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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비평: 핸드폰, 거울사회의 페티쉬
문화비평: 핸드폰, 거울사회의 페티쉬
  • 김영민 한일장신대
  • 승인 2003.09.18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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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민 / 한일장신대 철학과 (http://jk.ne.kr)

보부아르는 ‘제2의 성’(1949)에서, 부권제 세상 속의 공적 영역을 박탈당한 여자들이 ‘자신의 참된 존재를 헛되이 추구하는’ 방식으로서 나르시시즘, 사랑, 그리고 종교를 거론한다. 범박하게 정리한 그녀의 주장은 ‘세상 속으로’라는 모토에 집약된다. 이미 ‘환상의 미래’(1927)에서 프로이트는, 그 책의 유일한 취지로서 ‘세상 속으로 나아가는 교육’을 내세운 바 있다. 환상을 먹고사는 乳兒症에서 벗어나 ‘거친 세상 속으로’ 인도하는 지침서쯤이라 할 것이다. 조금 맥락을 달리하긴 하지만, ‘토템과 터부’(1913)의 프로이트는 원시인들의 심성을 ‘마음의 전능성’이라는 개념으로 처리하는데, 類似와 접촉이라는 주술적 코드 속에 잠긴 이들의 상상력 역시 화이트헤드의 표현처럼 ‘세상 속의 완고한 사실’을 생략한 채 自斃하는 모습으로 묘사된다.

마음의 팽창 속에서 세상을 주술적으로 소외시킨 원시인들, ‘유아’라는 이름의 환瓚?소비자들, 그리고 세상의 문턱에 걸려 넘어진 뒤 나르시시즘과 사랑과 종교를 붙안고 되돌아오는 여자들. 사실 얼굴은 다르지만 이 모두는 비슷한 그림자를 드리우는 현상이다. 이것은 세상 속으로 나아가는 門을 얻지 못한 채, 기껏 세상을 구경하는 窓에 만족하거나 혹은 그 창을 거울로 바꾼 채 자폐하는 현실을 가리킨다. 나는 이를 ‘거울현상’이라고 부르고, 이 거울현상으로 뒤범벅인 사회를 ‘거울사회’라고 한다.

거울사회에서 公私의 접경지대는 각종의 거울로 구성돼있다. 그런데, 전 국민의 70% 이상이 사용한다는 핸드폰은 이 거울의 70% 쯤은 될 듯하다. 흥미로운 사실은, 핸드폰은 스스로를 門이나 窓으로 위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아무래도 내게 핸드폰은 오히려 거울이다. 요컨대, 핸드폰은 세상을 향해서 열려있는 異化의 창/문인 양 행세하지만, 그 실질적 용도를 엄밀히 헤아려보면 오히려 사용자 그 자신으로 되돌아오는 同化의 거울이라는 것.

나는 도처에서 핸드폰을 보고 듣는다. 근년의 타자들은 모두 내게 ‘핸드폰을 지닌 자’로 다가와서 움직인다. 이들은 모두 핸드폰을 만지거나 들여다보거나 두드리거나, 혹은 그곳에 대고 말하는 존재들이다. '핸드폰하는 인간'(homo cell-phonicus)들의 거울사회 속에서, 이윽고 핸드폰은 전자적 정보 매체로 구성된 거울사회의 페티쉬가 된다.

기 드보르는 ‘스펙타클의 사회’(1967)에서 현대사회를 나르시시즘의 권력화 현상으로 분석한 바 있다: “스펙타클은 기존질서가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행하는 자신에 관한 담화이며, 자신을 찬미하는 독백”이다. 다시 프로이트의 표현을 차용하자면, 거울사회, 혹은 스펙타클 사회는 ‘작은 차이의 나르시시즘’(Narzissmus der kleinen Differenzen)을 먹고 사는 상품기호의 사회인 것이다. 프로이트와 보부아르와 기 드보르의 은유는 모두 핸드폰 속에 가볍게 새겨져 있다. 아울러 종교도 사랑도 나르시시즘도 핸드폰이라는 상징 조작 속에 수렴된다.

핸드폰이라는 사이비 窓/門은 조직적 나르시시즘의 사회인 우리의 거울사회가 ‘거울’이 아니라 ‘창/문’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허위의식을 뻔뻔스럽게 전시해놓는 장치로 보인다. 이미 그것은 종교와 사랑만이 아니라 자본과 권력조차 흡수하는 나르시시즘의 표상으로 우리 사회를 종횡한다. 그것은 실로 이 거울사회의 페티쉬이자 토템이 되어가고 있다.

라이프니츠는 ‘단자론’(1720)에서, 각 단자(monad)는 窓이 없는 자폐 구조이긴 하지만, 우주 전체를 자신 속에 비추어낼 수 있는 거울이라고 말한다. 내가 겪는 핸드폰이 바로 그런 물건이다. 거울 사회의 마스코트이자 주물인 핸드폰은 창/문이 없는 거울인 셈이다. 다시 보부아르의 표현을 차용하자면, 우리 모두는 핸드폰을 통해서 ’자신의 참된 존재를 헛되어 추구‘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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