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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가악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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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기홍 논설위원
  • 승인 2018.02.26 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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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정론] 이기홍 논설위원/강원대·사회학

식상하시겠지만, 평가 얘기를 한번 더 하는 것을 양해해주시기 바란다. 

성과급제도가 전면적으로 시행되기 이전, 내가 근무하는 대학은 위원회를 구성해 ‘수업평가’를 분석한 일이 있다(나는 보직을 맡고 있던 탓에 그 위원회의 위원장이었다). 그중 기억나는 한 가지는 전공수업과 교양수업 사이에, 그리고 상대적으로 어려운 교과목 수업과 쉬운 교과목 수업 사이에, 5점 척도에서 0.5점 그러니까 10% 정도의 평균적인 점수 격차가 있었다. 학생과 친숙할수록, 난이도가 낮을수록 수업평가 점수가 높다고 정리할 수 있었다. 위원이던 통계학과 교수는 이런 편향을 보정할 수 있는 뾰족한 방법은 없다고 인정했다. 수업평가는 수업에 대한 학생들의 반응을 교수에게 ‘환류’하는 장치로는 유용하지만 그 점수를 교수의 실적평가에 반영할 것은 아니라는 데 위원들은 동의했다. 

그럼에도 성과급제도가 전면화한 뒤 ‘수업평가’는 대부분의 대학에서 의심 없이 교육 실적평가의 한 항목으로 자리 잡았다. 허나 수업평가 점수에 담긴 편향을 보정하는 기법을 만들어냈다는 이야기는 나는 듣지 못했다. 일정한 편향을 내장한 점수가 ‘평가’ 점수에 그대로 합산되는 것이다. 그런데 그 다음은 더 심각하다. 교육실적 평가 항목에는 책임강의시간 이행, 수업계획서 적시 입력, 성적 적시 입력 등이 있는데 이런 것들에서는 교수들 사이에 점수 차이가 거의 없다. 결국 수업평가의 점수 차이가 실질적으로 교육실적의 점수 차이를 결정하게 된다. 처음부터 편향을 내장한 점수가 교육실적 전체를 왜곡해 확대하고 과장하는 것이다. 

연구 실적평가에서도 큰 차이는 없다. 학문분야들 사이의 차이를 무시한 단순한 편수 계산이 터무니없는 것이라는 점은 말할 필요도 없다. 일견 객관적인 듯 보이는 ‘피인용지수’라는 것에도 함정이 있다. 내가 전공하는 사회과학철학 분야 연구자는 (적어도 국내에는) 손에 꼽을 정도 희소하다. 사회과학도라면 누구나 기본으로 내 논문을 읽어야 한다고 나는 믿고 있지만, 그렇더라도 그들이 내 논문을 인용할 가능성은 0에 가깝다. 연구재단 등재지 평가에 ‘피인용지수’ 항목이 도입되면서, ‘군소’ 학술지 기고자들은 그 학술지에 게재된 논문들을 인용해달라는 부탁을 받고 있다는 것은 널리 알려져 있다. 평가 점수는 ‘자연발생적’인 것이 아니라 ‘인위생산적’인 것이며, 무엇을 어떻게 측정하고 숫자화할 것인가에 대한 ‘규칙’에 따라 상당히 달라진다. 그럼에도 일단 생산된 숫자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은 채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따라서 타당하고 신뢰할 수 있는 척도로 둔갑한다. ‘숫자’는 투명하고 엄밀한 기호로서 해석을 필요로 하지 않기 때문에 또는 금지하기 때문에, 그것의 태생에 담겨 있는 이런 편향과 왜곡 과장을 어둠상자(black box) 속에 감춰버리는 것이다. 그리고 뿌리를 감춘 이런 숫자들이 교수들을 줄 세우고 차별하는 근거가 된다. 

악마는 미세한 곳에 있다. 교육부가 강제하고 대학들이 실행하는 ‘실적평가’는 동일한 척도로 측정할 수 없는 질적으로 상이한 것들을 양적 차이로 왜곡하고 환원하는 폭력적인 장치이다. 정확히 말하면, 실적 평가는 교수들을 차별하기 위해 억지로 차이를 만들어내는 제도라고 해야 한다. 차이를 이유로 차별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은 이제는 상식에 속하는 ‘정의’이며 규범임에도 교육부와 대학은 개발연대의 사고에 사로잡혀 있다. 그리고 그분들도 알고 있겠지만, 이런 장치를 강제하는 밑바탕에는 사람을 자극-반응 또는 행위-보상의 관점에서 이해하는 공학적이고 도구적인 행동주의적 세계관이 자리하고 있다. 그분들은 보상을 차별하면 사람들이 우대받는 쪽으로 태도와 행동을 변경할 것이라고 믿을 것이다. 

물론 그렇게 되는 사람도 적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사람을 자극-반응의 기계적 존재로, 예측과 통제의 대상으로 취급하는 이런 공정하지도 않고 효율적이지도 않은 접근은 연구와 교육에 필수적인 창의력을 억압하는 反연구적, 반교육적인 것일 뿐 아니라, 사람의 주체성과 능동성을 무시하는 ‘반인간적’인 것이다. 사족을 하나 덧붙인다. 요즘 대학들은 ‘차별받지 않으려고’ 2018 대학 기본역량 진단 ‘평가보고서’ 작성에 사활적으로 집중하고 있어, 다른 업무가 마비될 지경이다. 꼬리가 몸통을 흔들고 있다.

 

이기홍 논설위원/강원대·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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