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絶滅의 기획
絶滅의 기획
  • 교수
  • 승인 2003.04.28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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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비평

1. 우리나라는 정의 인도를 위하여 인류의 평화를 위하여 싸우고 있다.
2. 따라서 전쟁 발발과 지속의 책임은 전적으로 적에게 있다.
3. 우리나라가 응하여 싸우는 것은 적의 도발로 인한 어쩔 수 없는 ‘대응’이다.
4. 그러나 우매 무성의한 적이 전쟁을 계속할 의사를 꺾지 않는 한 우리나라는 먼저 그만둘 수는 없다.
5. 따라서 적의 굴복을 보기까지 최후의 일인까지 싸운다.
6. 승산은 우리에게 있지 적에게 있지 않다는 확신을 가져야 한다.

이 여섯 가지 강령은 왠지 낯설지가 않다. 미국의 이라크 침공과 ‘승리’, 이어지는 북핵 위기설을 보면 이 6대 강령의 힘이 역사를 초월해 대단한 ‘파워’를 지속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6대 강령은 이른바 ‘정의의 전쟁’이라는 이념, 혹은 명분의 토대를 이루는 것이다. 최근 역사에 있어서 이른바 걸프전을 계기로 담론 위로 급부상한 이 정의의 전쟁이라는 이념은 ‘세계 평화’와 인류 공존의 최대 적을 제거함으로써 인류의 안녕과 평화를 수호하는 싸움으로 자신의 침공을 정당화하는 전형적인 논리다. 그리고 이 정의의 전쟁이라는 이념을 통해 침공 주체는 그 누구도 부여하지 않은 인류 구제의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 ‘몸소’ 나서는 것이다.

위의 여섯 가지 강령은 일본이 이른바 ‘북지사변’을 일으키고 대동아 전쟁을 ‘선포’하는 시점에서 ‘선전’의 기본 방침으로 제출된 것이다(위 글은 ‘朝光’, 1937년 10월호에 수록된 서춘의 ‘國家와 宣傳’을 현대 한국어 표기로 바꾼 것이다). 이른바 정의의 전쟁이라는 이념은 태평양 전쟁의 도발을 ‘대동아 공영권’의 이상으로 전도하는 제국주의 논리의 전형이다. 또한 일본 제국주의는 태평양 전쟁을 통해 백인종에 의한(미국과 영국으로 대변되는) 아시아 절멸의 기획에 대한 방어선이자 보호자로서의 사명을 ‘일본’에 부여한다. 따라서 정의의 전쟁이라는 이념에는 인종 공포와 절멸에 대한 공포가 모순적으로 동반되고 환기된다. ‘과거’ 일본 제국주의에서 ‘현재’ 미국 ‘제국’주의에 이르기까지 정의의 전쟁이란 ‘공존공영’이라는 기이한 보편성의 논리와 ‘我國의 절멸 가능성’이라는 전도된 위기 담론을 통해 제국주의적 침탈과 인종 말살의 ‘사명’을 평화수호의 사명으로 전도하는 논리다.

실상 ‘정의의 전쟁’이라는 이념은 ‘정의’, ‘전쟁’이라는 두 범주가 내포하고 있는 기이한 보편성을 결합하고 있는 것이다. 실상 누구의 정의인가를 말하지 않는 정의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의’란 마치 모두의 이해관계와 공존을 보장하는 보편 범주처럼 간주된다. 또한 전쟁이라는 범주 역시 그 언어가 환기하는 재난과 파국과 절멸의 공포로 인해 언제나 ‘모두’의 문제로 환기된다. 그러나 역사가 말해주듯이 전쟁이란 결코 ‘모두’가 고통받는 그런 경험이 아니다. 전쟁은 언제나 특정 집단의 이해관계를 가속화시키고 결국 하위 집단의 고통을 가속화할 뿐이다. 오히려 절멸에 대한 공포를 환기하는 전쟁과 위기담론은 ‘모두’(all)라는 집단적 정체성을 확고히 하고(인종, 민족, 국가 단위 등의) 이를 통해 그 외의 다른 존재들을 아무 것도 아닌 것(nothing)으로 만들어버리는 ‘절멸의 기획’의 다른 이름일 뿐이다.

미국의 이라크 침공에 대한 보도들은 때로는 침공이라는 단어를 때로는 전쟁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면서 이번 사태에 대한 모호한 입장을 견지했다. 물론 이는 걸프전 보도 때와는 그래도 달라진 점이라 할 것이다. 이제 이라크전의 ‘승리’에 힘입어 북핵 위기가 담론 공간에 전면화되고 있다. 이로 인해 ‘내부적’으로는 또다시 위기 담론이 전면화되고 있다. 우리가 역사 속에서 배울 것이 있다면 전쟁 공포와 절멸의 가능성을 조장하는 위기 담론은 ‘국가와 민족의 안녕’과 ‘민중의 고통’이라는 관용 어구를 동반하지만 실제로는 특정 집단의 ‘내부’ 장악을 위한 이데올로기적 기반을 조성하는 데 더욱 효과적이었다는 점이다. 현실적으로 위기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요인들이 만연하다. 그러나 그 위기가 ‘누구의’ 위기인가를 묻는 것 또한 중요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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