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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학 연구자의 자리
미국학 연구자의 자리
  • 손세호 평택대
  • 승인 2003.09.19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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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이사

손세호/평택대 미국학

사람들은 대개 초면인 사람을 만나게 될 때 자신이 누구인지를 밝히기 위해 명함을 건네거나 직장의 소속을 밝히기 마련이다. 나 자신도 예외일 수가 없어 "저는 평택대학교 국제관계학부 미국학과에 있는 손세호입니다."라고 소개를 한다. 물론 학부제로 인해 정확한 소속은 미국학 전공이지만 보통 사람들에게 혼란을 주지 않기 위해 대개는 미국학과라고 말하곤 한다. 그러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런가 보다 하고 지나간다. 하지만 가끔 필자를 곤혹스럽게 만드는 일은 내가 분명히 미국학과에 소속되어 있다는 것을 소개받은 적이 있어 나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다는 사람들조차 제3자에게 나를 소개할 때 영어학과 또는 영문학과에 재직하고 있다고 비교적 자신있게 말한다는 점이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가. 그것은 물론 미국학이라는 학문이 보통 사람들에게는 지극히 생소하기 때문일 것이다. 국내 대학에 미국학과가 출현한지 길어야 7-8년 정도밖에 되지 않고 전국적으로 미국학과가 설치된 대학이 5개 남짓 되는 상황에서 보통 사람들이 미국학과가 무엇을 배우는 곳인지 잘 모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라고도 할 수 있다. 심지어 같은 대학에 근무하는 동료 교수들조차 미국학이 영어영문학의 새로운 이름이거나 아류쯤으로 알고 있는 경우를 발견할 수 있으니 말이다. 지금은 사정이 많이 나아졌지만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학생들에게 미국학 전공을 선택한 이유를 물어보면 대부분 영어를 잘 하기 위해서라는 대답이 주류를 이루기도 했다.

그러면 과연 미국학은 영어영문학의 별칭이거나 아류에 불과하거나 아니면 그저 영어를 잘 하기 위해 필요한 학문일까. 필자가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결단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오히려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 달리 미국학은 영어영문학과는 뚜렷한 차별성을 지니고 있으며 어떤 면에서는 더 많은 장점을 갖고 있는 학문이라고 할 수 있다. 예컨대 똑같이 영어를 가르친다고 하더라도 필자의 소견으로는 영문학과에서 고전적이면서도 고급스러운 영어 구사를 지향하고 있다면 미국학과에서는 시사적이면서도 실용적인 영어를 위주로 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영어영문학이 영어학이나 영미문학이라는 특정 학문의 틀에 매여있다면 미국학은 오늘날 그 중요성이 더욱 강조되고 있는 학제간 연구를 아우를 수 있는 한층 포괄적이고 종합적인 학문이라는 점이다. 한마디로 미국학은 아메리칸 잉글리쉬 뿐 아니라 미국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역사 등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필수적이라고 할 수 있는 미국에 대한 다방면의 기본적인 지식을 전수함과 동시에 나름대로의 판단력을 키워주고자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미국학과에서는 미국문학이나 영어학을 전공한 교수 뿐 아니라 미국 정치학, 경제학, 사회학, 역사학 등을 전공한 교수진을 필요로 하는 것이다.

요즘 우리 사회에서는 미국에 대한 여론이 친미, 반미의 이분법적 입장 뿐 아니라 용미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나뉘어 뜨겁게 달구어지고 있다. 필자의 견해로는 그 어느 입장에 서던지 간에 대다수의 사람들은 미국이라는 나라가 오늘의 우리에게 뿐 아니라 세계사적으로도 그 어느 때보다도 중요하게 다가오고 있다는 점에서는 동의할 것이라고 본다. 따라서 굳이 '知彼知己'를 인용하지 않더라도 미국에 대해 하나라도 더 아는 것이 우리가 앞으로 나아갈 바를 아는데 도움이 되지 않겠는가. 이런 점에서 필자는 국내 대부분의 대학에 개설되어 있는 영문학과가 오로지 문학의 틀만을 고집하지 말고 미국학과 또는 미국문화학과로 학문적 범위를 넓혀 급변하는 시대 변화에 발빠른 대응을 할 수 있는 날이 빨리 오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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