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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쳐나는’ 박사들은 미래를 위한 축복이다!
‘넘쳐나는’ 박사들은 미래를 위한 축복이다!
  • 이기상 한국외대 명예교수·철학
  • 승인 2018.12.17 1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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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로칼럼] 이기상 한국외대 명예교수·철학

‘강사법’으로 대학사회가 뒤숭숭하다. 평소 법을 잘 준수하며 살아온 사람들은 법 이야기만 나와도 심장이 벌렁거린다. 사람 사는 세상에서는 법을 들먹거리기 전에 모든 사태가 원만히 해결되었어야 한다. 이번에도 사태가 이렇게 번질 것을 대학에 몸담고 있는 사람으로 예상 못 한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대학이 온갖 이름과 구실로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고 경쟁에 살아남기 위해 CEO급 경영인을 모셔오며 ‘경영’을 강조할 때부터 대학은 대학이기를 포기한 셈이었다. 출산율이 떨어져서 초등학교 입학생 수가 줄어드는데도 대학은 계속 몸집을 불려왔다. 스스로 불러온 위기가 코앞에 닥친 것이다.

나는 독일 뮌헨 예수회 철학 대학에서 10년 공부를 하고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독일은 모든 교육을 나라가 책임진다. 교육비는 국가가 부담한다. 외국에서 온 사람에게도 똑같은 대우를 해준다. 거기에 능력이 조금 뛰어나다 싶으면 온갖 기관에서 장학금을 주며 뒤를 돌봐준다. 나도 그런 혜택을 받은 사람의 하나다. 독일 기독민주당이 주는 아데나워 장학금을 7년가량 받으며 석사과정과 박사과정을 마쳤다. 혹자는 외국인 유학생에게 거금을 들여 그런 혜택을 주는 게 국가자본 낭비 아니겠냐고 항변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내 경우 한국에 귀국해서 30년 동안 학생들에게 대놓고 ‘독일’철학을 가르쳤으니 독일로서는 이보다 더한 독일문화 홍보가 있겠는가. 더 나아가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을 비롯해서 15권가량의 독일 철학책들을 우리말로 옮겨 한국의 철학도들에게 독일철학을 공부하도록 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독일철학에 대한 연구저서를 열 권 가량 집필해서 출판했으니 독일 ‘애국’ 행위를 톡톡히 하고도 남은 셈이다. 이렇듯 독일에서의 장학금 제도는 미래를 위한 투자다.

그러면 우리나라는 어떤가? 나라가 교육을 책임지는가? 아니다. 돈 없는 사람은 아예 배움의 기회조차 없었다. 깨인 부모라도 만나야 논밭 팔고 소 팔아서 자식들 대학 보냈다. 국공립대학이 있지만 다들 등록금 받고 학생들 가르쳤다. 그 금액이 조금 싸다뿐이다. 집안사람들 모두 일심 단결하여 허리띠 졸라매며 자식들 공부시킨 것이다. 그렇게 어렵게 공부해서 석사, 박사 학위 딴 것이다. 나라가 해준 것은 돗자리 펴준 것밖에 없다.

서양의 선진국에서는 국가 돈 들여 키운 젊은 학자들이기에, 제도를 잘 갖추어 그들을 계속 지원하여 그들이 꿈꾸는 이상사회를 만드는 데 힘을 보탠다. 학문 후속세대가 곧 그 국가의 미래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는 어떤가? 자기들 돈 들여 피땀 흘려 힘들게 얻은 ‘학위’인데, 나라에서는 공짜로 얻은 그 귀한 ‘전문성’을 활용할 줄은 모르고 골치 아픈 존재로 여기고 있다. 가만히 깊이 그리고 멀리 내다보면 이 소위 ‘위기’라는 것은 해방 이후 최대의 ‘기회’다. 언제 우리에게 이렇게 고급인력들이 차고 넘친 때가 있었던가! 갓 해방되었을 때에는 학사 학위만 있어도 대학교수가 되었다. 80년대 종합대학이 대거 설립되었을 때는 석사 학위로 대학교수가 될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외국에서 박사학위를 따와도 시간강사마저 되기가 힘들다. 박사학위 따고도 강사로 전전하는 사람이 7만 명이 넘는다고 한다.

서양의 모든 국가가 근대화 과정에서 제일 먼저 한 일은 자기들 모국어를 정비하는 일이었다. 그 바탕 위에서 국민들을 깨치게 하여 스스로 주체적으로 생각하도록 만들었다. 이를 위해 지도자들은 무엇보다도 ‘인문학 진흥’에 힘썼다. 그들은 많은 자본을 투입해 그리스어와 라틴어로 된 고전들을 모두 자국어로 번역하는 데 사활을 걸었다. 고전들을 자국어로 읽고 공부할 수 있을 때야 비로소 스스로 주체적으로 사유할 수 있다는 것을 그들은 역사를 통해 알았기 때문이다.

백 년 이상을 고전 번역에 주력하면서도 지도자들이 또한 힘쓴 일은 새로운 이론 창출을 위한 기틀을 마련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모든 분야가 각기 자신들의 학문적 성과를 기록하고 분석하며 반성하여 종합해낸 토대 위에서 가능한 일이다. 이렇게 미래의 학문을 위해 그들은 가장 필요한 사전편찬을 차근차근해나갔다. ‘백과사전파’라는 학파까지 등장하지 않았던가!

지구촌 시대라는 현대는 여러 다른 문화권이 서로 어울려 그 다양성을 뽐내며 무지갯빛 문화유산으로 인류 유산을 풍요롭게 하는 ‘문화의 세기’이다. 문화라는 억만 가지 꽃을 피워야 할 문화콘텐츠의 시대에 중요한 것은 각 문화가 간직하고 있는 그 나름의 독특한 ‘문법’을 정리하는 일이다. 이를 위해서는 나름의 ‘문화코드’를 쉽게 접근 가능하게 만드는 ‘개념사전’이 필요하다. 지금 영국과 미국, 프랑스와 독일이 앞다투어 자국어로 된 방대한 개념사전을 만드는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는 것이다.

철학인의 한 사람으로 부끄럽지만 인정해야 할 것은 우리나라에는 아직 제대로 된 ‘철학사전’도 없고 나름의 독특한 철학사관 아래 쓰여진 ‘한국철학사’도 없다는 사실이다. 모든 분야에서 이제부터라도 우리의 근대 100년의 성과를 반성적으로 되돌아보며 분야 특유의 ‘개념사전’과 ‘학문사’를 준비해서 펴내야 한다. 그래야 우리 학문에 미래가 있다. 이를 위해 수많은 전문인력들이 활용되기를 기다리고 있다. 왜 정치인들과 교육계 지도자들의 눈에는 이런 ‘기회’가 ‘위기’로만 보이는가.

자리 못 잡아 불안 속에 살고 있는 시간강사들에게 애국할 수 있는 기회를 주자. 그러면 대한민국 학문의 미래는 밝을 것이다.

“반드시 우리말로 해야 우리 것이 됩니다. 우리말로 옮기려 애쓰는 데서 남의 것을 참으로 알고 속에서 내 것이 자라고 밝아집니다.”(함석헌)

 

 

이기상  한국외대 명예교수 ·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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