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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노회찬을 부패 정치인이라 말하는가
누가 노회찬을 부패 정치인이라 말하는가
  • 최성호 경희대·철학과
  • 승인 2018.08.13 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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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로폴리스 15-② 노회찬의 죽음이 증명하는 것
사진 출처=정의당 홈페이지
노회찬 의원의 추모사진. 사진 출처=정의당 홈페이지

아마 10년 전쯤의 일일 것이다. 당시 나는 캐나다의 한 대학에 근무하고 있었는데, 근대철학을 전공하던 학과 동료가 자녀 생일 파티에 나를 초대했다. 몇몇 학과 교수들이 함께 초대를 받았는데, 한 교수는 생일 선물로 인형을 사왔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인형은 바비 인형도 곰 인형도 아닌 존 맥도날드(John Mcdonald)라는 캐나다 정치인의 인형이었다. 그날의 주인공은 다섯 살 정도 되는 여자아이였다. 그런 여자아이와 정치인 인형이라. 내겐 너무나 생경한 조합이 아닐 수 없었다. 그래서 학과 교수들에게 나의 놀라움을 표현하며 “내 고향 한국에서 정치인은 혐오의 대상일 뿐이다. 정치인 인형을 팔지도 않을뿐더러 그것을 어린아이의 생일 선물로 준다는 것은 상상도 못한다”고 말하며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캐나다 정치에 대해선 잘 모르지만 인형으로 만들어 생일 선물로 주고받을 수 있는 정치인, 그 정도로 추억하고 존경할만한 정치인을 두고 있는 캐나다인들이 은근 부러웠다. 그리고 한국은 언제쯤 그런 정치인을 가질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잠시 스쳤던 기억이 난다. 

10년이 지난 지금 나는 한국에서 노회찬이라는 한 정치인의 죽음을 맞이하고 있다. 소위 명문고·명문대를 나왔지만 일신의 안녕과 세속적 성공을 뒤로하고 정의감 하나로 평생을 약자를 위해, 소외된 이들을 위해 헌신한 인물이다. 그런 그가 4천만원의 불법 정치 자금을 수수했다고 고백하며, 후회한다고 책임이 무겁다고 자신의 잘못이 크다고 흐느끼며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비통함에 살이 에인다. 

노회찬은 불법 정치 자금을 수수한, 게다가 그에 대하여 거짓말까지 한 부패한 정치인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하는 이들이 있다. 그가 자살하는 바람에 그러한 부패 정치인의 이미지가 탈색됐을 뿐 그가 부패 정치인이라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는다고 그들은 말한다. 어느 정도 일리 있는 말이다. 노회찬이 불법 정치 자금을 수수한 것이나 그에 대해 거짓말한 것은 부정할 수 없는 팩트이기 때문이다(이 팩트를 음모론적 시각에서 접근하는 이들이 있는데 그건 옳지 않다). 그러나 노회찬이 그러한 일탈을 저질렀다는 이유로 그에게 부패 정치인이라는 낙인을 곧장 붙이는 것에 나는 반대한다. 노회찬에게는 전두환이나 박근혜와 같이 뼛속까지 부패한 정치인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사람의 됨됨이가 있기 때문이다.  

자발적 중독자와 비자발적 중독자

먼저 자발적 중독자(willing addict)와 비자발적 중독자(unwilling addict)의 구분을 소개하자. 미국 철학자 해리 프랑크푸르트(Harry Frankfurt)가 「의지의 자유와 인격체의 개념(Freedom of the will and the concept of a person)」이라는 논문에서 처음 제시한 구분인데, 그 논문은 인간성(humanity)과 자유의지에 대한 탐구에서 하나의 이정표를 세운 수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비자발적 흡연 중독자는 자신이 흡연에 중독됐다는 사실에 몸서리치면서 그것을 벗어나기 위하여 안간힘을 쓴다. 금연에 도움이 될 만한 것은 뭐든지 가리지 않고 시도한다. 그러나 그의 흡연 중독은 이미 그가 통제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서 있다. 흡연에 대한 그의 충동이 너무 강력하기에 그에 대한 저항은 모두 무위로 돌아가고, 결국 그는 담배를 피우게 된다. 한편, 비자발적 흡연 중독자와 달리, 자발적 흡연 중독자는 자신의 흡연 중독을 매우 바람직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그리고 중독 증세가 약화된다는 느낌이 들면 중독을 공고히 하기 위해서 백방으로 노력해 다시 중독의 강도를 끌어올린다. 

자발적 중독자와 비자발적 중독자 모두 흡연 중독자이고, 그런 점에서 담배를 피울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그들은 흡연에 대하여 완전히 상반된 태도를 취한다. 이러한 상반된 태도를 이론적으로 설명하기 위하여 프랑크푸르트는 일차 욕구와 이차 욕구라는 개념을 도입한다. 일차 욕구는 우리가 보통 욕구라고 부르는 것, 가령, 식욕, 수면욕, 금전욕, 명예욕, 성욕과 같은 것이다. 한편 이차욕구는 욕구에 대한 욕구이다. 자신의 가난이 금전욕이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이는 금전욕을 갖고 싶은 욕구, 즉 금전욕에 대한 이차 욕구를 가질 수 있다. 자신이 좀 더 돈에 대한 욕심을 갖는 사람이 되고픈 욕구 말이다. 비슷하게 다이어트 중일 때 우리는 식욕이 없어지기를 바라는 욕구, 즉 식욕에 대한 이차 욕구를 갖는다.  

이러한 일차 욕구와 이차 욕구의 개념을 통하여 자발적 중독자와 비자발적 중독자의 차이를 명확히 설명할 수 있는데, 먼저 비자발적 중독자는 흡연을 하고픈 일차 욕구를 갖는 동시에 그러한 흡연 욕구가 없어지기를 바라는 이차 욕구를 갖는다. 흡연 욕구가 없어지기를 바라는 그의 이차 욕구는 그에게 흡연을 하고 싶지 않은 일차 욕구를 만들어 낸다. 그래서 비자발적 중독자는 흡연하고픈 욕구와 금연하고픈 욕구의 충돌을 경험한다. 중독 때문에 담배를 피우긴 하지만 그에 대하여 갈등하고 번민하며 괴로워한다는 말이다. 한편 자발적 중독자는 흡연을 하고픈 일차 욕구를 가지면서 동시에 그러한 흡연 욕구를 긍정하는 이차 욕구를 갖는다. 흡연과 관련해 일차 욕구와 이차 욕구 사이에 어떠한 충돌도 존재하기 않기에 아무런 내적 갈등도 없다. 분명 자발적 중독자와 비자발적 중독자 둘 모두 흡연 중독자이고 그래서 저항할 수 없는 충동에 의해 담배를 피운다. 그러나 흡연 행위와 관련하여 그들은 서로 상반된 이차 욕구를 갖는다는 점에서 그들에 대한 우리의 도덕적·윤리적 평가도 달라야 한다는 것이 프랑크푸르트의 핵심 주장이다.
 
내가 이차 욕구를 가질 때 그 욕구의 대상은 바로 나 자신의 일차 욕구이다. 그런 점에서 나의 이차 욕구는 내가 어떤 욕구를 갖는 사람이 되기를 원하는지에 의해, 내가 어떤 사람이 되기를 원하는지에 의해 결정된다. 내가 부자가 되는 것을 인생의 목표로 여긴다면 나는 금전욕을 긍정하는 이차 욕구를 갖게 된다. 내가 충분한 금전욕이 없다고 판단할 땐 나를 자책하고 내가 충분한 금전욕이 있다고 판단할 땐 나를 자랑스럽게 여긴다. 한편 내가 청빈한 삶에 좀 더 큰 가치를 부여한다면 나는 금전욕이 사라지기를 바라는 이차 욕구를 갖게 될 것이다. 혹시라도 내 속의 금전욕을 발견하게 되면, 마치 불쑥 찾아오는 성욕에 어쩔 줄 몰라 하는 성직자처럼, 자신을 한없이 부끄러워하고 자책할 것이다. 이처럼 나의 이차 욕구는 내가 어떤 사람이 되고자 하는지에 대한, 내가 어떤 삶을 살고자 하는지에 대한 나의 마음가짐에 의해 결정된다는 점에서 나의 사람 됨됨이라 할 수 있다.

바로 이런 맥락에서 프랑크푸르트는 이차 욕구가 인격체의 중요한 표지, 즉 인격을 가진 존재(e.g. 정상적 상태의 성인)와 그렇지 않은 존재(e.g. 대다수의 동물이나 유아)를 구분하는 중요한 기준이라 주장한다. 이차 욕구를 갖기 위해서는 자신을 반성적으로 뒤돌아보고 스스로를 평가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하는데, 인간 이외의 대다수 생명체에겐 그런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내적 갈등 없는 부패 정치인

이제 불법 자금을 수수한 두 가지 유형의 정치인이 있다고 가정해 보자. 그 중 한 정치인은 진정한 부패 정치인으로, 불법 자금을 수수하고픈 욕구를 가질 뿐만 아니라 그 욕구를 바람직한 것으로 긍정하고 승인하는 이차 욕구를 갖는다. 그러한 이차 욕구 덕분에 그는 불법 자금을 수수하는 자신의 모습에 대하여 자책하거나 좌절하지 않는다. 그가 진정으로 자책하거나 좌절하는 상황은 충분한 불법 자금을 수수하지 못했을 때 발생한다. “왜 그때 기업들로부터 돈을 좀 더 갈취하지 못했을까?”라고 말하며 스스로를 책망할 수 있단 말이다. 앞서 살펴본 자발적 흡연 중독자와 마찬가지로 그에겐 불법 자금과 관련해 일차 욕구와 이차 욕구 사이에 아무런 충돌이 없기에 불법 자금을 수수하는 상황에서 일체의 내적 갈등을 경험하지 않는다. 이것이 내가 생각하는 진정한 부패 정치인의 모습이다. 

나는 전두환이나 박근혜는 진정한 부패 정치인의 부류에 속한다고 판단한다. 이런 판단을 증명하기 위해선 일탈 행위 당시 그들이 어떤 이차 욕구를 가졌는지를 확인해야 하는데, 그건 사실 그들의 머릿속에 들어가 보지 않으면 모르는 일이다. 그러나 그들이 일탈을 저지르는 자신을 긍정하는 이차 욕구를 가졌다고 볼 정황증거는 차고 넘친다. 그들이 적극적으로 불법 자금을 모금했다는 사실, 그들이 한 번이 아니라 여러 번에 걸쳐서 일탈을 반복했다는 사실, 그러한 일탈에 대하여 전혀 후회나 죄책감을 느끼지 않았다는 사실 등은 그들이 진정한 부패 정치인이라 볼 정황증거로 충분하다. 

지금까지 불법 자금을 수수한 한 유형의 정치인, 즉 부패 정치인의 모습을 살펴봤다. 이제 불법 자금을 수수한 또 다른 유형의 정치인을 살펴볼 것인데, 청렴하고 정직한 정치인이 되고자 하는 올곧은 됨됨이를 평소 지니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법 자금의 유혹에 앞에 굴복하는 정치인이다. 불법 자금을 수수하고픈 유혹 앞에 끝내 무릎 꿇지만 그럼에도 그러한 유혹을 부정하고 거부하고픈 이차 욕구 역시 갖는 경우이다. 앞서 살펴본 비자발적 중독자와 마찬가지로 불법 자금 수수 과정에서 그는 욕구의 충돌로 인한 내적 갈등을 경험한다. 결국에는 불법 자금을 수수하지만 그럼에도 그는 그러한 자신의 모습을 부끄러워하고 후회한다. 나는 이 두 번째 유형의 정치인을 부패 정치인이라고 부르는 데 반대한다. 분명 그는 불법 자금을 수수하는 일탈을 저질렀지만 그럼에도 그것은 그의 사람 됨됨이(이차 욕구)에서 비롯됐다기보다는 의지의 나약함에서 비롯됐기 때문이다. 비록 자신의 일차 욕구를 통제하지 못해 일탈을 저지르는 잘못을 범하긴 했지만 그것이 그가 청렴과 정직을 중시하는 올곧은 됨됨이를 지닌 정치인이라는 사실을 부정하진 않는다는 것이다.

나는 노회찬이 이 두 번째 부류의 정치인에 속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도 일탈을 저지르기는 했다. 그러나 그는 그러한 일탈을 후회한다고, 잘못이 크다고 말하며 자진해 목숨까지 끊었다. 뿐만 아니라 (특검 조사로 좀 더 사건의 실체가 드러나야 하겠지만) 현재까지의 조사만 보면 노회찬이 드루킹에게 적극적으로 금품을 먼저 요구했다거나 혹은 불법 자금 수수가 빈번하게 이뤄졌다고 볼 정황도 없다. 이는 그가 일탈을 저지른 자신의 모습을 결코 긍정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에게 부패 정치인이라는 꼬리표를 붙이지 말아야 할 이유이다. 

프랑크푸르트는 자발적 중독자와 비자발적 중독자를 구분하며 우리가 그들에 대해 서로 다른 도덕적·윤리적 판단을 내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동일한 주장을 전두환·박근혜 부류의 정치인과 노회찬 부류의 정치인에게도 적용할 수 있다. 만약 전두환·박근혜 부류의 정치인이 청렴과 정직을 공언한다면 그건 진정 기만적 위선자의 모습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청렴과 도덕을 중시하는 올곧은 됨됨이를 가진 노회찬 부류의 정치인이 한 번의 일탈을 저질렀다고 해서 그를 기만적 위선자나 이중인격자라 비난하는 것은 온당치 않다. 노회찬은 의지의 실패를 경험한 한 나약한 인간일지언정 거짓된 맹세와 공언으로 국민을 기만한 부패 정치인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에게 악담과 조롱이 아닌 충고와 격려를 보내야 했던 이유이다. 

노회찬은 왜 굳이 죽음을 선택해야 했을까? 그의 죽음 이후 내 머리를 떠나지 않는 질문이었다. 나의 답변은 “어쩌면 우리 안의 무지와 맹목이 그를 죽음으로 몬 것 아닐까?”이다. 한 번의 일탈을 저질렀다는 이유만으로 청렴, 도덕, 정의와 같은 가치들을 위해 평생을 헌신해 온 그의 사람 됨됨이는 깡그리 무시하고 그를 전두환이나 박근혜와 동급으로 취급하며 위선적인 부패 정치인으로 낙인찍는 한국의 정치 문화 말이다. 한국에서 존 맥도날드와 같은 정치인이 나올 수 있을까?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지지는 않을 게다. 훌륭한 정치인이 나오기 위해선 먼저 그에 걸맞은 성숙한 정치 문화가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굳이 증명할 필요도 없는 그 자명한 사실을 노회찬은 죽음으로 증명했다. 

최성호 경희대·철학과<br>

 

 

최성호 경희대·철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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