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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지-않은’ 대통령을 위해
‘젊지-않은’ 대통령을 위해
  • 배병삼 영산대
  • 승인 2003.05.05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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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비평

학교 가는 길목에 떡장수가 있다. 간식거리가 마땅찮아 가끔 인절미를 사곤 한다. 언제부턴가 이렇게 빵보다는 떡에 손이 더 간다. 어릴 때는 고기도 기름에 튀긴 것이 좋았는데, 요즘은 찌거나 삶은 것이 더 낫다. 음식에 대한 기호가 바뀌는 것은 나이 드는 징표일 것이다.

요즘같이 젊음과 정력이 숭상되는 시대에 ‘나이를 먹는다’는 느낌은 아뜩한 두려움을 동반한다. 늙음은 곧 ‘쓰임새 없음’의 다른 말이어서, 그 다음에 기다리는 것은 질병과 죽음 뿐이기 때문이다. 즉 오늘날 인생이란 ‘생-노-병-사’의 일직선일 따름이니, ‘늙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 절박한 화두로 와닿는다. 의학의 최대 관심사가 ‘노화방지’인 것도 이런 시대정신에 부합한다. 

그런데 태어나서 늙고 또 병들어 죽는 것은 모든 생명체가 밟는 길이다. 인간이 대단한 것은 이 생로병사의 일직선을 다양하게 변주할 줄 알기 때문이다. 예컨대 물리적으로는 늙음으로 가는 길이 낙하 혹은 추락일지라도, 화학적으로는 ‘미숙’에서 ‘노숙’으로의 승화과정임에 주목하는 것이 인간이다. 특별히 이런 ‘화학적인 샛길’에 유의해, 늙음의 아름다운 의미를 강조하는 것이 人文學(사람의 무늬에 대한 학문)이다.

인문학은 젊은이(미숙)에게 늙음의 경지(노숙)를 앞당겨 익히게 함으로써 삶을 두텁게 만들기도 한다. 이것이 고전교육의 뜻이다. 가령 老子야 애초부터 ‘늙은이’라는 이름을 달고 나선 것이니 두말할 것이 없지만, 공자의 주장 역시 신중함(愼), 삼감(謹), 말조심(訥)같은 늙은이의 훈계로 채워져 있다. 즉 인문학, 특히 고전교육은 미숙한 젊음에게 늙음의 엣센스를 주입함으로써 ‘숙성’시키는 과정이다. 마치 인삼을 쪄내어 홍삼으로 만드는 것과 같은 이치겠다. 이런 훈습을 겪은 젊은이가 어찌 젊기만 하랴. 그렇다고 늙은이는 또 아니니, 젊되 젊지만은 않은 이 제 3의 길이 ‘젊지-않음’ 곧 ‘점잖음’일 터였다. 예로부터 ‘그저 젊기만 한 자’를 小人이라고 칭한 데 반해, ‘점잖은 사람’을 君子로 구별하여 ‘젊지 않은 젊음’의 패러독스를 숭상한 것도 다 까닭이 있는 일이었다.

요즘 노대통령의 ‘젊은’ 언행이 아슬아슬하다. 미국과 이라크 문제에 대한 ‘원칙주의’적 인식과 ‘실용주의’적 정책 사이의 괴리라든지, 서동구씨의 KBS사장 선임과 국정원장 임명을 둘러싼 직설적 발언과 뒤처리 미숙 등이 시비를 불러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한쪽에서는 그 특유의 젊음을 벌써 잃어간다고 비판하고 또 한쪽에서는 대통령이 돼서도 젊음(이상)에 집착한다고 비난한다. 대통령도 ‘虎視牛行’이라는 드문 말까지 쓰가며, 이쪽저쪽을 함께 어루만지려 한다. 그러나 원칙과 실제 또는 효율과 이념 간의 괴리는 강대국 사이에서 ‘생존’을 염려해야 하는 우리 정치의 운명같은 것이다.

‘문화비평’이 보기에 오히려 주의할 점은 대통령의 ‘젊은’ 언어구사가 빚을 말의 재앙에 있다. 그의 말투는 구체적이고 직절적이서 특정한 환경 속에서는 설득력이 크지만, 대신 해석의 꼬리를 길게 드리운다. 대통령은 자기 말의, 맥락을 벗어난 확대해석을 경계하지만(또 이 때문에 신문들을 탓하기도 하지만) 그러나 구체적 사안마다 사람들을 설득하다 보면 말이 많아지지 않을 수 없고, 또 그러다보면 자기 말을 스스로 뒤엎는 경우도 생기게 마련이다.

食言은 특별히 정치지도자에게 치명적인 것이다. 식언을 자주 하게 되면 국민들(또는 외교 상대국)은 식상하게 되고, 식상하면 신뢰가 사라지고, 신뢰를 잃으면 경멸을 당한다. 예로부터 “최악의 통치자는 업신여김을 당하는 자이니, 말을 귀하게 여겨야 한다”(도덕경)든지 “지도자가 신중하지 않으면, 위엄이 생기지 않는다”(논어)는 지적들은 말이 초래할 재앙을 염려한 데서 비롯한 것이다.

젊음이 미래지향적이라면, 점잖음은 미래의 청사진이 드리우는 그림자도 함께 헤아린다. 또 젊음이 미숙함으로 인한 경망으로 나가떨어질 가능성이 크다면, 점잖음은 늙은이의 묵중함을 아울러 신중함의 길을 지향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대통령의 젊음은 하루빨리 점잖음으로 심화돼야 할 터인데, 무엇보다 말조심과 신중한 처신에서 길을 찾아야 할 것이다. 5년이라는 재직 기간은, 말을 아끼고 삼가 하더라도 제 말을 스스로 부정하는 식언의 실수를 저지르기에는 긴 세월이기 때문이다.

덧붙여 “가볍게 처신하면 그 근본을 잃고, 조급히 행동하면 임금의 자리를 잃게 될 것”(輕則失本, 躁則失君. 도덕경, 26장)이라는 말도 ‘늙고 낡은’ 것이긴 해도, 젊은 대통령의 점잖음(젊지-않음)을 위한 충고로 새겨둘 만한 것이리라.

배병삼 영산대·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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