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임 교수에게 드리는 권면의 말씀
신임 교수에게 드리는 권면의 말씀
  • 신복룡 전 건국대 석좌교수
  • 승인 2018.02.05 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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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로칼럼] 신복룡 전 건국대 석좌교수·한국정치사

지금쯤이면 새 학기에 신임 교수로 임명된 신진학자들이 부푼 꿈과 각오로 첫 학기를 준비할 때입니다. 교수가 되려면 선대 3대의 積德이 있어야 한답니다. 돌아보니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직업이 교수가 아닌가 싶고 다시 태어나도 교수를 하고 싶습니다. 감사하고 정진하여 학자로서 芳名을 남기기 바라면서 이 어려운 취업난의 시기에 좋은 직장 잡으신 것을 축하하며 몇 가지 권면의 말씀을 드립니다.

저는 이미 팔순을 바라보는 나이이지만 이 계절에는 아직도 잠을 이루지 못합니다. 이때가 교수 발령 여부가 결정되는 계절이기 때문입니다. 그 무렵 저는 차가운 성당 문을 부여잡고 나에게 교수의 길을 열어 준다면 학문에 뼈를 묻겠다고 수없이 다짐했습니다. 여러분도 저처럼 발령 통지 받기 전까지 성당에서, 교회에서, 법당에서 처절하게 기도했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자신을 포함하여 50세 넘어서도 초심을 잃지 않고 학문에 전념하는 모습을 보기 드물었습니다.

정치학계의 어른이신 김운태 교수께서 82세에 논문을 발표하시는 것을 보고 “나도 저런 노년을 맞고 싶다”고 다짐했지만 저는 그 약속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일연 스님이 『삼국유사』를 집필하기 시작한 것이 70대 후반이었으며 최태영 박사가 고구려사를 탈고한 것이 102세였으니 그에 견주면 나는 아직 늦지 않은 셈이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학자란 공부에 싫증내지 않고(學不厭) 가르침에 게으르지 말라(敎不倦)” 했습니다. 곁눈질하지 마시고 뒤돌아보지도 마십시오. 단테가 베아트리체의 손을 잡고 연옥에 들어갈 때 수문장 피에트로는 “뒤 돌아 보지 말라”고 부탁했습니다. 학문이란 연옥과 같습니다.

저는 과분하게도 2001년에 학회 총회에서 학술상을 받으며 수상 연설에서, 정중하게 선배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젊은 학자들에게 “입시 준비하는 자녀들보다 먼저 잠자리에 들어서는 안 됩니다. 절차탁마하여 돋보기 쓰기 전에 일가를 이루시기 바랍니다”고 말했습니다. 그때 저도 이미 환갑의 나이였고 젊은이들에게 진심으로 한 말이었는데 “너 잘났다”는 비아냥거림과 함께 엄청나게 욕만 먹었습니다.

저는 교수가 직업이 아니라 신분이라고 생각하고 살았습니다. 교수는 성직과 같은 것이어서 저는 강의실에 들어가기에 앞서 강의안을 세 번 복습한 다음 미사에 들어가는 심정으로 강의실에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늘 두려웠습니다. 제가 불면과 불안신경증에서 벗어난 것은 정년 퇴직을 한 뒤였습니다.

저의 동료 교수인 M 박사는 수재에 명문대학을 마쳤고, 한국근대사에 관한 박사학위 논문을 쓰는 데 영어·독일어·일본어·중국어·러시아어·프랑스어·한국어 등 7개 국어를 구사한 奇才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강의실에 들어가기에 앞서 빈 강의실에서 실시간에 같은 톤으로 강의를 연습하고 들어갔다는 말을 듣고 나는 아직 멀었다고 절망한 적이 있습니다.

저는 성공한 교수가 못되었기 때문에 막스 베버의 말을 빌려 여러분에게 드리는 권면의 말씀을 대신하고자 합니다. 그의 말에 따르면, 학자는 첫째, 자기의 직업에 대하여 천직으로서의 소명감을 가지고, 둘째 수도사에 가까운 겸손함으로 스스로를 다짐해야 하며, 셋째 오류에 빠지지 않도록 청교도적 자기 성찰을 해야 하며, 넷째 자기의 주장[이론]에 대하여 무한책임을 져야 한답니다.

끝으로 젊었을 적에 몸을 혹사하지 말고 건강에 유념해 주기 바랍니다. 역사적으로 석학들은 장수했습니다. 요절한 수재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역사에 남는 글을 쓰기에 인생 70년은 결코 충분한 시간이 아닙니다. 인생은 백마가 달려가는 것을 문틈으로 내다보는 것처럼 빨리 지나 가는데(人生如白駒過隙) 역사에 남을 한 권의 글을 쓰는 데는 20년이 부족합니다. 애덤 스미스도 그랬고, 칼 마르크스도 그랬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께서는 아무쪼록 자중자애하며, 인생을 길게 보고 각고면려해 주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여생을 절약하십시오.”(Rene Descartes, Method, Chap. 6)

 

 

 신복룡 전 건국대 석좌교수·한국정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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