끌려 다니는 학문, ‘끌고 가는 학문’
끌려 다니는 학문, ‘끌고 가는 학문’
  • 최상진 경희대 명예교수
  • 승인 2017.11.27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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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로칼럼] 최상진 경희대 명예교수·국어학

이미 오래 전에 작고하셨지만 원로 국어학자 이숭녕 선생께서 1987년 서울대 대학신문에 ‘학문의 독창성의 구상’이라고 하는 제하의 칼럼을 쓰셨는데, 글 속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온다.
 
“오늘의 국어학은, 흡사히 미국에 가서 영어학을 전공하고 언어학의 학위를 취득한 언어학자들의 주장에 이끌려 좌지우지당하고 또는 갈팡질팡하는 느낌이 크다. 국어는 외국어와는 다른 특성을 지니고 있다. 그러므로 어느 정도 외국의 이론을 이해했으면 국어학의 독창성을 찾는 작업으로 나가야 할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독창성의 구상으로 새것을 만들려는 작업이 요망된다.” 꼭 30년 전 글이지만 지금도 공감이 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지금은 지방의 모 대학 철학과 교수가 된 분의 지난 이야기다. 서양 철학을 연구하기 위해 영국으로 건너갔고, 박사과정에 입학하기 위해 교수 인터뷰를 했다. 철학과 교수가 물었다. 당신은 당신 나라의 철학을 얼마나 알고 있냐고. 쭈뼛쭈뼛 대답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이퇴계, 이율곡 어쩌고저쩌고 영어로 횡설수설 하니까 교수가 말을 끊었다. 당신은 당신 나라의 철학을 제대로 소개하지도 못하면서 여긴 왜 왔냐고. 그 분은 그날로 곧 귀국했고 절치부심하여 다시 동양철학을 이해하고 다시 영국으로 건너가 서양철학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국내에 들어와 교수가 됐다.

              우리가 속해 있는 ‘동양’이라는
              원료를 곰곰이 곱씹어 생각해 볼 때가
              왔다. 방법론적 원자재를 바로 코앞에
              두고도 서양이라는 먼 타국 땅에서
              찾아다니고 있지 않은지,
              스스로 되물을 필요가 있다.

 

십 수 년 전의 일이다. 모 학회 논문 발표회에서 당시 중진 학자 한 분이 “나는 이렇게 외국 이론을 잘 이해하고 있노라”고 호기 있게 발표하는 장면을 본 적이 있다. 실소를 금할 수 없었다. 외국 이론을 잘 이해했다면 그 이론을 그대로 국어에 적용·수용할 것이 아니라, 그 이론을 비판하고 우리에게 알맞은 새 논점을 제시하는 것이 학자다운 자세일 것이다. 물론 서구 이론이 유입되면서 국내 학문의 전 영역에 걸쳐 확고한 논리적 틀을 세워가고 있으며 그 연구업적도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두고 있다. 참으로 바람직한 일이기는 하나, 그렇다고 해서 언제까지 끌려 다니는 학문만 할 수 없다. 우리의 학문 수준도 이 정도라면 이제 그 방법론적 종속의 틀을 깨고 독창성 있는 새 이론을 제시할 때가 왔다고 본다.

라이프니츠의 이진법이 주역의 효변 원리에서 영감을 얻어 만들어낸 진법체계라는 것은 익히 알려진 얘기다. 라이프니츠의 1과 0, 주역의 양괘(─) 음괘(─ ─)가 철학적 동형성을 가진 것은 아니지만, 라이프니츠가 이진법을 구상하면서 동양의 음양론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것은 분명하다. 우주를 음과 양으로 살핀 동양의 인문학적 우주관이 서양으로 건너가 서양의 자연과학적 수리체계로 탈바꿈되고 훗날 컴퓨터를 탄생시킨 기본원리가 된 것이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현대 물리학의 최대 성과라 불리는 닐스 보어의 양자역학 이론은, 동양의 태극론이 이론적 기초다. 닐스 보어가 노벨상을 수상할 때 태극무늬가 새겨진 도포를 입고 나와 내 이론은 여기서 출발한다고 했다던 얘기는 유명한 일화다. 닐스 보어 가계의 문장도 태극무늬가 새겨진 문장을 사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독창적인 새 이론적 패러다임을 생각하면서 우리는 우리가 속해 있는 ‘동양’이라는 원료를 곰곰이 곱씹어 생각해 볼 때가 왔다. 방법론적 원자재를 바로 코앞에 두고도 서양이라는 먼 타국 땅에서 찾아다니고 있지 않은지, 스스로 되물을 필요가 있다.

매년 어김없이 석 박사 논문심사 기간은 돌아온다. 그리고 심사교수들은 긴장하고 있는 석 박사 학위과정 학생들에게 논문의 독창성과 창의성을 주문할 것이다. 그러나 정작 교수 자신은 외국 이론의 수입업자에 지나지 않는다면, 학문을 시작하는 초보 후학들에게 면목이 없다. 밤늦도록 환하게 켜진 도서관과 연구실. 이 아름다운 모습에서 국가의 미래를 본다. 그 아름다움 속에서 세상을 끌고 가는 멋진 학문이 잉태되기를 간절히 기대해 본다.

 

최상진   경희대 명예교수·국어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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