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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비 교육의 우상
사이비 교육의 우상
  • 박부권 동국대 명예교수·교육학
  • 승인 2017.04.18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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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로칼럼] 박부권 동국대 명예교수·교육학
▲ 박부권 동국대 교수

작년 통계청 조사에도 사교육비는 줄어들지 않았다. 사교육비 총액과 일인당 사교육비가 모두 늘었다. 사교육을 억제하기 위한 정부의 온갖 노력이 아직도 아무런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왜 이런 일이 계속되고 있는 것일까? 그것은 교육이 계층상승을 위한 희망의 사다리라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개천에서 태어난 사람들도 누구나 예외 없이 승천을 꿈꾼다. 이 승천의 꿈은 바람 같은 인간존재의 피할 수 없는 운명이요 실존적 도전이다. 그러므로 흙 수저들이 꾸는 금 수저의 꿈은 이제 더 이상 교육이 실현시켜 줄 수 있는 꿈이 아니다. 그것은 교육적 이상이 아니라 종교적 기도다.
 
승천에 성공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승천을 위한 끝없는 도전은 ‘시시포스(Sisyphus)’의 신화처럼 인간을 고양하고 위대하게 만든다.

그러나 종교에도 사이비 종교가 있듯이 교육에도 사이비 교육이 있다. 사이비 종교가 그렇듯이 사이비 교육은 학생들의 마음과 몸에 봄이 오기도 전에 꽃을 피우라고 하고, 시험성적을 우상처럼 받들게 하며, 학생 스스로 애써 탐구해야 할 것을 교사가 대신해 줌으로써 그들로부터 공부하는 즐거움을 앗아가고, 스스로 계획하고 책임져야 할 일을 부모와 교사가 나서 대신해 줌으로써 의존적이고 무책임한 인간을 만들어 낸다. 즉 학생들의 능력과 인격을 파괴하는 것이다.

시험성적을 우상으로 받드는 사이비 교육은 교육의 문제를 왜곡해 그것을 기회의 문제로 축소하는 경향이 있다. 이것은 사교육을 보는 관점에서 더욱 선명하게 드러난다. 우리 사회의 사교육에 대한 관심은 어떻게 가르치는가 하는 교육방법의 문제에 보다는 누가 얼마나 많은 사교육을 받고 있는가? 그리고 사교육을 위해 얼마나 많은 돈을 지불하고 있는가에 집중돼 있다. 이처럼 사교육이 교육의 본질을 떠나 기회의 문제가 되면, 이는 다시 사교육비 지불능력이 서로 다른 계층의 문제가 돼, 계층 간의 대립과 갈등을 증폭시킨다.
 
우리의 역대정부는 쉬운 대학수능시험정책을 견지하면서 사교육비 절감을 그 이유로 내세워왔다. 그러나 이 쉬운 수능정책은 교육의 원리와는 거리가 있는 것으로 정부가 일부 국민들의 교육기회평등에 대한 요구를 여과 없이 노골적으로 그리고 직접적으로 반영한 것이다. 교육기회의 평등요구는 필연적으로 교육방법의 다양화를 요구한다. 천재와 보통학생은 사고방식과 공부 방식이 서로 다르고, 따라서 자신에게 맞는 서로 다른 교육방법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존 듀이(John Dewey)에 따르면 민주주의 사회의 성패는 삶의 터전과 문화가 서로 다른 사회 제 계층 간의 원활한 교류여하에 달려 있다. 학교는 이 교류를 원활하게 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조성한 장이다. 그러나 서로 다른 계층의 자녀들을 한 학교 내에 모아 놓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이와 함께 교육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신성에 대한 굳건한 믿음이 필요하다. 이 신성은 불교에서 말하는 불성일 수도 있고, 기독교가 보여 주듯 인간 육체 속에 깃든 하나님일 수도 있고, 그 밖에 세계의 고등종교들이 믿는 신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우리 교육이 바로 서기 위해서는 인간이 가지고 있는 고결하고도 아름다운 신적 능력에 대한 믿음이 사이비 교육의 우상, 즉 시험성적, 돈, 권력, 명예 등을 대체해야 한다. 고결한 인간성에 대한 굳건한 믿음 위에 서 있지 않은 모든 교육정책은, 임기응변이요, 대증요법이요, 영혼 없는 사회공학이요, 대책 없는 유물론에 불과하다.

박부권 동국대 명예교수·교육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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