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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도시 문화, 속도의 미학
한국의 도시 문화, 속도의 미학
  • 양초롱 조선대·미술학과 박사후연구원
  • 승인 2018.11.05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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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국 후 느낀 한국 사회의 빠른 속도는 도시의 변화에, 길거리의 자동차 속도와 경적 소리에, 길을 걸어가는 사람들에, 그리고 일상 곳곳에 침투해 있다. 하루가 멀다 하며 지역의 문화예술축제가 진행되고, 한국인의 생활 속 깊숙이 사용되는 생활품은 대부분 일회용이다. 한국인의 태도 및 행동에서 추구되는 속도의 미학이 문화로 창출된다. 모든 것이 유전자변형 생물체처럼 수없이 섞이고, 급속도로 확산되고, 무조건적으로 따른다. 대표적으로, 체제에 구축된 삶의 방식으로 규정된 일상의 삶에 저항하고자 시작됐던 서구인들의 ‘축제 문화’는 한국에서 공장 제품처럼 ‘보고’, ‘마시고’, ‘동원되면서’ 소비된다. 앙리 르페브르(Henri Lefebvre)가 언급했던 것처럼, 도시의 공간이 인위적이고 계획적인 문화 공간으로 창출되고, 인간의 삶은 소모적으로 이용된다. 예술 역시 자신의 현실을 직면하지 못하고, 이 축제의 공장에 심취해 있다. 

물론 문화예술의 발전에 국가의 역량은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러나 서구 국가가 문화의 헤게모니 혹은 국가 이데올로기를 창출하는 집단으로만 기능했다면, 예술가들이 자신의 사회적 지위와 명예에 집착했다면, 예술의 발전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예술가들 스스로의 노력이 예술(작품) 및 자신의 현실에 대한 변화를 가능하게 했고, 국가 역시 이들의 예술적 자율성을 보장해주면서 창작 활동의 여건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예술을 발전시켰던 것이다. 무기력한 현실을 비판적으로 접근하고, 세계를 바라보는 시각을 새롭게 한다는 사실 때문에 예술이 우리의 삶에 들어오기를 바라는 것이다.

나의 이러한 예술에 대한 관심은 스스로의 공간을 점유하며 자유로운 창작 활동을 전개했던 도시 속 미술에 대한 논의로 발전됐고, 박사 논문의 중요한 동인이 됐다. 박사 후, 지도교수님이 프랑스 Post-Doc을 권유했지만, 나는 한국 국가의 지원을 받는 연구자의 삶을 선택하고 싶다고 말했다. 하지만 귀국 후, 지역 연구자에 대한 국가 지원에 대해 반신반의했고, 지원제도조차 이해하지 못해 경제적인 어려움은 불가피했다. 주변 연구자들의 소개로 알게 된 한국연구재단의 ‘박사후국내연수’ 과정은 프랑스 박사과정에서 마무리 짓지 못했던 문제들에 대한 연구를 지속할 수 있도록 했다. 이러한 연구 지원 제도들로 인해 나의 연구 로드맵이 단계적으로 계획되고, 자율적인 연구를 추구할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서구의 사례들을 국내에 소개하는 이유 중 하나는 서구의 현상을 효과적으로 활용, 즉 그대로 답습하지 않고, 힘 있게 풀어나갈 수 있는 시간이 우리에게 주어졌기 때문이다. 서구 현대미술이 미술계의 자본주의와 속물근성에 예속된 기이한 현상으로 나타나고, 미술이 본래적인 사회적 기능을 잃어버리면서 수 세기 동안 누려온 신뢰를 잃어버렸음에도, 미술은 자신의 상태를 파악조차 못 하고 있다. 허구와 실재가 복잡하게 뒤엉킨 한국의 현실에서 이러한 미술이 계속해서 찬양되는 것은 우리의 무관심에서 비롯되는 것은 아닐까?  

‘타자(서구)’로 인해 한국의 문화가 훼손됐다고 한탄하는 시대는 지났다. 이 모든 결정과 행동에 바로 ‘나’가 있었기 때문이다. 현상을 비판적으로 분석하는 것의 의미는 ‘다르게’ 행동하는 데 있다. 한국의 문화는 인간 존재와 타자(자연, 타인, 사물 등)의 다양한 관계를 형성했기에, 비-규격적이고 비-규범화되며 느린 문화를 형성해왔다. 이 과정에서 한국인의 삶의 방식이 창출됐고, 독창적인 심미성이 발현됐던 것이다. 국가가 도시 속 문화예술에 주목하는 것 역시 삶을 음미할 수 있는 여유로운 생활과 복잡한 현대 사회에서 인간의 지혜를 되찾고, 현대인에게 그 혜택을 돌려주기 위함이다. 우리(예술 역시)가 도시의 낡고 낙후된 공간을 재활용의 수단으로서 활용하는 것이 아니라, 도시에 그 고유한 지속을 되돌려줄 때 새로운 ‘속도’와 ‘공감’을 발견해 나갈 것이다. 

 

양초롱 조선대·미술학과 박사후연구원
프랑스 그르노블 2대학에서 현대미술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대미술과 자본 및 테크놀로지, 미술과 사회(정치) 등에 관한 관심을 갖고, 도시 공간 속 미술에 관해 연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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