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과학자가 되기까지
생명과학자가 되기까지
  • 김성한 숙명여대 생명시스템학과 리서치펠로우
  • 승인 2017.12.04 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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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후속세대의 시선] 김성한 숙명여대 생명시스템학과 리서치펠로우

내 나이 40 중반이 돼서야 가까스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어렸을 적부터 나는 어렴풋이 과학자 같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뭔가 좀 특별해 보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중고등학교 학창시절 내내 인문, 사회과학 교과목은 별 노력 없이도 좋은 성적을 낼 수 있었지만, 수학을 위시한 모든 과학 교과목은 항상 낙제점을 면하지 못했다. 생물 과목 하나만은 예외였다. 전혀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짧은 기간 내에 무조건 외우면 됐으니 말이다. 어쨌든 이공 계통 과목들이 나의 적성에 큰 괴리가 있다는 것은 자명해 보였다.
 
고 3때 다리에 큰 수술을 받게 돼 학교를 몇 개월 결석하고, 입시 준비에도 차질을 빚게 됐다. 결국 재수의 길로 접어들어 문과로 진로를 바꾸게 됐고, 이듬해에는 경제학과에 진학을 하게 됐다. 남들이 알아주는 명문대의 간판학과였지만 그 어떤 동기부여도 가져다주지 못했고, 학업을 일체 등한시 하면서 결국 3년을 채 채우지 못하고 학교에서 제적됐다.

다시 시작하는 수밖에 없었다. ‘이제는 정말 하고 싶은 걸 해 보자’며 미국으로 떠나 생물학과에 지원을 했다. 26살의 늦은 나이에 학부 1학년부터 다시 시작한 거였다. 처음부터 겸허한 마음으로 다시 들여다보기 시작하니, 그렇게 지겨웠던 수학, 물리, 화학 과목들이 모두 흥미롭게 느껴졌고 성적 또한 좋을 수밖에 없었다. 최우등생으로 학부를 졸업하게 됐고, 아이비리그 학교 대학원 한 군데서 입학 허가서를 받았지만, 장학금 조건이 월등한 주립대 대학원으로 진학을 했다. 그런데 돌이켜보니 딱 거기까지였던 듯싶다.

그 잘난 박사학위를 얻는 데 12년이 걸렸다. 중간에 지도교수와의 불화로 실험실을 옮기게 되고, 새로 옮긴 실험실에서 지도교수에게서 여러 부당한 대우를 받게 되면서 연구수행에 차질을 빚게 된 측면도 없진 않았지만, 성실하고 꾸준하지 못한, 기복이 심한 실험실 생활이 가장 큰 원인이었음을 누구보다도 나 자신이 가장 잘 안다. 며칠 밤을 연속해서 새워가며 미친 듯이 실험을 할 때도 빈번했지만, 자포자기한 마음으로 한 달이 넘도록 아예 실험실을 나가지 않는 경우도 많았으니까. 학과 교수들의 도움으로 그나마 졸업을 할 수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듯싶다. 그만 포기하고 지도교수의 회사에서 연구원으로 일할까 하는 유혹에 몇 번을 망설이기도 했지만, 그깟 박사학위가 뭐라고 그래도 끝까지 믿고 기다려 준 아내와 부모님들을 실망시킬 수는 없었다. 미국에서 자리 잡기 위해 필요한 비자 등을 미리 알아볼 준비성 따윈 전혀 없었던 나였기에 졸업 후 박사후 연구원으로 일하던 나는 합법적으로 미국에서 체류할 수 있는 기간을 소진한 몇 년 후에 귀국했다. 떠난 지 22년 만이었다. 이런 가운데 연구재단의 학문후속세대양성사업은 내게 늘 가뭄에 단비 같은 존재였다. 박사학위 논문 주제를 지도교수와 어떠한 상의도 없이 독립적으로 발의하고 완성시킨 나로서는 이 주제에 관해 계속 독립적으로 연구를 수행하고 싶었는데, 연구재단의 과제 지원사업은 이를 가능하게 해주었다. 무엇보다도 독립적으로 연구비를 확보해 내가 하고 싶었던 연구를 수행 할 수 있게 된 시스템이 내겐 너무 다행스런 일이라고 할 수 있겠다.

돌이켜보면 ‘생명과학’이란 분야를 우여곡절 끝에 나의 직업으로 택하게 된 건 참 훌륭한 선택이었다고 여겨진다. 넥타이를 매고 은행 같은 곳에서 일하는 나를 떠 올리기만 해도 숨이 막히니까. 간혹 내 수업을 듣는 학생들이 내게 물어오곤 한다. 생물학을 연구하는 과학자라는 직업이 어떠냐고. 항상 새로운 일을 찾아서 할 수 있는 점이 개인적으로 참 좋다고 늘 답한다. 다만 생물학을 어떻게 하면 잘 할 수 있느냐고 물어온다면, 난 언제나 한결같이 이야기 한다. 수학이나 물리를 잘 하든가, 이도 저도 아니면, 화학이라도 잘 하든가 해야 한다고. 생물학이 단순히 암기과목이라고 잘못 여겼던 내 지난날의 무지함을 스스로 속죄하는 마음에서.
 

 

김성한 숙명여대 생명시스템학과 리서치펠로우

미국 오하이오 주립대에서 분자유전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식물의 TOR (Target of Rapamycin) 신호전달에 관한 주제로 다수의 논문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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