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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이 있음을 생각함
죽음이 있음을 생각함
  • 방민호 편집기획위원
  • 승인 2018.07.02 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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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깍발이] 방민호 편집기획위원/서울대·국어국문학

사람은 과연 얼마나 살아야 하는 걸까? 요즘 이런 생각이 부쩍 많이 든다. 지난 사월에는 대전 고등학교 시절부터 알던 일 년 후배가 세상을 떴다. 백혈병이었다. 안타깝다고 생각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고통이 더 커진다. 슬픈 생각이 자꾸 솟아난다. 

지난주에는 한 시인의 부친상이 있었다. 은평구 무슨 병원이었는데, 언덕배기에 자리 잡은 작은 곳이었다. 고인은 여든 살 가까이 사셨다고 했다. 마지막 이십 년을 병을 앓으셨고 마지막은 암이셨다고 했다. 

지금은 오래 사는 분들은 오래들 사신다. 아흔 살 넘은 분도 많다. 그래도 일찍 가는 사람은 또 아주 일찍 간다. 바람이나 쐬려고 나오는데 건너건너 장례식장 입구에 영정 사진을 붙여 놓았다. 놀랍게도 스무 살이나 되었을까 한 젊은이의 얼굴이다. 얼마 전에 자차 보험도 없이 교통사고를 낸 어떤 젊은이의 일이 생각났다. 당연히 이 젊은이도 교통사고려니 했다. 마침 거기서 나오는 사람들 이야기 중에 암이라는 말이 나왔다. 잘살게 되면서 오히려 나쁜 것 많이 먹고 물에 공기까지 안 좋아져서일까. 요즘 도처에 무서운 병이 많다. 

병문안도 여러 번 다녀온 한 주였다. 일산 어느 병원으로 작가 최인훈 선생을 여러 번 찾아뵀다. 폴란드 있을 때 소식 듣고 귀국해 아드님과 연락이 닿았다. 겨울에 뵙고 찾아뵙지 못한 몇 달 사이에 말기 암 판정을 받으셨다고 했다. 그러고서 몇 달이 흘렀고 선생께서 심경에 변화가 계셔서 몇몇 사람들을 만나보고자 하신다 했다. 두 번째 병문안 때는 마침 편집이 끝나가는 최인훈 문학 연구논문 모음집 가제본을 들고 갔다. 출판 일 하시는 박광성 선배님, 편집 일을 도맡다시피 한 전소영 선생도 함께 방문했고 선생의 상태는 지난번보다 한결 좋아지신 듯했다. 지난 주말 세 번째 방문 때는 최인훈 선생과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낸 작가 이나미 선배, 이진명 시인이 함께 계셨고 민음사에서 『화두』가 나올 때 애써 주신 이남호 선생도 함께 계셨다. 이나미 선배가 선생을 세상 떠나신 아버지처럼 알고 모셔왔다고 말씀드릴 때 다들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최인훈 선생은 6.25 때 원산에서 월남한 분이시다. 부산 피난 수도 시절을 거쳐 서울 용산 청파동에서 소설 창작 활동의 많은 것을 이루셨고, 불광동, 갈현동 시대에 희곡을 쓰시고 거작 『화두』를 남기셨다. 고양시 일산에서 삶의 마지막 시대를 살아오셨다. 

최인훈 선생을 몇 번 만나오면서 느낀 가장 큰 것은 참 고집스러운 분이라는 것이다. ‘고집스럽다’는 말은 딱히 어울리는 것 같지 않고, 뭔가 완강한 자기 세계가 있으신 분이다. 

처음 인터뷰 때문에 이분을 찾아뵀는데, 셔츠를 위의 첫 단추까지 꼭 채우고 계셨다. 첫눈에 가깝게 다가서기 어려운 분 같았다. 그 후 몇 번을 봬도 한 번도 살갑게 대하신 적은 없었다. 그러다 지난겨울에 무슨 일로 선생을 더 여러 번 뵙게 되면서 반보는 가까워졌지만 한 발은 분명 아니었다. 그러나 선생의 그런 모습을 한 번도 부당하게 받아들이지 않은 것은 자기를 이룬 사람들은 대개 그렇고 이 벽을 함부로 헐려 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힘든 분을 붙잡고 어렵게 말씀을 나누다가 선생께서 혹시 1934년생이 아니시냐고 여쭈었다. 공식 출생연도는 어디나 1936년으로 나오지만 그렇지 않다는 이야기를 어디선가 들었었다. 잠시 생각하시던 선생께서, “대한민국 나이로는 1936년생이야” 하신다. 이 한 말씀에 월남해 온 작가의 많은 것이 들었다. 

그러고서 그저께다. 이번에는 동해안에 다녀와야 했다. 조용한 해변가 마을로 정양 떠난 어느 작가를 위로해 주고 싶었다. 새벽에 출발해서 ‘가다 쉬다’를 반복하면서 다섯 시간이 걸렸다. 환자의 통증 때문에 이야기를 오래 나누기 힘들었다. 한 시간을 다 만나지 못하고 더 긴 시간을 들여 돌아와야 했다. 

대전 후배를 생각하고 내 나이를 생각하면 지금 죽어도 아주 이상하다 할 수 없다. 작년에는 대학원에서 같이 공부하던 동창생이 멀리 가서 뜻하지 않게 유명을 달리했다. 나와 나이가 같다. 고전문학 공부한 대전 출신 친구는 그보다도 먼저 우리 곁을 떠났다. 삶에, 삶의 끝에, 삶의 한가운데 죽음이 있음을 생각한다. 살아있다고 살아있기만 한 것은 아니다. 어떤 삶을 살아야 할지 생각하게 된다.

 

방민호 편집기획위원/서울대·국어국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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