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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비평: 학문적 가족주의와 ‘삥땅교수’들
문화비평: 학문적 가족주의와 ‘삥땅교수’들
  • 이득재 대구가톨릭대
  • 승인 2003.08.29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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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구가톨릭대/ 노문학

 

나도 혹여 학문적 가족주의의 공모자는 아닐까. 필자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라 삼척동자도 다 아는 문제를 제기하고자 한다. BK21사업에서 교수들이 연구비를 삥땅친다는 것이나 박사논문을 볼모로 삼아 교수 개인의 궂은 일까지 시킨다는 것이나, 대학강사들이 방학 중에 자장면 배달한다는 것이나 알만 한 사람들은 다 아는 일이지만 이러한 문제들이 사회적으로 공론화되지 못한다는 것은 그 일차적인 책임이 교수사회에 있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더 나아가 이러한 문제들을 공론장으로 끌어들이지 못한다는 것은 교수들 스스로 혹은 필자 스스로 학문적 가족주의의 공모자임을 무의식적으로 인정하는 것이다. 욕망의 공모자인 마당에 어떻게 스스로 문제들을 제기할 수 있단 말인가. 이러한 사태는 교수사회가 학문적 가족주의에 둔감하다거나 불감증에 걸린 것이 아니라 학문적 가족주의를 에워싼 공모적인 욕망을 스스로 즐기고 있다는 반증일 뿐이다.

BK21사업은 명백하게 학문적인 공공근로사업이다. IMF 이후 대량으로 발생한 실업문제가 저임금에 바탕한 대학생 인턴사원제도로 땜질 당하던 기억이 새롭다. 서구적인 복지국가를 경험해보지도 못한 상황에서 극심한 고용불안정의 파고가 한국사회를 덮쳤다. 시민들은 무슨 국가로부터 시혜를 받은 것인 양 공공근로사업으로 겨우 풀칠이나 할 수 있는 임금을 받아가며 공공근로사업 현장에서 일했다. 대학사회가 이러한 사회변동에 노출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었다. 1989년 영국에 품질보증당국이 들어서면서 시작한 대학평가제도 또한 속속들이 한국 대학에 상륙했다. 국가가 시민들의 세금을 무작위로 나눠주는 시민들의 공공근로사업처럼 국가기관 또한 대학들에 시민들의 막대한 세금을 뿌려대기 시작하였다. 봇물을 만난 듯 대학교수들은 BK21사업에 동참했고 학문적 가족주의는 학문적인 공공근로사업에서 엄청나게 빛나는 역할을 했다.    

지금 한국사회, 대학사회에는 참으로 말도 안되는 일들이 한참 벌어지고 있는 중이다. 대학에서 교수는 사회적 존재가 아니라 가족적 존재다. 대학인도 가족적 존재이거나 가족구성원이기는 매한가지다. 대학 안에서 교수들의 삥땅사태가 심심치 않게 등장하는 것은 대학구성원들의 목을 죄고 있는 학문적 가족주의, 애비와 자식 간에 강제 협약된 공모시스템이다. 드라마 ‘야인시대’에서 조폭 중 누군가가 ‘우리도 공부해야 해요’라고 말했듯이, 좀 심하게 말한다면 조폭시스템이 대학 안에서 공부 내지는 학문이라는 옷을 입고 작동 중이라는 말이다. 대학인들만 ‘컴’에서 무작위로 다운받은 자료들을 얼기설기 엮어서 레포트로 제출하는 것이 아니다. 방학 중 교육대학원에 다니던 후배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더욱 가관이다. 교사가 자기 학교에 근무하는 기간제 교사나 교생들에게 다반사로 레포트 대필요구를 한다. BK21사업에서 대학원생들이나 박사수료생들이 연구는 다 하고 교수는 연구비나 착복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대학인들은 항의하지 못한다. 애비가 하는 일인 탓이다. 영화 ‘바람난 가족’에서 봉 태규는 아버지에게 대항하지만, 지도교수라는 상징적인 애비가 떡 버티고 있는 도제시스템에서 미끄러지거나 탈락하면 곧 죽음인 대학사회에서 대학인은 학문의 자유를 향유해야 할 자신의 권리를 포기당할 수밖에 없다. 그저 애비의 은혜 가운데 아슬아슬한 곡예사의 밧줄만을 타야 한다. 요즘 우리 대학의 풍경 안에 ‘학문’이 존재할까. 벼랑 끝에 몰린 청년실업 문제를 지적하는 것이 아니다. 예의 그 지도교수가 하는 작업은 신성한 학문인 탓이라 그 학문의 선을 이탈하는 것은 죄악이고 죽음이다. 잿밥에만 관심있다는 말처럼 논문심사는 지도교수의 윤허가 이루어진 다음에야 이뤄질 수 있고 지도교수의 학문적인 숙주인 분과학문체제의 선을 이탈한다는 것은 행여 꿈을 꿀 수도 없다. 아버지의 거대한 우산 안에서만 놀아야 하기 때문이다. 필자가 보기에 오늘날 우리의 대학사회 안에서는, 어떤 의미에서 학문적인 근친상간이 횡행하는 것으로밖에 비치지 않는다. 논쟁은 죽었고 학문은 붕괴했다. 지도교수, 애비, 도제?조폭시스템이 어우러져 빚어내는 학문적인 가족주의, 여기에 불난 데 기름 붓는 격의 BK21사업, 애비-자식관계를 확인하는 숱한 학회들이 지속하는 한, 대학 안에서 학문은 지속불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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