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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자의 삶=가난’
‘인문학자의 삶=가난’
  • 문혜진 동서대 박사·일본연구센터
  • 승인 2017.06.12 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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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후속세대의 시선] 문혜진 동서대 박사·일본연구센터

요즘 한국에서 문과생으로서의 취업의 어려움은 ‘문송’으로 표현된다. 즉 ‘문과생이라서 죄송합니다’의 줄임말이다. 이러한 현실은 문과생의 취업문제뿐만 아니라 문과생을 가르치는 시간강사에게도 적용된다. 현재 대학들의 긴축재정으로 취업이 잘 안 되는 인문학과들이 없어지거나 축소되고 있으며, 그래서 인문학을 가르치는 시간강사들은 점점 설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순수 인문학은 이공계나 실용인문학과 달리 연구지원비를 받을 곳이 한국연구재단을 제외하고는 거의 없다. 그래서 순수인문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연구자들 사이에서 ‘박사후국내연수’나 ‘학술연구교수’의 지원을 받는 것은 하늘의 별을 따는 것만큼 어려운 ‘꿈’이 됐다.

인문학자로서의 곤궁한 삶은 나도 마찬가지였다. 국내에서 박사 과정을 마친 후 강의조자 할 곳이 없는 상황이 당황스럽고 서럽기도 했다. ‘아무데도 나의 학문적 성과를 필요로 하지 않는데, 나는 왜 연구를 한 것인가?’ ‘일제강점기 神社연구는 학문적 가치가 있는 것인가?’라는 회의감이 들기도 했다.

그래도 평생 해 온 일이 새로운 자료를 발굴하고, 연구하고, 글을 쓰는 것이라서 그만두지 못하고, 묵묵히 연구의 길을 걸어왔다. 그렇게 묵묵히 인문학자의 길을 걷다보니 하나 둘씩 강의할 곳이 생기기도 하고, 200~300만원이 지원되는 연구거리도 들어왔다. 하지만 이런 연구비로는 생활하기조차 녹녹치 않았다. ‘인문학자의 삶=가난’이라는 문구는 비전임 인문학자라면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순수 인문학자들은 입버릇처럼 “연간 연구비 3천만원만 지원받을 수 있다면, 평생 내 연구의 길을 포기하지 않고 갈 수 있을 텐데…”라고 얘기한다. 나조차도 박사학위를 받고 생계를 위해 강의 시수를 많이 받아야 하는 삶에 지쳐갔고, 강의를 많이 하다 보니 연구할 시간이 없는 것이 딜레마로 다가왔다. 그래서 돈벌이는 되지 않더라도 강의를 줄이고 연구에 좀 더 시간을 투자하고, 연구성과를 늘리는 데 매진했다.

그랬더니 내가 걸어 온 학문적 성과를 한국연구재단이 인정해 주었고, ‘박사후국내연수’ 2년간 지원으로 동료 인문학자들이 꿈꾸는 ‘연간 3천만원’의 안정된 연구 활동을 할 수 있게 됐다. 3천만원이라는 돈은 크지는 않지만, 그간 현지조사하고 싶었던 오키나와의 신사 조사에도 유용하게 쓰였고, 강의 대신 일제강점기 사료발굴에 매진할 수 있는 학자의 삶을 선사해 주었다.

박사후국내연수는 순수인문학이 각광받지 못하더라도 묵묵히 자신의 연구의 길을 걸어간다면 학문적 성과는 인정받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었다. 그래서 힘겨운 인문학자의 길 위에서 생계와 연구 사이에서 갈등하고 있는 학자들에게 과감히 ‘연구’에 투자해 볼 것을 권고해보고 싶다. 꾸준한 연구는 언젠가는 연구에 매진할 수 있는 삶의 밑거름이 될 것이라고.

 

문혜진 동서대 박사·일본연구센터

한양대에서 문화인류학을 전공했다. 일제 식민지기 종교와 식민정책에 관한 연구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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