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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력 넘치는 지구를 꿈꾸며
생명력 넘치는 지구를 꿈꾸며
  • 교수신문
  • 승인 2019.10.14 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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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틴아메리카를 보다
김희윤 | 한국외국어대학교 국제지역대학원 국제지역학과 중남미정치 전공 박사수료
김희윤 | 한국외국어대학교 국제지역대학원 국제지역학과 중남미정치 전공 박사수료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생물학과에 다니던 학부생 시절, 나는 흔히 '뱁새'라고 알려진 작은 텃새인 붉은머리오목눈이를 연구하던 박사과정 선배를 따라 야외에서 몇 달을 보냈다. 짝을 찾고, 둥지를 짓고, 알을 낳아 품고, 새끼가 부화하며 길러내는 과정을 지켜보고 기록했다. 이 과정이 순탄하게 진행되는 경우는 생각보다 많지 않다. 자연에는 먹고 먹히는 먹이사슬이 존재하고, 붉은머리, 오목눈이를 숙주로 이용하려는 뻐꾸기가 있고, 의도적이든 아니든 서식지에 영향을 미치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어찌 되었든 이 작은 새는 주어진 환경에서 치열하게 삶의 순간순간을 살아내고 있었고, 한 장소에서 붉은머리오목눈이를 관찰하고 연구하며 지낸 몇 개월 동안 (그 이후에도 몇 년을 더 하긴 했지만) 나는 모든 것이 모든 것과 연결되어 있기에 생명이 살아가는 공간이 결코 단순하지 않다는 점을 배우게 되었다. 서식지가 사라진다는 것은, 단순히 눈에 보이는 나무 몇 그루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그 공간이 품고 있는 수많은 생명체가 사라지는 것이며, 그 영향은 그 지역의 토양과 주변 환경뿐 아니라 전 지구에도 미칠 수 있다.

서식지, 그중에서도 숲을 보전하는 것은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가장 좋은 방법 중 하나이다. 전 세계에서 1년 동안 산림황폐화로 인해 배출되는 탄소의 양은 유럽연합 전체에서 발생하는 탄소의 양에 맞먹을 정도로 어마어마한 양이다. 무절제한 벌채를 막아 더 넓게 연결되어진 건강한 숲을 만드는 것만으로도 2100년까지 지구 평균 기온의 상승을 1.5도 이내로 제한하겠다는 파리기후협약의 목표를 달성하는 데 필요한 온실가스 배출 완화를 상당 부분 이뤄낼 수 있다. 

그런데 FAO(유엔식량농업기구)의 통계에 따르면 전 세계에서 가장 생물다양성이 높고 탄소저장능력이 뛰어난 일차림(primary forest)의 무려 57%가 라틴아메리카와 카리브해에 있다. 단 한 번이라도 이 지역의 숲을 천천히 거닐어본 사람이라면 그 넘치는 생명력을 느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운이 따라준다면 대다수의 사람들이 평생 동안 마주쳤던 야생동물보다 훨씬 더 다양한 야생동물을 불과 몇 시간 안에 만날 수 있다. 거대한 나무 한 그루에 수십 종의 착생식물(epiphyte)이 자라는 모습도 쉽게 볼 수 있다. 

내가 석사과정을 밟으며 1년간 머물렀던 코스타리카는 환경적 측면에서 이 지역이 가진 잠재력을 가장 잘 보여주는 나라이다. 우리나라 면적의 절반, 전 세계 국토 중 불과 0.03%를 차지하는 중앙아메리카의 작은 나라인 코스타리카는 무려 전 세계 생물다양성의 5%를 품고 있다. 코스타리카에서 관찰할 수 있는 조류는 900종 이상으로, 미국과 캐나다 전체에서 볼 수 있는 종 수를 합친 것보다 많다. 한때 라틴아메리카에서도 가장 빠른 속도로 숲을 잃어가던 코스타리카는 자연보전을 위한 노력을 통해 숲을 다시 늘려가며 전 세계에서 손꼽는 생태관광의 메카이자 환경정책의 리더로 부상했다.

하지만 이 지역에 희망적인 이야기만 있는 것은 아니다. 라틴아메리카의 산림황폐화율은 과거보다 낮아지긴 했지만 전반적으로 높은 수준이다. 특히 올해 들어 브라질과 볼리비아, 페루의 아마존 열대우림이 기록적인 속도로 불타올랐다. 하지만 아마존 열대우림의 60% 이상을 보유한 브라질의 정치지도자는 꿈쩍도 하지 않고 있다. 

산림 보전과 지속가능한 이용 측면에서 어떤 요인이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의 차이를 낳았을까? 지역언어 전공자도 아니고 중남미 사람도 아닌 내가 뒤늦게 중남미지역학 공부에 뛰어든 이유는 이러한 궁금증 때문이었다. 하지만 지역연구자이기 이전에 환경주의자로서 궁극적으로 찾고 싶은 답은 국가의 생태적 전환을 이끌어낼 정치제도의 진화 경로를 찾는 것이다. 그 답을 찾기 위해 왜 라틴아메리카 지역을 공부하냐고 누군가가 묻는다면, 나는 아마도 모든 것은 모든 것과 연결되어 있고, 라틴아메리카는 복합적이고 모순되어 있지만 지치지 않고 새로운 시도를 해나가고 있는 지역이자 처음 만난 순간부터 숨이 막힐 정도로 높은 생물다양성을 품은 공간이기 때문이라고 답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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