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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우리의 ‘가정의 달’은 …
2017년 우리의 ‘가정의 달’은 …
  • 교수신문
  • 승인 2017.05.29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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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로칼럼] 김재화 성공회대 명예교수·영어교육학

5월은 계절의 여왕이요 6월의 신부로 화사하게 붙여진 이름은 서양적인 느낌이다. 우리의 5월은 보다 구체적인 날들로 정해진다. 5월 5일 어린이날, 8일은 어버이날, 15일은 스승의 날이 연달아 포함된다. 모두 가족을 상징하거나 사회에서의 각별한 유대관계를 의미하는 날들이다. 그리하여 ‘5월은 가정의 달’이라는 큰 우산 아래 사랑의 실천을 일깨워주고 있다.

2017년의 5월은 과연 어떤 그림으로 남을 것인가. 시대가 바뀌면 언어의 개념도 달라진다. 가정의 달이라는 명칭은 옛날에는 오히려 불필요한 사족이었다. 부모형제자매의 다가족구성원들이 크건 작건 한 밥상에 둘러앉았던 시기도 행복만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예로, 한 두 명은 나머지 가족들을 무거운 짐으로 안고 살았다. 누군가의 희생에 의지한 생계가 대부분이다. 현대 사회에서 가정 구성원 한 쪽의 희생을 감사하게 여기는 일은 한 인물의 여력을 혹사한 것이요, 그의 정신적 자유와 사회적 기여도를 축소시키는 면이 없지 않다. 사랑에는 내 울타리 너머의 이웃도 인류애도 포함되며 그 이타적인 삶은 희생이 아니라 오히려 행복감이다. 가정의 의미가 지대해 만난(万難)을 덮었으나 그런 가정의 개념을 오늘의 핵가족화 시대에 적용시킬 수는 없는 것이다.

미국의 어느 저명한 대학총장의 아들은 대학을 안가고 평범한 목수일을 하고, 딸은 수입도 변변치 않은 사진 프리랜서로 주로 초목 잎사귀만 찍고 다녀도 부모는 그들의 독립적 생활방식을 간섭하지 않는다. 가족 구성원이 누군가의 희생 없이 각자 스스로의 삶을 영위하는 자유로운 정신이 먼저일 때 그 가정은 원만하다. 그런데도 우리는 여전히 누군가의 희생이 없으면 생존이 힘든 어정쩡한 사회에 살고 있는 것이다.
 
그럼 올해 5월 한 달에 부각된 가정사 중 부모세대의 희생을 하나 둘만을 짚어보자. 멀리 가서 조사할 필요 없이 동네 미장원이나 이발소에 가면 흔히 듣는 이야기다. 거의가 다 큰 자식들 걱정이다. 일도 취직도 결혼도 안하는 장성한 자식들 때문이라는 것이다. 부모의 미미한 재산도 이미 그것은 자신의 계획안에 넣고 있다.
 
무시하고 폭행당하는 부모들의 이야기는 제발 신문이나 티비에 나오지 말았으면 한다. 정부정책에서도 청년 실업대책이 시급한 당면 과제지만 학력위주나 출신교선별보다 개개인의 창조적 능력을 신장시킬 수 있는 특별부서가 있어야 한다. ‘나홀로’의 분야에서 세계적 각광을 받게 될 미래의 인재들이 여기저기 집안의 골칫거리로 취급받지 않도록 사회가 주목해야 한다. 특히 문화 예술분야에서 외국에서 성공하는 이유, 그 정책들을 연구해 우리의 자녀들이 국가의 혜택을 받도록 해야 한다. 이러한 것이 일련의 가정사와 동떨어진 것은 아니다. 특히 우리나라 부모세대는 아직도 자신들의 지친 삶에서 여전히 희생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2017년 5월 가정의 달을 평안하게 감상할 여유가 없었던 것은 일련의 큰 정치사회적 변혁의 파도가 사적인 가정사를 덮을 만큼 컸기 때문이기도 하다. 12월 예정의 대통령선거가 5월 9일에 변경 실시됐다. 실로 ‘가정의 달’이라는 온화한 문구가 어울리지 않는 격동의 뉴스들에 국민들은 혼미해진 것이다. 겨우 한 표의 투표이지만 의견은 분분했고 거대한 군중의 외침들이 세력화돼 촛불과 태극기물결로 갈라져 터져 나왔다. 가정에서도 각자 다른 이념의 모습들이 확연했다. 집안의 반목과 충돌은 실로 아무것도 아닌 듯 일찍이 볼 수 없던 강렬한 애국의 인파로 몇 달을 집 밖으로 뛰쳐나왔다. 도심지대를 양분해 울분과 희망을 계속 소리쳤다.

이제 승자의 길에서 2017년 5월이 지나간다. 올해 가정의 달이 어떠했는가를 바쁜 정책수립 당국자들에게 돌이켜보아 주십사 하는 말은 너무나 미미한 제안인 것 같다.
 

 

 

김재화  성공회대 명예교수 · 영어교육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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