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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서양은 들어오지 않았다.
아직도 서양은 들어오지 않았다.
  • 안정석 경상대 · 정치학
  • 승인 2018.12.04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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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學而思]

필자는 청운의 꿈을 안고 설레는 마음으로 1970년대 말 정치외교학과에 입학하여 정치사상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좋아서 선택한 이 학문과 지금껏 근 40년간 인연을 지속해왔다. 그러나 이 학문은 필자에게 행복한 결실만 안겨주진 않았다. 전공분야가 서양정치사상이라 이 분야에 20대 이후 줄곧 독서를 집중해왔으나 학위가 늦어 전임이 될 기회는 놓쳤지만 지금도 정치학의 모든 분야 중 가장 중요한 분야라고 자부해왔다.

그런데 지금 이 나라의 정치외교학과엔 좀 특수한 사정이 있다. 이상하게도 정치사상 전공자는 교수로 잘 채용하지 않는다. 최근 한 지방대학에선 “전국에서 7년 만에” 이 분야 전공자를 교수로 초빙했다고 들었다. 나는 이 말을 들어도 이젠 너무나 일상화된 현실이라 새삼 다른 느낌이 들지 않아, 멍한 상태로 그냥 듣기만 했다. 이미 고정된 현실이다.

왜 서양정치사상 전공자는 학문사회에서 이렇게 홀대받고 소외되었나? 나는 제법 긴 시간 이것을 생각해왔다. 우선 이 나라에서 정치사상은 일종의 ‘권력의지’나 ‘이데올로기’ 같이 인식된다는 느낌이 떠오른다. 필자는 이 인식에 동감하지 않는다. 착각이다. 이데올로기엔 좌익, 우익적인 것이 있지만 우리가 특별히 주목하는 이데올로기는 주로 좌익적인 것이다. 실천적 ‘권력의지’가 묻어있는 이데올로기 이미지가 어문 정치사상 전공자에 붙어있는 것이다. 이는 정치사상에 우익적 가치가 있다고 믿는 전공자에겐 억울한 딱지다. 지금의 한국엔 이른바 ‘진보’ 이데올로기(좌파 이념)가 이론적으로 근거하는 소위 ‘역사주의’의 이론적·실천적 문화가 지배한다. 어떤 미국 정치사상가가 지적했듯이 “역사가 인간본성에서 출발한 철학을 흡수”해버렸기 때문이다. 필자에게 ‘인간본성’에 근거한 철학은 좌파적인 것이 아니라 우파적이다. 그런데 실천이 아니라 이론을 더 중시해온 이런 사상전공자를 권력의지가 강하다고 보는 것은 너무 억울한 일이다. 아닌 것을 맞다고 하는 격이고, 상 줘도 부족한 사람을 처벌하는 격이다.

그리고 정치사상 전공자는 너무 부담스러울 정도로 강한 레토릭을 구사하는 경향이 있다고 믿어지는 반면에 현실성은 없다는 인식도 있다. “그걸로는 취직이 안됩니다. 누가 취직시켜주나요? 남북관계, 미북관계, 한미관계, 중미관계 같은 걸 전공해야 취직이 됩니다”라고 부산의 한 정치학 교수는 수년 전 내게 말한 적이 있다. 이 대목에서 필자는 속으로 “팩트만 알면 뭐하나? 팩트가 생겨나는 원리, 의미를 알아야지”라고 생각했다. 가장 기본적인 학문을 외면하고 경시하는 학문사회의 상식주의, 현상주의, 몽매함이 여기 보인다.

필자는 미국에서 공부한 정치철학자 레오 스트라우스(Leo Strauss)의 입장에 감명 받아, 평소 국제정치는 국내정치 내용을 결정하거나 그 방향을 결정하지만, 그 반대는 아니라는 것을 건강한 명제라 생각하고 이를 내 수업 듣는 학생들에게 반드시 말해왔다. 정치의 가장 기초적인 상황, “우리에게 제일 먼저 오는 것”을 알아야 나중에 오는 것(즉, 국내정치)을 쉽게, 온전하게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국제관계이론과 국내정치 관계를 잘 이해하기 위해 정치사상 학습은 반드시 필요하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솔직히 필자는 70-80년대에 국내에서 정치학 교육을 받았을 때 국제관계와 국내정치 간 연관을 알려주지 못 하는 국제관계론 분야 선생님들을 조금 경멸했던 적이 있다. 나를 가르치시는 분들이 철학과는 너무나 동떨어져 있어 이 연관고리를 빈 공간으로 남긴다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수업을 들으면서도 뭔가 본질적인 대목에 대한 판단과 느낌이 오지 않아 허무하게만 느껴졌다. 그러나 나중 미국에 가서 보니 모든 미국의 국제관계 선생들은 꼭 정치사상 전공자가 아니어도 다들 철학과 국제관계론의 연관고리에 대하여 한마디씩은 할 줄을 알았다. 그건 정말 충격이었다!

서양사상을 전공한 학자에게 우리의 현실은 특별한 감회를 가지게 한다. 우리는 ‘개화’ 된지 이미 백년이 훨씬 넘었지만 아직도 우리에게 서양은 오지 않은 듯하다. 수도권은 정도가 좀 심하진 않지만 필자가 사는 부산지역엔 동양사상 전공자는 적어도 한 명은 정외과에 꼭 있다. 반면, 서양사상 전공자는 가물에 콩 나듯 보일 뿐이다. 언젠가 필자는 한 은퇴교수에게 “아직도 우리 부산엔 서양이 들어오지도 않았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남의 말에 미주알고주알 대응을 잘 하지 않는 점잖은 스타일인 그 교수는 의외로 동감한다는 의미의 바디 랭귀지 식의 표현을 해주었다. (솔직히, 그것만으로도 고마웠다.) 세상을 주도하는 세력(서구)의 사상을 공부·교육하지 않는다면 대체 뭘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가? 정말 이해하기 어렵다. 아직도 주자학 같은 전통사상이 너무 과잉교육 되고 있는 반면, 서양사상은 너무 과소 교육되고 있다는 게 필자의 솔직한 심정이다. 이건 학문적 쇄국과 폐쇄의 길이다. 이게 어떻게 우리의 젊은이들에게 세상과 미래를 볼 수 있게 하겠는가? 언어도단(言語道斷)이다.

또, 정치학적 지식 생산과 소비문제를 간과할 수 없다. 우리의 정치외교학자들은 대개 정치적인 것에 대한 지식을 생산해내지 못한다. 외국(주로 미국) 학자들이 생산한 지식을 마치 물품 수입하듯이 수입하여 소비만 한다. 필자는 미국 대학원에서 유학하던 시절, 한 선생이 “학기논문에서 너의 이론을 가지고 오라”고 주문한 것을 기억한다. 남의 것을 토대로 하여 자신의 이론을 만들어오라는 주문이다. 즉, 지식을 만들어오라는 것이다. 한국에선 이게 안 된다. 그러고도 학문을 한다고 자부할 수 있나? 심지어 “한국정치론이 없다”는 말이 아직도 수긍이 될 정도이다. 필자는 이것을 80년대 한 은사님의 강의(한국정치론)에서 처음 알게 되었지만, 2010년대인 지금도 이것이 우리의 학문현실이다.

이 모든 것은 우리의 정외과가 지식을 생산하는 인프라 구축과 실력·지식을 축적하는 지성적 활동을 매우 부실하게 하고 있다는 생생한 증거이다. 지식을 생산하는 인프라(토론문화와 그걸 유지하는 능력)가 있고, 후학들이 ‘문헌개관’(literature review) 할 수 있게 도와주는 선학에 의한 지식의 축적이 이루어진다면 우린 우리만의 한국정치론도 얼마든지 구축할 수 있다. 굳이 힘들고 어려운 해외유학을 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누가 말했듯, 우리의 학자들이 “제국(미국)의 변두리”이기 때문인가? 정치학자가 별로 하는 일이 없다. 지식생산은 못 하고 외국 것을 소비만 하는 한국의 학자들은 지식이 무엇인지, 그것을 어떻게 만들 수 있는지, 그리고 과학이란 무엇인지, 모른다면 겸허하게 새로이 공부해야 한다고 생각된다. 언제까지나 남의 지식 소비만 하는 어중간한 반쪽 학자 노릇만 할 순 없는 일이다. 그건 정외과뿐만 아니라 모든 대학 학과에서 복무하는 학자들의 과제다. 이런 과제를 수행하려면 전통적으로 정치외교학자들이 소중하게 간주하던 정치사상 분야를 다시 부흥시켜야 한다.
 

 

안정석 경상대 · 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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