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學而思]한국음악에서 마음읽기
[學而思]한국음악에서 마음읽기
  • 김혜정 경인교대 음악교육과
  • 승인 2017.11.13 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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學而思

 

김혜정 경인교대·음악교육과

필자의 전공은 한국음악이론이다. 많은 사람들이 어떻게 그런 전공을 하게 되었는지 궁금해 한다. 그런 전공이 있는지도 몰랐다는 반응이 대부분이다. 필자가 국악을 본격적으로 공부하기 시작한 것은 고등학교 때이다. 평소 필자가 가장 좋아하는 것이 음악이니 뭔가 음악을 하면서 평생을 살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대학에 어떤 전공들이 있는지 찾아 다녔었다. 음악을 전공하고 있는 친구들의 레슨 장소를 따라가 보기도 했다. 바로 거기에서 판소리와 가야금을 만나게 됐다.

판소리를 처음 들었을 때를 잊을 수 없다. 서양의 클래식을 더 많이 접했었고 그 음악의 맛을 알기 시작했을 때였지만, 처음 듣는 판소리에 온통 마음을 빼앗겨 버렸다. 충격적이기까지 했다. ‘왜 이 음악을 그동안 모르고 있었지? 앞으로 나 같은 사람들에게 판소리가 얼마나 대단한지 알리는 일을 해야겠다.’ 그것이 필자의 초심이었다. 그래서 찾아낸 전공이 국악작곡이론이었고, 선생님을 찾아가 필자를 가르쳐달라고 말했다.

한국인으로서 한국음악을 공부하는 것 자체가 확고한 의지와 신념이 됐다. 한국인이기 때문에 한국음악을 공부하는 것이 당연하고, 재미있고, 자랑스러웠다. 그리고 한국음악은 더 알면 알아 갈수록 훌륭해서 그 멋진 모습 덕분에 전공에 대한 자부심은 더 커졌다.

그러던 필자에게도 슬럼프가 있었다. 석사 졸업 이후 눈앞의 생활고와 막막한 미래가 버거웠고, 예술과 학문을 하기엔 현실이 가혹하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힘들었을 때, 민요 현지조사에서 만났던 어르신들의 말씀들이 떠올랐다. 논농사에 부르던 민요를 불러주시면서 ‘이 노래가 마약이여. 힘든 것을 잊게 해주거든’이라 말씀하시던 할아버지, 시집살이를 불러주면서 ‘이 노래가 나를 살렸어, 이 노래를 부르면 답답한 속이 탁 풀어진단 말이요’라며 마음을 보여주시던 할머니의 이야기가 기억났다. 그래서 나도 불러보았다. 그 노래들을 내 노래로 만들어, 나의 이야기를 가사로 만들어 불렀다. 그리고 깨달았다. 음악은 여유로운 자들만 누리는 사치품이 아니라 가장 힘든 사람들의 생명줄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석사 이후 잠시 접었던 필자의 공부는 이로써 다시 시작되었다. 공부를 업으로 삼지 않더라도 시집살이노래 이야기만은 논문으로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무엇을 하고 살던지 음악의 중요성과 그 가치에 대해 계속 글을 써야겠다고 다짐했다. 박사 진학이나 이후의 과정은 그저 과정이었고, 나는 다른 생각 없이 여전히 한국 음악을 사랑하고 그 소중함을 알리기 위해 애쓰고 있다. 우리 것이니까 좋다거나, 지켜야한다는 맹목적 당위성이 아니라 우리음악이 얼마나 우수하고 특별한지 객관적인 논증과 근거를 찾아 제시하려 노력하고 있다.

한국음악이론도 다른 학문 분야와 마찬가지로 처음에는 넓고 다양하게 공부하지만, 점차 더 깊이 공부하고 싶은 분야로 나아가게 된다. 애초의 초심이 판소리에서 비롯되었기에 석사논문은 판소리로 쓰게 됐다. 그리고 박사논문은 판소리의 기층으로 작용했을 것으로 여겨지는 민요를 주제로 잡았다. 그리고 20대부터 지금까지 대부분의 주말과 방학은 민요와 농악, 굿과 같은 구전음악을 현지조사하고, 전승하는 이들을 인터뷰하는 일에 투자하고 있다. 가끔은 외국의 사례를 조사하러 가기도 한다. 현장에서 녹음한 음악은 악보로 만들고 이를 연구의 소재로 삼고 있다.

음악을 사랑하는 어르신들을 만나는 일은 필자에게 가장 큰 행복이다. 음악교육을 받아본 적 없는 그들의 입에서 ‘노래는 마음을 담는 것’이라거나 ‘이건 내 노래여’, ‘그 노래도 못 하믄 사람인가?’라는 이야기들을 들을 때, 꽹과리와 장구를 연주하는 표정과 몸짓에서 감출 수 없는 신명과 기쁨이 새어나올 때, 눈물 나게 감동스럽다. 그리고 평생 농사를 짓고 뱃일을 했던 이들에게서 그들이 터득한 자연의 섭리와 인생의 깨달음을 전해들을 때 절로 존경심이 우러난다. 필자는 현장에서 얻은 에너지로 공부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다.

학문에 있어서는 아직 경지에 이르지 못했기에 이런 글을 쓰는 것이 부끄럽다. 하지만 지금의 필자가 느끼는 수준에서 말해보자면 이렇다. 공부를 한다는 것은 필자를 알아가는 과정인 것 같다. 어린 시절에는 여자인 것이 싫었고, 시골 출신인 것도 싫었고, 필자 자신이 늘 불완전하다고 느꼈다. 그러나 민요를 공부하면서 여성성에 대해 이해하게 됐고 스스로 여성인 것이 자랑스러워졌다. 또 나를 비롯한 한국인의 미적 취향과 음악관이 어떤 것인지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한국음악을 공부를 한 덕에 필자는 한국인으로서의 필자자신과 연구영역을 이해하고 사랑할 수 있게 됐다.    

김혜정 경인교대·음악교육과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저서로는 『판소리음악론』 등이 있다. 문화재청 문화재 전문위원을 역임했으며 월산민속학술상, 이혜구학술상을 수상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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