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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근 교수의 ‘철학자의 가벼움’(36) 역경점수
정세근 교수의 ‘철학자의 가벼움’(36) 역경점수
  • 교수신문
  • 승인 2019.11.18 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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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근 충북대 철학과 교수
정세근 충북대 철학과 교수

미국 대입시험에 역경 점수(adversity score)가 도입된단다. 환경이 안 좋은 학생에게 가산점을 주겠다는 것이다. 학생이 사는 동네와 학교의 범죄율, 빈곤율, 부모의 교육수준 등 15가지 요인을 고려해서 점수를 주는 제도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이미 2018부터 예일대 등 50개 대학이 시험적으로 적용을 했고, 2019년부터는 150개 대학이 참여한다. 

우리 같으면 그 점수의 공정성 갖고도 말이 많을 텐데, SAT를 운영하는 비영리기구인 대학위원회가 관리하고 학생에게는 그것을 공개하지 않는다고 한다. 대학위원회를 믿는 것이다. 

사실 SAT(Scholastic Aptitude Test)가 바로 수학적성시험으로 번역되는 제도다. 그런데 사람들은 예전의 ‘예비고사’와 같이 분명한 의미를 갖고 있었던 시험을 ‘수학적성능력’이라는 어려운 말로 바꾼 까닭을 깊게 헤아리지 않는다. 여기서 SAT의 철학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SAT가 시행된 것은 하버드에 공부만 잘하는 학생들이 대거진출하면서 그것을 막기 위한 방도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잘 다니고 성적 좋은 학생들이 하버드에 들어오는 것이 무엇이 문제냐고 우리라면 묻겠지만, 하버드의 입장은 그렇지 않았다. 유태계 등 특정 부류의 학생들이 일정 부분을 독점하는 것이 하버드의 미래를 위해서 좋지 않다고 판단한다. 따라서 교과과정 이외의 문제를 내서 고등학교 교육과는 상관없이 좋은 점수를 받은 사람을 받아들이기 위한 제도가 바로 SAT이었던 것이다. 

학교 잘 다니는 학생은 학교성적으로 평가하면 되지만, 학교와 거리가 있는 학생은 교과 성적과 무관하게 SAT 점수가 좋다면 대학이 받아주겠다는 것이다. 단적인 비유를 들자면, 명문고 출신의 유태인은 수석 성적으로 하버드에 들어가고, 길거리에 농구나 하던 흑인은 SAT에 올인해서 점수가 좋으면 하버드에 들어간다. 

우리도 처음에는 수능의 문제는 교과서 밖에서 나온다고 선언했었다. 달달 외워 공부하지 말고 전반적으로 공부하라는 말씀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교과서 밖도 공부해야 하는 부담만 늘어나 사교육이 성행하자, 이제는 교과서는 물론이고 EBS 연계를 강조한다. 그렇다면  수능이 아니고 학력고사로 되돌아간 셈인데도 이름은 아직 바꾸지 않는다. 수능은 ‘대학공부할만한가?’, ‘당금의 실력이 아니라 장차 수학할 능력과 적성을 갖췄는가?’를 묻겠다는 뜻이다. 이름은 제대로 써야 한다. 

하버드대는 소득에 따라 등록금을 0원에서 제값까지 받는다. 2007년 하버드는 소득 5만 불 이하는 등록금을 반값으로 받겠다는 선언을 한다. 하버드가 귀족학교로 불리는 것을 막기 위함이었다. 하버드가 자기 명성을 유지하려면 이런 개방된 조치가 필요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반응이 과히 폭발적으로 좋았다. 그러자 완전히 소득에 따른 등록금 제도를 시행했고, 이는 이제 하버드의 자랑이 되었다. 그래서 노숙자 딸도 들어오고, 변호사 아들도 들어오고, 재벌 2세도 들어온다. 

우리도 지역인재할당을 운운하며 개방적인 모습을 가장하더니 이제는 그들만의 리그로 점차 바뀌어가고 있다. 지방 국립대는 1-2분위가 26%로 최다인데, 이른바 SKY 재학생 10명 중 4명은 9-10분위다. 40.7%가 고소득층 자녀다. 전국의 90개 의대학생 가운데 9-10분위는 48.1%다. 한국장학재단이 밝힌 국가장학금 신청 현황자료에서 이렇게 나왔다. 

금광에서 금 수저 나오는 것이 세습이라면, 개천에서 용 나오는 것이 교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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