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난 세 부류의 스승
내가 만난 세 부류의 스승
  • 김형국 서울대 명예교수
  • 승인 2018.09.10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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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의 스승 2. 체험적 스승론 적기에 앞서
김홍도, 「米?拜石」, 18세기 후반. 종이에 수묵담채, 27.5 x 23.5cm. 미불은 기암괴석을 좋아했다. 보기 드문 기이한 돌(奇石)을 만나자 “내가 돌 형님 보기를 소원한 지가 20년이나 되었소(吾欲見石兄二十年矣)”라며 절했다는 일화가 전해온다. 기석이 송나라 서화가에게 ‘도상스승’이었다는 말이다. 동양수묵화로 즐겨 다뤄진 ?題였던바, 기석에도 절할 정도이면 훌륭한 스승에 대한 경배는 천번만번 정당하다.
김홍도, 「米?拜石」, 18세기 후반. 종이에 수묵담채, 27.5 x 23.5cm. 미불은 기암괴석을 좋아했다. 보기 드문 기이한 돌(奇石)을 만나자 “내가 돌 형님 보기를 소원한 지가 20년이나 되었소(吾欲見石兄二十年矣)”라며 절했다는 일화가 전해온다. 기석이 송나라 서화가에게 ‘도상스승’이었다는 말이다. 동양수묵화로 즐겨 다뤄진 ?題였던바, 기석에도 절할 정도이면 훌륭한 스승에 대한 경배는 천번만번 정당하다.

‘스승’, 참 대단한 낱말이다. 사람은 타고나길 배우려는 존재인데, 그 막중 매개의 대표가 바로 스승 아닌가.

전래로 공경의 우선순위가 君師父라 했다. 부모자리보다 스승자리가 먼저임은 우리 사회가 배움을 중요시했다는 말이다. 그렇게 스승 자리 직결인 선비 되기를 희구하고, 연장으로 선비 받들기가 몸에 밴 백성이었다.

스승은 참 고마운 존재였다. 그들 이끌림 덕분에 나는 무엇보다 좋은 대학 교직에서 반생을 보낼 수 있었다. 입에 담기 주저되는 비근한 말로 “평화시절이면 장군처럼 좋은 자리가 없고, 해마다 4개월 방학이니 교수처럼 좋은 직업이 없다”했다. 틀린 말이 아니었다.

견주어, 교직에 나아가서 후배들 앞에 섰던 내 자신이 좋은 스승의 소임을 다 했는가 자문하면 선뜻 긍정의 고개가 끄덕여지지 않는다. 대학원에 몸담았다며 연구와 가르침인 硏學 두 역할 가운데 개인적 연구에 열을 쏟는 사이, 상대적으로 가르침에 소홀했던 자괴감이 대학 정년 때야 뒤늦게 엄습했다. 지나치게 지식·전문적으로 후배들을 대한 통에 인간적인 교감을 따뜻하게 나누지 못했다.

교직의 개인적 아쉬움은 그렇다 치고 기실, 교수이든 교사이든, 스승의 전반적 위상이 퇴직시점에 가까울수록 내리막길이었음은 유감이 아닐 수 없었다. 금권이 문제였다. 사람 삶은 돈·권력·명예·가시성 네 요소 가운데서 선별적으로 추구하기 마련인데, 스승의 자리는 돈이나 권력과는 인연이 없고, 자고로 영재를 만나 가르치는 것이 君子三樂의 하나라 했듯, 명예로 그리고 거기에 어쩌다 남들이 알아주는 可視 유명세를 먹고사는 편이라 하겠다.

달리 말해 돈과는 인연이 덜한 스승의 자리는 “검박하나 누추하지 않은(儉而不陋)” 생활형편을 자청한 셈이었다. 그렇게 자족하는 사이 나도 어느덧 중진교수에 접어들었다. 학교 바깥 어울림도 기웃거릴 생심이 생겨 그즈음 결성된 고교 동기 모임에 처음 나갔다.

초등학교도 함께였던 동문을 만났다. 반갑게 안부를 나눈 직후 기다렸다는 듯 나에게 한 마디 던진다. “너도 봉투 좀 받지?!” 아니 이게 무슨 말? 난감해하니 “선생은 모두들 학부형으로부터 뒷돈을 받지 않냐?!” 그제야 모처럼 만난 사이를 향해 내가 정색으로 말했다. “초중고 선생들에게 봉투를 전하는 나쁜 관행이 널리 퍼졌다는 소문은 나도 진적 들었다. 그런데 자네도 대학을 자녀를 보내봤겠지! 대학 선생에게 봉투 건 낸 적이 있었던가. 얼마 전까지 원장 보직을 맡았을 적에 대학방침에 따라 발전기금을 모은다고 애를 썼지만 겨우 한 학부형으로부터 50만원 받은 게 전부였다는 서글픈 일화까지 보태주었다.

대학생활은 학부형이 교수에게 특별히 부탁할 일이 없다. 그런 연유로라도 대학교수들이 봉투전달의 나쁜 관행에서 물들지 않았음은 천만다행이라 싶었다.

하지만 봉투 미끼에 노출된 초중고교 교사도 동업자인 이상 이 시대 스승의 위상에 대해 통절한 반성이야 없을 수 없다. 세상이 금권주의로 흐르고 있음의 증후인지 대학사회도 대학생을 인질 잡는 연구비 전용이라든지, 성희롱도 비일비재해지자 세상 눈초리가 날로 따갑다.

스승노릇의 함량미달 내 이력에다 사회정조마저 스승의 위상이 땅에 떨어진 마당이긴 해도 그동안 나는 운 좋게도 좋은 스승을 만났다. 교육적으로나 인격적으로나 부족한 처지이긴 하나, 이나마 큰 탈 없이 나이가 깊어졌으니 그 고마움이야 백골난망이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나에겐 세 부류 스승이 있었다. 가장 먼저 교육기관에서 만났던 학교스승, 이리저리 그 명망 소문 듣고 개인적으로 만나고 싶었던 소망이 실현된, “세 사람이 길을 나서면 거기에 반드시 내 스승이 있다(三人行 必有我師)”는 성현 말대로 길에서 만났던 내 나름 작명의 도상(途上)스승, 그리고 “문자와 서책의 향기(文字香 書卷氣)”에 취해 마음으로 다가간 문사(文士)스승인데, 차례로 그들 덕목을 헤아려보려 한다.

 

김형국 서울대 명예교수
캘리포니아대에서 도시계획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서울대 환경대학원에서 가르쳤고, 저서로 『한국공간구조론』, 『장욱진: 모더니스트 민화장』이 있다. <조선일보> 비상임 논설위원을 역임했으며 현재 가나문화재단 이사장으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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