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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요된 복종, 儀禮
강요된 복종, 儀禮
  • 권혁범 대전대
  • 승인 2003.05.12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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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비평

노무현 대통령이 신임 장관들에게 임명장을 수여하는 자리에서 대통령과 장관간의 거리가 화제가 된 적이 있다. 그 거리를 과거보다 줄였다. 거리가 넓으면 장관들이 고개를 지나치게 숙여야 하기 때문이다. 그게 권위주의적인 관행이라는 인식에 공감대가 형성됐다. 사소한 것 같지만 거리와 공간의 정치학은 사실 그런 의례에서 확인되고 강화되기 마련이다.

나는 여전히 몇열종대로 군인처럼 부동자세로 서 있다가 앞으로 나가서 임명장을 받는 의례자체가 매우 권위주의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의식은 군대에서는 필요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한 나라의 장관이 되어 어떤 부서의 책임을 맡게 되는 사람에게 그런 식으로 임명장을 주는 것은 뭔가 장관이 대통령의 ‘졸병’, ‘부하’라는 메시지를 암시하게 된다. 다른 선진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장관에게 그런 군대식으로 임명장을 주지는 않는다.

이창동 신임 문화부 장관이 자신의 부서에서 의례식인 취임식을 거절하고 공무원 문화의 혁신을 강조한 것은 단순히 영화감독 출신 장관의 스타일 때문만은 아닌 듯 하다. 대통령-장관의 관계나 장관-일반 공무원간의 군대식 권위주의적 관계의 상징화 장치가 사실 책임정치/행정과 민주적 사회 관계를 가로막는 지도 모르기 때문이다(최근 유시민 의원의 평상복 차림 등원을 둘러싼 논란에도 사실 ‘양복 + 넥타이’ 정장이 은근히 강제하는 비민주적 남성 중심적 집단주의 문화의 반발이 숨겨져 있다).

공무원사회는 그렇다고 치자. 대학에서 월급 받는 학자로서 참 곤혹스러운 때는 승진이나 재임용과 관련하여 임명장을 받는 행사 때다. 넥타이 매고 다열종대로 서 있다가 이름이 불리면 나가서 경례하고 임명장 받고 악수하고 뒤로 물러선다. 심지어 집단적인 ‘차려! 경례!’ 구령에 맞추어 인사를 하고 나면 학자로서의 자존심과 독립적 정체성은 허깨비였다는 생각이 든다. 지식인은 자존심과 독립성 갖고 먹고사는 존재인데 그것에 정면으로 타격을 가하는 셈이다. 아, 나라는 인간은 결국 사립학교 ‘주인’에게 내 교육적 생명이 잡혀있는 존재이구나! 이런 암시를 노골적으로 확인 해주는 의식 아닌가(사실 의례의 목적은 바로 그런 쌍방간 확인 절차인지도 모른다). 한마디로 현실의 권력관계를 확실하게 일깨워주는 의식이다.

임명장 수여 의례 말고도 이런 ‘사소한’ 장치들은 수없이 주변에 깔려 있다. 물론 어떤 사람들에게는 그게 지엽적인 의례에 불과할 수 있다. 그리고 더욱 중요한 것은 재임용제를 비롯한 교권침해를 유발하는 각종 제도, 특히 ‘사립학교법’을 개정하는 일이다. 하지만 일상적 차원에서의 문화를 바꾸는 것도 그에 못지 않게 중요하다. 그런 수직주의적 위계질서 문화 재생산에 동참함으로써 사실 학자는 비학문적 권위에 대한 자발적 복종을 연습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학교는 회사고 총장이나 이사장은 ‘주인’이고 나는 그저 월급쟁이에 불과한가. 임명장을 받는 자리가 굴욕적인 느낌을 준다면? 그리고 거기가 그것을 숨기고 참고 견디라는 암시를 주는 장소라면? 자신의 영혼에 스스로 외부로부터 오는 상처를 입힐 때, 자신이 사익집단의 평범한 구성원에 불과하다는 자괴감을 스스로 수용할 때, 캠퍼스에서 학문의 자유와 독립성은 보장될 수 있을까. 자기 자신을 존중하지 못할 때 거기서 나오는 지식인의 글과 말은 진정성을 갖게 될 것인가.

60년대만 해도 월급이 형편 없었고 독재시대였지만 교수는 학교당국에서 ‘모셔오는’ 존재였다. 어떤 권력에 의해 ‘명’을 받는 존재는 아니었다. 물론 금수강산에 대학이 넘쳐나고 너도나도 박사인 세상에서 대학 교수가 별종 대접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싶지는 않다. 교권을 성역화하고 싶지도 않다. 교수 스스로 굴종과 굴욕의 굴레 안에 들어가기를 자처하거나 그 안에서 부귀영화를 부끄럽게 누렸던 시절이 있었으니 더욱 그렇다.

하지만 교수-학자는 여전히 한 사회의 공론과 과학을 만들어내고 주도하는 집단이다. 그것이 의미 있는 이론과 실천에 연결되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지식인들의 독립성, 무한한 자유, 진실 같은 것이다. 필연적으로 끊임없이 발생되는 갈등과 분열을 조정하는 사회적 능력은 공론과 과학의 객관성과 공정성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존중되지 않으면 파당 적인 이야기, 파편적 분열화, 사이비 과학, 관료주의적 학문, 알맹이 없는 허례 학문이 판을 치기 마련이다. 독립적인 학자는 그래서 가장 존중받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제도적 물질적 뒷받침도 중요하지만 일상적으로 학자-교수를 존중하려는 마음이 일상적으로 사회적으로 퍼져있어야 한다.
임명장 수여 의례, 좀 바꿀 수 없을까.

권혁범 대전대·정치외교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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