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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립대 1호’ 교수노조 이끈 김선광 원광대 교수 “교수사회는 동물의 왕국…뭉쳐야 산다”
‘사립대 1호’ 교수노조 이끈 김선광 원광대 교수 “교수사회는 동물의 왕국…뭉쳐야 산다”
  • 김범진
  • 승인 2019.11.15 18: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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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권 송두리째 흔들려
기존 교수협의회로는 해결 못해
대학 민주화 소명 다할 것
김선광 원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교수협의회 회장). 이 날 인터뷰는 원광대 교수협의회 사무실, 김선광 교수의 연구실 등에서 진행됐다. 사진은 김 교수 연구실에서의 모습. 사진=김범진 기자
김선광 원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교수협의회 회장). 이 날 인터뷰는 원광대 교수협의회 사무실, 김선광 교수의 연구실 등에서 진행됐다. 사진은 김 교수 연구실에서의 모습. 사진=김범진 기자

“동물의 왕국을 봐라. 힘있게 뭉친 들소 떼는 감히 사자가 건들지 못한다. 그런데 이탈되거나 약한 들소는 잡아 먹히기 십상이다. (지금 교수사회는) 그런 형국으로 생각해도 틀림이 없다.”

6일 전북 익산 원광대 교협사무실에서 만난 김선광 원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교수협의회 회장)에게 지난달 16일 ‘사립대 1호’로 출범한 원광대 교수노조의 목표를 물었다. 그러자 김 교수로부터 교수사회를 ‘동물의 왕국’에 비유하는 답변이 돌아왔다.

교수, 직원, 학생 등 대학 구성원 중 직원들은 직원노조가 있고, 학생들은 자치기구인 총학생회를 통해 여러가지 활동을 해오고 있다. 그런데 지금껏 교수들의 권익만은 사각지대에 놓여있었다. 응집력 있는 학교에는 교수협의회나 교수회 등 여러 명칭의 교수단체가 있다. 그러나 이들 중 학칙기구로 인정받은 것은 정유라 사건 이후의 이화여대, 아주대, 인하대 등 몇 몇 극소수 대학 말고는 없다. 교수의 신변, 권익, 근로조건 등을 대학과 협상할 수 있는 창구로 활용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교수협의회가 왕성하게 조직되어 있는 곳에서는 그나마 상황이 낫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대학의 경우 교권이 송두리째 흔들릴 정도로 탄압이 심하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교권을 확립하는 일조차 힘든데 교수들의 근로환경과 권익보호는 뒷전으로 밀려날 수밖에 없었다. 기존 교수협의회로는 이런 문제들을 해결할 수 없다. 원광대에서 교권 신장과 신분보장의 장치로서 교수노조를 설립하는 데 의견의 일치를 보았던 이유다.

“우리 생각은 사실 내년 3월 31일 이후에 설립준비행위를 하게 되면 늦지 않냐는 거였다. 언제 될지 모르거든. 내년 1학기는 무조건 안된다고 보고, 4월 1일부터 시작한다 치더라도 그때 설립 추진위원회 만들고 발대식 하고 창립총회 하고 절차 밟게 되면, 빨라야 2학기 초 만들어지는 과정이 예상됐다. 그래서 저희 경우에는 미리 준비하자고 결정했다.”

“설립신고를 하게 되면 설립신고 도장을 그냥 콱 찍어주는 게 아니다. 서류가 미비되면 반려되는 등 설립신고 절차가 쉽지 않다. 설립절차의 완결성도 많이 본다. 설립 목적이 뭔지, 조직 구성은 어떻게 했는지, 회비는 어떻게 각출해 쓰는지, 사업은 무엇을 하는지, 고용노동부에서 이런 걸 쭉 보고 난 다음 허가해준다.”

작년 8월 30일 헌법재판소에서 내린 결정으로, 교수들도 내년 3월 31일 이후에는 교원으로서 자유롭게 노동조합을 결성할 수 있다. 그런 결정문에 근거해 각 학교마다 왕성하게 교수노조를 설립하려는 움직임이 있다.

“우리 학교에서 교수노조가 처음으로 만들어질 거라고 생각 못했다. 사실 중앙대나 국민대가 준비를 먼저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것을 모델로 저희도 만들려고 했다. 그런데 하다 보니까 먼저 창립총회를 가지게 됐다.”

비결이 무엇이었을까. 여러 요인들이 작용했지만 그 중에는 환경의 뒷받침도 큰 몫을 했다.

“우선 교수노조를 만들어야만 하겠다는 열망도 크고, 학교에서도 딴지 안 걸고, 이런 것들이 공동으로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 앞선 두 대학보다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지만 의견 모으기가 쉽지 않았다는 것이 김 교수의 설명이다.

“그러나 그런 마음이 있더라도 아직도 (교수노조를) 창립하지 못하고 있는 대학들을 들여다보면, 법인이 반대하는 경우도 있고, 그러면 법인 눈치를 보는 사람들도 분명 있는 것이고, 아예 교수노조에 관한 이야기를 못 꺼내게끔 하는 학교도 있다. 방해공격을 많이 한다. 학내 분위기, 처해있는 상황, 규모 등 학교마다 조건들이 다 다르다.” 반대로 규모가 너무 작아도 법인의 입김이 더 많이 작용할 소지가 있기 때문에 어려운 점이 있다고 그는 덧붙였다.

김 교수가 꼽은 또 하나의 비결은 ‘팀워크’였다. 채갑병 응용수학과 교수(교협총무)와 홍태석 법전대학원 교수(교협재무), 김민석 치의예과 교수(교수노조 총무), 원광대 초대 교수노조위원장으로 선출된 이군선 한문교육과 교수, 원로교수로서 지난 8월 정년을 맞은 황용규 교수와 교수협의회 수석부회장인 황형수 교수 등 학내 교수와 김용석 사교련 이사장 등 여러 교수들의 이름과 공로를 열거한 뒤 자신은 이삭줍기에 불과하며, 이들의 열망과 헌신적인 노력을 한 군데에 모을 수 있었던 것이 일을 성사시켰던 원동력이라고 추켜세웠다.

사립대학교에서 처음으로 교수노조를 설립한 소회를 물으며 자랑을 해달라고 부탁하자 ‘오히려 매를 처음 맞는 기분’이라고 표현했다. 1호 교수노조에 대한 사회적 기대가 있을 것이고, 그만큼 앞으로 교수노조가 어떤 행보를 할지 예의주시할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책무성이 더 크다. 더 의식되고, 더 잘하라는 독려의 눈초리로 보이기도 한다. 사립대학에서 처음 노조가 만들어진 만큼의 책임감을 떠안는 것이다. 그것을 잘 견딜 수 있으면 계속 자랑이 되는 거고, 그렇지 않으면 지탄의 대상이 될 것이다. 그 양상이 바뀌는 건 눈 깜짝할 새 아닌가.”

앞으로 이들은 대내적으로 구성원들의 열망을 잘 받아 운영해야 하고, 대외적으로 교수노조에 따르는 사회적 기대감을 채워야 한다. 김 교수 역시 ‘교수가 무슨 노조까지 만드냐’는 의견도 있다는 걸 알고 있다. 그러나 교수노조를 만드는 것은 결국 교육 환경을 개선하고 학생들의 학습권을 최대한 보장하기 위한 장치라고 그는 설명했다.

“우리의 불안한 지위를 해결하지 못한 상태로 어떻게 학생들의 학습권을 보장하겠나. 그런 거시적인 생각이 필요한 때다. 자랑이라기보다 매를 처음 맞는, 책무를 다하지 않으면 안되는 커다란 숙제를 떠안은 것이다.”

김범진 기자 jin@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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