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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근 교수의 ‘철학자의 가벼움’(30)-즐거운 차장
정세근 교수의 ‘철학자의 가벼움’(30)-즐거운 차장
  • 교수신문
  • 승인 2019.10.07 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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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해 시내버스 서민들의 풍경화

 

정세근 충북대 철학과 교수
정세근 충북대 철학과 교수

상해에서다. 상해는 ‘대상해’(大上海)라고도 불린다. 정말 크다. 조차지로 일찍부터 강변을 내줬고, 서양문물도 그리로 들어왔으며, 현대 정치도 상해방(上海邦)들이 주름을 잡았으니 자부심을 가져도 된다. 

이제는 너무나도 현대화되어 도심에서는 재개발지구처럼 낙후된 곳이 아니라면 하얀 2층 건물에 작은 검은 기와가 다닥다닥 올려져있는 전통가옥을 보기 힘들다. 20년만 하더라도 곳곳에서 눈에 띄었지만, 버스를 시간 반 타고 가는 도중에도 한 번밖에 보이지 않는다. 

지하철을 탈 걸, 서너 번씩 갈아타기 귀찮고, 너무 많이 걷게 하는 중국지하철의 불친절 때문에 공항 근처까지 가는 간선버스를 탔더니 몸이 힘들다. 사실, 지하철을 타러가다 버스정류장에서 노선도를 보는데, 간선버스가 와서 그냥 탄 거다. 간선버스는 요금이 거리에 따라 달라 잔돈도 거슬러준다. 

그래도 차장 언니 때문에 즐거웠다. 말이 언니지, 오십은 족히 넘은 아줌마다. 안경 쓰고, 계속 떠들고, 이것저것 지휘하는 차장(車掌)이다. 그래서 컨덕터(conductor)다. 알다시피 오케스트라의 지휘자가 컨덕터다. 차장의 장도 대장 장(長)이 아니라 지휘한다는 뜻에서 손바닥 장(掌)이다.

내가 앉자마자 와서는 어디 가냐 묻고 돈을 받는다. 그러면서 햇볕이 드니 뒤쪽으로 가서 앉으란다. 피부도 하얀 사람이 거기 앉지 말고. 오늘은 차가 안 막혀 1시간 반이면 간단다. 

뒤에 앉으니 시원하긴 하다. 그때까지는 사람이 없었는데 마구 타기 시작한다. 게다가 공화국성립 국경일이라서 7일을 노니, 학생도 어른도 큰 가방을 갖고 움직인다. 큰 가방은 어디어디에 놓으라고 차장이 지휘한다. 짐이 크다고 뭐라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중간 문 뒤의 전용의자에 웬 아줌마가 앉자 내 자리라면서 못 앉게 한다. 거기서 문을 열고 닫는다. 

아줌마에게는 저기 앉아 사람들과 이야기 나누면서 가란다. 그러자 그 아줌마, 차장한테 뜬금없이 왜 이렇게 예쁘냐고 대꾸한다. 다들 웃는다. 좀 민망한지, 아무 말이 없다. 안경 때문인지, 목소리 때문인지, 하루 종일 차에 시달려서 그런지 살도 없어 나이답지 않게 젊어 보인다. 

차장이 어린 아이가 탔으니 양보해달라고 한다. 아무도 없다. 그러더니 웬 할아버지가 타니 신분증에서 나이를 알았는지 98살의 노인을 위해 자리를 양보해달란다. 아무도 꿈쩍하지 않자, 내 말이 안 들리냐고 한다. 그러자 앞쪽의 한 여성이 자기가 내린다면서 거기 앉으란다. 비워진 자리에 앉지 말라고 한마디 더 한다. 여기 노인이 간다고. 어린이보다는 노인을 우대하는 문화다. 그리고 우리처럼 노인이 젊은이에게 도덕을 함부로 강요하지 않는다. 

앞쪽 승객이 뒤로 안 들어오니 소리 지른다. 그러자 승객 하나가 ‘왜 이리 무섭냐’고 불평을 내놓는다. 대답은 회사규정상 자기가 할 일이라고 하면서, 평소는 유머가 많다면서 승객들을 웃긴다. 나이든 사람끼리는 상해말로 떠들고 일반적으로는 북경 표준어로 말한다. 상해 토박이다. 

제2공항에 도착하기 전에 하는 말. “집에 간다고 너무 좋아서 짐 놓고 내리지 말아요.” 자주들 짐 놓고 내린다면서. 상해 역은 아직 남았으니 내리지 말란다. 제1공항에 어떻게 가느냐고 물으니 제2공항에서 지하철 10호선 한 정거장만 가면 된단다. 

대화 도중에 이런 말이 들렸다. 3일은 쉬지만 금요일부터는 근무해야 한다고. 그러면서 하는 말이다. ‘우리 같은 노동자(工人), 우리 같은 플로레타리아(無産階級)들이야 어쩌겠냐?’ 즐거운 무산계급 노동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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