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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치주의 고도화는 '준법' 강요 아닌 '법령근거' 표기부터
법치주의 고도화는 '준법' 강요 아닌 '법령근거' 표기부터
  • 이경선 서강대/입법학 · 법정책학
  • 승인 2019.02.25 2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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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률기행]

차선책이긴 하지만, 우리 사회는 사회운영원리의 하나로 이른바 ‘법치주의’를 택하고 있다. 법으로 규율되는 사회는 그나마 예측가능하고 안정적이며 비교적 공정할 것이라는 기대감을 준다. 그러나 법치주의가 건강하게 작동하려면 일반 국민 다수가 어떤 법령이 시행되고 있는지 어느 정도는 숙지해야 한다.

법치주의는 법조전문가를 위한 원리가 아니다. 따라서 최대한 많은 국민이 일상생활 속에서 법령을 배우고, 기억하고, 익숙하게 접하게 하는 법령정보 전달체계가 잘 구축돼야 한다.

어떻게 하면 일반 국민과 법률정보 사이의 간극을 좁힐 것인가가 관건이다. 법령 수는 나날이 늘어만 가는데, 국민들은 법령 제목은 고사하고 무엇이 시행되는지 조차 알지 못한다. 그렇다고 모든 국민이 법학을 전공할 바도 아니고 시민법률교육을 받을 수도 없다.

이런 상황에서 현실적으로 생각해볼 수 있는 조치는 결국 사회 전 영역에 걸쳐 법령근거 표기를 적극적으로 촉진시키는 것이다. 법령근거를 표기한다는 것은 우선 모든 공행정 작용에 있어 그 토대가 되는 법령 근거를 문서나 표지판 등에 반드시 표시하고 기재하는 것을 의미한다. 공무원과 공공기관 종사자가 행하는 모든 대내외 공식 업무와 법적 효력이 있는 문서 등에는 반드시 법적 근거를 명시하도록 해야 한다. 비록 행정실무자 입장에서는 매우 귀찮고 번잡하고 불필요해 보일지라도, 최대한 표기해야 한다.

일상생활 속에서 접하게 되는 거의 모든 용역·재화와 장소·시설에 그와 직간접적으로 관련이 있는 법적 근거, 권리와 의무, 이의신청 절차, 구제 절차 등을 간명하면서도 꼼꼼하게 표기하는 요령이 필요하다. 추상적 관념에 머물러 있는 법령정보, 법률지식이 일반 국민의 눈에 보이고, 확인되고, 매우 익숙하게 느껴지는 이른바 '비쥬얼 법치주의' 환경을 조성해 나가야 하는 것이다.

그나마 그동안 많이 개선이 돼서, 공공행정 영역에서 법적 근거를 표시한 사례를 다수 찾아볼 수 있다. 이를테면, 지하철 플랫폼에서 '선로에 내려가거나 무단 횡단 하는 경우 '철도안전법'에 따라 처벌받을 수 있다'거나, 골목 어귀에서 '쓰레기 무단 투기시 '폐기물관리법'에 의거 과태료를 부과한다'거나, 군사시설 초입지에서 '군사기지 및 군사시설보호법에 따라 출입을 금한다'는 표기들을 볼 수 있다. 행정기관이 발급하거나 통지한 문서에도 어느 정도 법적 근거가 명시되어 있다. 하지만, 여전히 적지 않은 지점에서, 법적 근거에 의한 것이 아니고, 마치 지방자치단체장이 주민들에게 명령하고 지시하고 과태료를 매기겠다는 문구로 작성된 경고표지판 · 스티커 · 문서 · 메일 · 문자 등을 찾아볼 수 있다.

모든 공공행정 작용에 있어 법령 근거를 확인하고 표기하도록 하면, 공무원의 일탈이나 권한남용이 크게 줄어든다. 물론, 법적 근거가 없는 경우 적극적 재량행정보다는 소극적 보신행정 태도를 보일 여지도 있다. 그럼에도 법적 근거를 명확히 표기해 나가는 환경은 사회적 투명성과 준법의식 향상에 고무적으로 기여한다. 실무적으로도 법령근거 표기는 융통성 있게 행하면 된다. 법령 근거는 절제된 단문으로 가독성있게 표기하고, 심플한 타이포그라피 감각을 접목시키는 것이 필요하다. 공공행정 영역은 물론이고, 민간영역 전반으로도 법령근거 표기가 확대돼야 할 것이다.

‘국민 법의식 실태 조사’에서 낮은 준법의식과 이중적 법인식이 지적되곤 한다. 하지만 국민 다수가 법을 여전히 낯설고 어렵게 느끼고 있고 제대로 접하지도 못하고 있는데, 법의식과 준법 수준만으로 국가의 법치 수준을 타박한다는 것은 본말이 뒤바뀐 것이다. 국민의 법의식 조사에 앞서, 공공부문의 법령근거 표기 촉진과 이행실태 조사가 선행돼야 한다.

법치주의가 사회 유지를 위한 불가피한 차선적 방편이라면, 일반 국민이 조금이라도 더 많이 법령 지식을 일상생활 속에서 자연스럽고 익숙해지게 해야 할 것이다.
 

 

이경선 서강대 / 입법학 법정책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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