자원이 없어 GDP의 80%이상을 무역에 의존한 나라  그리고  지정학적으로 해양세력과 대륙세력의 각축장인 한반도의 생존은  통상외교와  안보외교에 달려있다. 이런 외교를 논리적으로 뒷받침해주는 것은 다름 아닌 국제법 논리이다. 그러므로 국제법이 대포 한문보다 약하다고 하지만 힘없는 나라가 마지막 버틸 수 있는 것은 그래도 국제법 밖에 없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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