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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신의 시대
배신의 시대
  • 교수신문
  • 승인 2019.10.07 0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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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무하 서울대 농생명공학부 명예교수
이무하 서울대 농생명공학부 명예교수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절개나 지조를 지키지 않고 바꾸는 것을 변절이라 하여 극도로 혐오하는 유교문화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변절을 혐오하는 문화는 조폭 세계에서 중요시하는 믿음이나 의리를 저버리는 배신과 맞물려 일반인들에게 깊은 인상을 주어왔다. 사실 절개나 지조는 진실과는 하등 상관이 없으므로 역사적으로 파당의 근거로 작용하여왔고 현대 정치권에서는 끊임없는 철새 논란의 원인이 되었다고 생각된다. 국어사전에 배신이란 믿음이나 의리를 저버림이라고 쓰여있다. 사전적 정의에 의하면 요즈음 우리나라 정치판은 배신의 정의를 새로 쓰는 곳인 것 같다. 고위공직자 임명을 위한 청문회에서 들춰지는 이야기들을 보면 고위공직 후보자들은 모두가 국민의 믿음을 저버리고 있고 그러한 사람들은 절대로 임명하지 않겠다던 대통령이 그들을 임명하는 것을 보면 이것도 국민들에 대한 배신행위인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지자들의 행동을 보고 있노라면 마치 비록 약속은 지키지 않았을지라도 믿음이나 의리를 저버린 것은 아니니 배신은 아니라고 항변하고 있는 것 같다. 변함없는 절대 지지층을 보고 있으면 이들에게 변절은 있어도 배신은 없다는 생각이 든다.

학자들에 의하면 배신이란 신뢰의 반대개념이며 현대에 와서 사람들은 배신에 대해서는 무시하면서 신뢰에는 큰 관심을 갖는다고 말한다. 이것은 인간관계에서 신뢰의 수준이 어느 정도인가에 따라 배신의 기준이 결정되기 때문이란다. 우리가 상거래에서 상인에게 기대하는 신뢰나 정치인들의 공약에 대한 신뢰는 그 정도가 얕아 서로의 이익을 추구하는 차원에서 다루어지기 때문에 이들이 약속을 지키지 않아도 그 관계에서는 배신이라는 단어를 적용하지 않고 단지 상대방을 도덕적으로만 비난한다. 개인간에 믿음을 저버렸을 때 배신이라고 상대방을 비난하는 것도 다양한 관계 속에서 개인간의 신뢰의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에 따라 그것이 악덕으로 간주됨을 알 수 있다. 우리는 종종 상대방은 우리를 크게 신뢰하지 않음에도 자기 혼자만이 상대방에게 깊은 신뢰를 가지고 그것에 부응하지 않았을 때 상대방을 배신자로 단죄한다.

조직이나 국가와의 관계에서는 배신의 기준이 시대와 상황에 따라 매우 유동적이라 논란의 대상이 된다. 조직이 부정한 행위를 하는 것을 제보하는 내부고발자, 소위 휘슬러 블로워는 조직의 입장에서는 밀고자로서 배신이지만 이해상대방의 입장에서는 양심선언자이다. 독일의 히틀러나 일본 군국주의에 반대하여 활동을 한 사람들은 독일이나 일본이라는 국가 입장에서는 반역이고 배신이지만 인류 평화와 인도주의 입장에서는 높이 평가받는다. 최근 위키릭스(WikiLeaks)의 스노든(E. Snowden)의 경우도 좋은 예이다. 국가에 대한 반역의 기준이 과거 세대에게는 안보였지만 현대 세대에게는 행복한 삶이 그 기준이기 때문에 상황은 누가 판단을 하느냐에 따라 더욱 복잡해진다. 또한 자유주의 국가에서 개인이 자신의 종교를 바꾼다고 배신이라고 비난하지 않는다.

우리나라에서 한동안 회자되던 부역은 국가에 대한 배신의 행위로 여겨진다. 점령당한 이들의 공동체에 강압적인 위협이 지속적으로 가해질 때 발생하는 것이 강제노역인 부역이다. 지배자에 대한 협력과 관련하여 점령당한 상태에서 저항을 원하는 사람이 전체 인구의 소수에 불과하다면 나머지 대다수의 국민은 배신자인가 하는 질문은 대답하기가 매우 어렵다. 마갈릿 박사가 쓴 배신: 인간은 왜 믿음을 저버리는가를 보면 배신이 성립하려면 두터운 관계를 맺고 있다고 추정되는 사람들 사이에서 피해와 공격이 발생해야 한다. 단순히 이익을 침해하고 감정적으로 상처를 주는 정도로는 배신이라고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두터운 관계가 전제되어야 한다. 국가와 개인간의 두터운 관계는 함께 나눈 역사와 전통을 바탕으로 하며, 이것들에 의해 단단해진다. 따라서 점령하에서 두터운 관계를 맺고 있었던 사람들, 소위 사회 지도층이 점령자에게 협력하는 행위는 국민들이 공유한 역사의 가치를 짓밟아 버린 배신행위이다. 결국 자신의 정체성을 파괴하는 대상과 자신을 동일시하는 것은 배신행위이다 라고 마갈릿 박사는 쓰고 있다.

배신은 인간 세상이 관계의 연속인 이상 다반사로 일어나는 현상일 수 밖에 없다. 부부나 친구같은 개인들 사이에, 회사나 단체같은 조직과의 사이에, 국가와의 사이에, 그리고 자신의 종교와의 사이에 크고 작은 배신행위가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다. 어떻게 보면 배신은 인간의 성숙 단계에서의 변신의 일환일지도 모른다. 우리 사회에서 안면을 몰수한다.’라는 말이 있다. 어떤 부탁을 했을 때 잘 알던 사이에 모른척 한다는 의미로 시쳇말로 배신때리는 행위라고 말한다. 여기에서도 배신당했다는 것이 상황이 변했음에도 적응을 하지 못한 사람의 미성숙한 감정표현이라는 해석도 가능함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자신의 기준에서는 배신이지만 상대방의 기준에서는 변신인 모호한 상황에서 진실게임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자기편에게는 그것이 진실이든 아니든 상관없이 무조건 밀어주는, 세계적으로 유행하는 초진실(Post-truth)의 시대에 누가 누구를 배신했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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