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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인 칼럼] 제로섬 게임에 몰린 대학생들
[편집인 칼럼] 제로섬 게임에 몰린 대학생들
  • 설한 편집인
  • 승인 2018.02.22 18: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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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위기’ 담론은 지난 30여 년간 그 내용을 달리하며 끊임없이 이어져 왔다. 이제 ‘대학의 위기’란 말이 낯설지도 않고 일상화된 느낌이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대학총장들은 일제히 위기상황임을 강조하며 대학의 변화와 혁신, 소통과 화합의 필요성을 외치고 있다. 그 위기의 중심에는 학령인구 감소에 따른 재정난, 구조개혁, 4차 산업혁명 시대의 도래가 있다. 이에 맞선 총장들의 요구사항은 하나같이 대학정책의 자율화와 정부 재정지원의 확대로 귀결된다.

문제는 확고한 교육 철학과 목표 그리고 자생력 확보와 목표 달성을 위한 구체적인 처방의 제시는 없이 오직 돈타령뿐이라는 사실이다. 물론 재정확충은 필요하지만 돈이 지배하는 교육은 교육이 아니다. 재정지원만이 능사가 아니며 대학체제 전반에서 공공성 확립을 위한 과감한 정책 전환과 실천이 있어야 한다. 지금 대학의 변화와 개혁은 주장의 차원이 아니라 긴급히 실현해야 할 현장상황이건만 여전히 추상적인 담론 수준에 머물러 있을 뿐이다. 자구노력 없이 어설픈 철학과 정부가 제시하는 설익은 정책의 실험장에 머무르고 주는 돈 잘 쓰는 데만 주력한다면 무슨 대학으로서의 존립 의의가 있는가.

대한민국의 교육정책이 갈팡질팡하는 까닭은 교육의 목적에 관해 사회적 합의가 없기 때문이다. 대학(교육) 역시 이해관계가 충돌하고 공통성을 고민하는 공간이다. 그리고 교육정책의 공공성을 구성하는 것은 가치와 목표의 공감이라 할 수 있다. 요컨대 대학도 정치적인 장소다. 정치는 최선의 해결책을 찾아 가능성을 현실로 바꿔가는 과정 자체다. 따라서 교육 문제는 모두의 참여를 필요로 하는 정치와 소통의 문제가 된다.

대학개혁은 궁극적으로 대학을 구성하는 주체들의 상황에 대한 고려와 참여 없이는 이뤄질 수 없다. 어디까지나 교수와 학생들이 주인공이다. 하지만 특히 학생들은 대학의 주인임에도 불구하고 정책 결정과 운영 과정에서 늘 소외되어 왔다. 대학은 정부를 탓하고, 정부는 대학을 탓하는 책임전가의 악순환에 끼어 학생들만 인질로 잡혀있다. 게다가 질 높은 교육서비스를 누리는 것도 아니고 대학 나왔다고 취업이 잘 되는 것도 아닌데, 비싼 등록금 내면서 권리 주장도 하지 못하는 학생들은 무슨 죄인가?

대학은 敎學相長의 터전이자 사회적 상호작용이 이뤄지는 공간이다. 대학은 학생들에게 깊이 있는 학문적 지식을 제공하여 다양한 형태의 사회진출을 지원하고 삶의 가능성을 확장하는 데 도움을 줘야 하며, 학생들이 지속가능한 삶을 꿈꿀 수 있도록 다양한 미래의 가능성을 열어주어야 한다. 그러나 대학이 더 나은 상품성, 즉 학벌을 획득하기 위한 재화로 전락하면서 절대다수의 대학생들은 잉여 존재가 되었다.

게다가 학생들은 대학에서 시민으로서 갖춰야 할 학문적 교양과 비판적 지성, 공공성에 대한 인식과 사회적 연대감을 습득하지 못한 채, 취업이라는 개인적 목표를 위해 기성 질서에 순응하며 현실을 외면하고 있다.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대학생 스스로가 고민할 기회를 가질 때 ‘대학의 위기’에 대한 아래로부터의 처방도 가능하건만 대학 내 권리에 대해 알려고도 하지 않고 변화가 이뤄지기만을 바라며 제로섬게임에 몰두하는 안타까운 현실이다. 미래에 대한 불안과 공포는 다양한 대학생활의 가능성과 그 폭을 제한하고 있으며, 기회의 좌절구조가 재생산되고 있는 대학은 점차 불안과 침묵의 공간이 돼가고 있다.

위기로부터 자유로운 조직은 없다. 가지 많은 나무 바람 잘 날 없다고 조직의 규모가 크면 클수록 위기도 증가하기 마련이다. 비대해진 공권력과 비대해진 대학은 비대해진 만큼 부실해졌다. 지난 30여 년간 정부와 대학과 기업의 공모 하에 차근차근 진행되어온 대학의 변질은 우리의 대학생들, ‘아픈 청춘’들을 더욱 아프게 하고, 완벽한 경쟁완전체 괴물로 만들고 있다. 이것이 진짜 대학의 위기다. 대학의 위기는 곧 교육의 위기이자 국가의 위기라는데.

 

 

설한 편집인/ 경남대 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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