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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은 ‘갑’인가?
대학은 ‘갑’인가?
  • 김정규 한국방송통신대 출판문화원·시인
  • 승인 2018.04.02 12:02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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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gitamus 우리는 생각한다 

우리나라 대학 진학률(등록율 기준)은 2009년에 78%로 고점을 찍었다. 고등학교 졸업자 10명 중 8명이 대학에 진학한 것인데, 이후 8년간 계속 하락해서 작년에는 69%까지 떨어졌다고 한다. 이러한 현상은 직업계 고교 취업률이 17%에서 51%로 상승한 것과, 대졸자의 취업률이 60%대라는 것, 대학등록금의 가성비가 떨어진다는 것 등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겠다. 대학졸업장이 더 이상 안정적인 삶을 보장하지 못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대학의 위상이, 대학교수의 위상이 변하고 있다. ‘갑’에서 ‘을’로, ‘병’으로 추락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대학은 어떤 과정을 통해 오늘에 이르게 됐을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김정인 춘천교대 교수(사회교육과)가 최근 펴낸 『대학과 권력』(휴머니스트, 2018)에서 찾을 수 있다. 이 책은 ‘권력’이라는 독특한 키워드로 한국 대학 100년사를 적나라하게 정리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대학의 시작은 일제 식민의 도구였다. 일본은 3·1운동 이후 무단정치에서 문화정치로 전환하면서 일본 내 제국대학의 분과로 조선에도 제국대학을 설립했다. 일본인의 이민을 유도하기 위한 목적도 컸다. 경성제국대학 제1회 예과시험 합격자는 일본인이 125명, 조선인이 45명이었다. 특히 광주학생운동이 일어난 직후인 1930년부터 4년간 조선인 합격자는 한 명도 없었다. 1937년 중일전쟁 이후로는 대학을 전쟁 도구로 삼아 군수공업에 활용했다. 

미 군정기에는 미국의 주도로 고등교육을 재편하고 사립대학에게 미국의 원조를 제공하며 대학을 미국화의 거점으로 활용했다. 미군정은 미국 주립대학 방식을 따르는 국립 종합대학을 설치하면서 일본식 대학을 빠르게 해체했는데, 대학의 자율과 자치는 설 자리가 없었다. 이 시기에 사립대학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난다. 이름은 전문학교였지만 대학 수준의 교육을 했던 보성전문, 연희전문 등이 속속 정식 대학으로 인가를 받는다. 1945년 총 49개(국공립 21개, 사립 28개)였던 대학이 1953년에는 총 226개(국공립 106개, 사립 120개)로 급증한다. 

이승만 정부는 재단이 부실하더라도 사립대학을 인정하는 ‘방임적 태도’를 취했다. 이는 결국 정부 위에서 사학권력이 대학을 지배하게 되는 양상을 낳게 된다. 또한 대학 정비 계획을 발표하지만 뜻대로 추진되지 못했다. 등록금 의존도가 높던 사학들이 정원 확보에 사활을 걸고 정부의 정원 규제 정책에 따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박정희 정권이 들어서면서 국가권력은 개입을 본격화한다. 근대화에 필요한 고급 인력을 양성한다는 명분 아래 국공립은 물론 사립대학에까지 국가 재정을 투입했다. 이와 함께 대학의 자율과 자치를 고려하지 않고 ‘개혁과 학원 안정화’라는 명목으로 대학 운영 전반에 깊숙이 개입했다. 사립대학은 더 많은 재정을 확보하기 위해 국가의 교육 및 학문 정책에 순응했으며, 대학은 개성을 잃어버린 채 획일화했다. 

1980년대는 졸업정원제 도입, 사립대 지방분교 및 개방대 설립, 방송대 독립 등의 영향으로 대학 교육 대중화 시대가 열렸다. 1980년에 57만 명이던 대학생이 10년 만에 149만 명으로 수직으로 상승했다. 대학 진학이 의무처럼 여겨지는 시대가 된 것이다.

노태우 정부는 사립학교법을 개정해서 재단에 칼을 쥐어줘 지금까지 이어지는 사학 비리와 분규에 직접적인 원인을 제공했다. 김영삼 정부에서는 대학 간 경쟁원리를 도입해 개혁을 추진했으나, 대기업(시장권력)들이 대학을 계열사화 하는 등 오히려 대학이 급속히 시장권력에 잠식당하는 계기가 됐다. 

2000년대에 들어 신자유주의적 대학정책에 따라 대학은 경제적 가치 창출의 전진기지가 됐다. 교수는 지식인이 아니라 이윤 창출을 위한 경제적 행위자의 역할을 담당하게 됐다. 보편적 진리, 순수한 지식 탐구, 비판적 지성 등의 개념은 의미를 잃어갔고, 경제적 이윤을 증대시키는 실용지식 생산이 대학의 몫이 됐다. 즉 대학은 기업이 됐고, 교수는 기업에 취직한 직장인이 됐다.

이것이 권력에 오염된 우리나라 대학의 역사이다. 이를 바꾸어 말하면 대학은, 대학교수는 진정한 의미에서 ‘갑’이었던 적이 없었다는 것이다. 배움이 필요한 학생에게, 학부모에게, 인재와 기술이 필요한 기업에게 ‘갑’인 줄 알고 행세를 했을 뿐이다. 호가호위하던 여우가 자기 뒤에 있는 호랑이의 존재를 잊어버린 형국이라고나 할까?

김정인 교수는 『대학과 권력』에서 사립대학 공영화와 국공립대학 확대를 통한 대학의 공공성 회복, 대학의 양극화 해결, 대학 특성화 구현, 대학의 자율성 ‘회복’(있었던 것이 아니므로 잘못된 말이다. ‘쟁취’ 정도가 좋겠다)을 대학 개혁 방안으로 제시한다. 대학 구성원이라면 누구나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이다. 

그러나 이러한 방법적 대안들이 성공하려면 구성원들의 태도와 의지가 중요하다고 본다. 1980, 90년대 학생운동을 가로막던 어용교수들에게 퇴진하라고 외치던 세대가 있었다. 이제 30년이 지나 대학의 중추가 된 이 세대가 초심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리고 ‘대학의 시대적 책무’를 수행하기 위해 국가권력과 시장권력에 맞설 수 있을 때, 비로소 진정한 개혁이 시작될 수 있을 것이다.

 

김정규 한국방송통신대 출판문화원·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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ㅎㅎ 2018-05-14 06:44:16
'의무'가 아니라 '필수'입니다. 적확한 말을 씁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