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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하는 자의 고뇌
학문하는 자의 고뇌
  • 백선기 성균관대
  • 승인 2003.03.31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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學而思

요즘은 신문과 방송을 접하기가 부담스럽다. 연일 미국과 영국의 연합군이 이라크의 주요 도시들을 맹폭하고 있고, 이라크는 저항 한번 변변하게 못하면서 침몰돼 가고 있다. 우리 언론들은 이를 대서특필하면서 흥분돼 보도하고 있다. 미국과 영국의 공격 장면을 미국의 CNN 방송을 통해 실시간 중계보도하기도 하고, 이들의 공격경로를 입체적인 도상의 그래픽을 통해 상세하게 보도하고 있다. 이는 마치 인터넷에서의 ‘전쟁게임’과 같은 시각에서 접근하고 있는 것 같다. 그것도 주로 미국과 영국 연합군의 가공할 정도의 화력과 군사장비들을 중심으로 제시하고 있다.

또 다른 한편에서는 반전데모가 세계 전역에서 일어나고 있고, 특정 지역에서는 반전군중들과 경찰과의 충돌에 의해 많은 사상자들이 생겨나고 있다. 아랍권은 물론이고, 미국 및 영국 내부에서도 반전움직임이 거세게 일어나고 있다.

이번 전쟁은 실제로 전 세계적인 동의를 얻지 못한 상태에서 미국과 영국의 결정에 의해 감행된 것이다. 더욱이 세계의 주요 문제들을 논의하며 적절한 해결책을 강구해왔던 UN을 철저히 무시하면서 시도된 것이어서, 유엔의 위상이 땅에 떨어진 것은 물론이고, 이후의 국제문제들을 어느 기구를 통해서 해결할 것인가 하는 의구심이 들게 만든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국제사회는 여전히 ‘말’이나 ‘협상’보다는 ‘힘’이나 ‘무력’이 앞선다는 생각이 든다. 유엔을 통한 수많은 협상의 시도나 국제적으로 영향력 있는 국가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번 전쟁을 막지는 못했다. 수없이 많이 전개되는 세계적 반전 ‘여론’도 결국에는 아무 소용이 없었다. 국제사회는 여전히 ‘힘과 무력’이 중심이 되는 공간인 것이다.

20세기 국제커뮤니케이션 연구에서는 국제관계를 힘의 관계를 중심으로 ‘지배 대 종속’, ‘중심 대 주변’, ‘강대국 대 약소국’, ‘제국주의 대 종속주의’ 등이라는 이중구조의 프레임 아래에서, 세계의 강대국들이 어떻게 약소국들에 영향을 가하거나 세력을 확대했는가에 대해 분석하고 평가한 바 있다. 그래서 유네스코를 중심으로 이런 문제를 심층적으로 다뤄 왔으며, 국제언론학회(IAMCR)에서는 학문적으로 접근해 왔다. 그리하여 이들의 인식들을 ‘비판적 패러다임’이라고 해 전 세계적으로 높은 반향을 불러일으킨 바 있다.

그러나 20세기 후반과 21세기에 들어서면서, 이런 이중구조라는 프레임은 너무 식상하고 너무 도식적이라고 평가되면서, 학문적 논의에서 점점 사라지게 됐다. 그대신 국가 대 국가, 민족 대 민족, 권역 대 권역 등의 특수상황에 대한 특정의 시각을 적용하는 것이 보다 바람직한 시각으로 자리잡아 가고 있었다. 이것을 국제커뮤니케이션 연구에서는 ‘패러다임 전환’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국제적 현상이 여전히 ‘힘과 무력’에 좌지우지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학문이 지니고 있는 순환성이나 새로운 시각에의 조급성은 국제관계 속에서의 힘의 긴장관계를 적확하게 보지 못하게 만들었으며, 낭만적이고 낙관적인 시각은 수많은 담론만 양산하고 공허한 논쟁만 지속시켰다.
이번 전쟁을 통해 국제관계는 여전히 국가간의 이해관계가 우선이며, 그런 것이 긴장관계를 조성하고 해결의 조짐을 보이지 않을 때는 여전히 ‘무력’에 의한 강압이 발생한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더욱 커다란 문제는 이런 미국과 영국의 시도를 주변 어느 국가들도, 전 세계적으로 전개되는 반전여론도 이들의 시도를 막을 수 없다는 점이다. 현재의 국제관계는 20세기 나름대로 상대가 있었던 ‘이중구조’의 프레임보다도 더욱 불행한 상황이다. 오직 미국과 영국의 의지와 무력이 세계를 지배하는 ‘단일구조’의 프레임만이 존재하는 구조인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아무런 힘이 없는 일개 학자가 또 어떤 이론으로 이번 전쟁을 이해하고 설명하며 평가할 것인가. 한숨만 절로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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