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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근 교수의 ‘철학자의 가벼움’(40)-달건이
정세근 교수의 ‘철학자의 가벼움’(40)-달건이
  • 교수신문
  • 승인 2019.12.13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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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근 충북대 철학과 교수
정세근 충북대 철학과 교수

사람들은 민망한 말을 어떻게든지 돌리거나 아예 거꾸로 쓰는 경향이 있다. 너무 직접적이면 무안한 모양이다. 이를테면 ‘아이구, 바보’보다는 ‘아이구, 보바’라고 말하면 좀 더 부드럽게 느껴진다. 이른바 ‘문아’(文雅)한 것이다. 
요즘 용어로 아저씨들의 웃김말도 이런 경우가 꽤나 있다. ‘아재개그’란 말 자체에서부터 느껴진다. 아저씨는 너무 직접적으로 나이 든 사람에 대한 공격이니, 경상도 사투리를 넣어 ‘아제’라고 한다. 코미디를 ‘개그’로 부른 것은 우리나라 코미디언 전유성의 창작이기 때문에 아직 사전적인 지위는 갖고 있지 않지만, 한국적 환경에서의 웃기는 일을 그렇게 부른다는 점에서 이것도 비슷한 것이다. 코미디를 개그로 부르게 된 정황도 따져볼 일이다. 
아재에 상대되는 말은 ‘줌마’일 것이다. 아줌마라고 직접적으로 지시하기 민망하니까 줄여 말한다. 아줌마가 너무도 일상적이고 천박한 느낌이 있어 그렇게 부르기 시작한 듯하다. 따라서 ‘줌마’는 아줌마보다는 좀 더 깨어있고 자발적이고 신념 있는 아줌마처럼 들린다. 아닐 때도 있지만, 일단 말하는 사람은 주의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남들이 알아들을까 말을 돌리는 행위는 원초적이다. 은어(숨는 말: 隱語) 같은 것들이 그렇다. 젊은이들이 ‘꼰대’들 알아들을까봐 그들만의 언어로 소통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은어는 권위에 대한 거부이자 기성세대에 대한 항거다. 따라서 억압받는 젊은이들은 늘 은어를 쓰고, 그들이 기성세대가 되면 어느덧 기존언어의 문법에 충실해진다. 
재밌게도 꼰대라는 말만큼은 이미 사회화가 되어 사전에도 올랐다. 그러나 젊은이들이 느끼기에는 여전히 권위에 대한 도전적 언어로 생각하는 것을 보고 놀랐다. 어떤 학생이 발표하다가 표현에서 내 눈치를 보며 주저하기에 그냥 말하라고 했더니 바로 ‘꼰대문화’를 비판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내가 그랬다. 우리도 우리 시대의 어른들을 꼰대라고 불렀으니 맘 놓고 말하라고. 꼰대라는 말이 자신들의 전용어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하기야 어린 시절, 선생님도 아닌 아버지를 꼰대라고 부르는 친구의 용법에 당황했던 경험이 생생하다. 그 친구가 누구인지도 내가 기억하니까 꽤나 놀랐던 모양이다. 그 아버지의 직업이 선생님이기도 했다. 현재 사전에는 ‘(비) 1. 늙은이, 2. 아버지, 3. 선생님’이라는 것으로 보아 늙은이 전체를 가리키는 비속어로 기울었고, 그 가운데 권위를 행사하는 사람들이 대표적으로 아버지나 선생님이 된 것이 아닌가 싶다. 이제는 아버지는 빠질 때가 됐다는 생각이 든다. 
친구 가운데 하나는 별명이 이름을 거꾸로 부르는 것으로 되어버렸다. 별명이라고 할 수도 없지만, 다들 그의 이름을 거꾸로 부른다. ‘길동’이면 ‘동길’로 부르는 것이다. 그런데 그 상황이 상당히 그에게 어울린다. 뭐라고 그럴까, 사람이긴 사람인데 보통사람들과 다름을 표현한다고나 할까. 워낙 호방하고, 개성 있고, 재밌어서 그냥 보통사람의 이름으로 부르는 것이 어울리지 않는다고 합의되어 다들 그렇게 부르는 것 아닌가 싶다. 
요즘 건달들은 자신들을 ‘달건이’로 부른단다. 영화에서 그런 장면이 나왔는데 유행어가 되었다. 건달하면 자신이 확 드러나지만 달건이하면 숨길 수 있는 것이 첫 번째요, 내가 건달이라고 하면 힘깨나 쓰는 사람으로 자랑하는 꼴이 되지만 달건이하면 그래도 겸양의 덕을 보이게 되는 것이 두 번째요, 우리말에 ‘이’는 사람을 가리키는 것이므로 거꾸로 부를 때만이 자연스럽게 이 자가 붙어 자신들이 패거리(gang)임이 들어나서 좋은 것이 세 번째일 것이다. 
그런데 건달이 인도의 음악의 신 간다르바(乾達婆: Gandharva)에서 나온 말임을 달건이들은 아는지? 그것도 향기만 먹고 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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