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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양의 효용』과 한국의 대중문화
『교양의 효용』과 한국의 대중문화
  • 이규탁 한국조지메이슨대·국제학과
  • 승인 2017.03.27 1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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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단] 이규탁 한국조지메이슨대·국제학과

이글은 <오늘의 문예비평> 2017년 봄호에 실린 이규탁 한국조지메이슨대 교수(국제학과)의 「『교양의 효용』과 한국의 대중문화」 중 일부를 발췌한 것입니다.

▲ 이규탁 한국조지메이슨대 교수

올해는 『교양의 효용』이 세상에 나온 지 60주년 되는 해다. 그동안 미디어 환경과 문화산업의 모습은 크게 변화했고, 영국 노동자계급의 성격도 이전과는 상당히 달랐다. 가령 이 책에서 언급하고 있는 ‘방송’이 거의 대부분 라디오 방송인 것에 비해 현재의 ‘방송’이란 텔레비전과 인터넷 미디어 중심이다. 더불어 호가트가 이 책에서 가장 심혈을 기울여 묘사하고 있는 인쇄매체들, 특히 종이 신문과 잡지의 경우 이제는 전 세계적으로 존폐의 기로에 서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그 영향력이 감소했다. 신문과 잡지가 차지하고 있던 자리는 이제 인터넷에게 잠식당한지 오래다.

더불어 대중문화에 대한 과거 영국 학자 특유의 냉소적인 ‘엘리트주의적’ 태도는 대중문화 자체에 애정이 있고 그것을 일상적으로 즐기며 살아가는 (필자를 포함한) 요즘의 일반적인 수용자들에게는 다소 불편함을 주기도 한다. 이는 대중문화 혹은 문화산업에 대한 과거와 현재의 관점 차이에서 오는 한계라고 할 수 있다.

이와 관련해 필자는 한 인터넷 서점의 『교양의 효용』 독자 리뷰란에서 아래와 같은 재미있는 의견을 발견했다.

“마지막으로 통속적이고 대중적인 문화에 대한 비판과 이러한 문화에 노출돼 지적고민 없이 살아가는 것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에 대해서 동의를 하면서도 이런 시선을 가져도 되는 것인지 막연한 죄책감이 들었다.”

논란의 여지는 있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근대적인 의미에서의 노동자계급 형성은 아무래도 광복 이후, 특히 본격적인 산업화로 인해 離村向都 현상이 심화되기 시작한 1960대 이후로 봐야 할 것이다. 영국과 비교하면 거의 100년 이상 늦고, 따라서 호가트를 포함한 많은 영국의 문화연구 학자들이 주목했던 노동자계급 문화와 상업적인 대중문화를 구분하기가 쉽지 않다. 그것은 노동자계급 문화의 독자적인 형성 이후 미국에서 비롯된 상업적 대중문화가 침투한 영국과는 달리, 우리나라는 노동자계급 형성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기 때문이다. 물론 1980년대의 ‘민중문화론’처럼 노동자계급 문화와 시장 지향적 대중문화를 구분 지으려는 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대중문화 산업이 급격히 성장한 1990년대로 들어오며 이러한 움직임은 퇴조했고, 특정한 계급적 정체성을 지닌 문화의 존재를 규정하기가 매우 어려워졌다.

더불어 1990년대 말부터 대중음악과 텔레비전 드라마를 중심으로 한 한국 대중문화 상품이 해외에서 인기를 얻는 이른바 ‘韓流’가 문화산업의 주요 화두가 되면서 산업화·표준화·중앙집중화된 문화상품은 ‘비판의 대상’을 넘어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자랑스러운 우리 문화’로 자리 잡았다. 이는 한류의 ‘대표주자’인 케이팝(K-Pop)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연습생의 발탁부터 아이돌로 데뷔해 스타가 되는 모든 과정은 소수의 연예기획사에 집중돼 있으며(중앙집중화), 음악과 아이돌의 생산-소비-유통 과정은 철저한 분업화와 전문화가 이루어져 있고(산업화), 고도로 체계화돼 있다(표준화). 그리고 앞서 인용한 『교양의 효용』 독자 리뷰에서도 볼 수 있는 것처럼, 계층과 교육 수준을 가리지 않는 광범위한 수용자들이 너무나도 일상적으로 이러한 문화상품들을 소비하며 살아가고 있다.

이러한 현실은 다시금 호가트, 그리고 그 이전에 대중문화의 산업화를 통렬하게 비판했던 아도르노의 시각으로 돌아가게 만든다. 호가트와 아도르노가 지적한 것처럼 문화의 산업화와 표준화는 분명 수용자들을 수동적으로 만들고 그들의 비판의식을 무감각하게 만든다. 그러나 무비판적으로 문화상품을 소비하는 것처럼 보이는 수용자들은 사실 그렇게 단순하고 수동적이지만은 않다. 수용자들이 ‘능동성’을 띈다는 것, 즉 수용자 개개인이 자신이 처한 정치경제적, 역사적, 사회적, 문화적 맥락에 따라 비판적이고 적극적인 태도로 문화상품을 해석하고 재창조한다는 것은 이미 수많은 문화연구 학자들의 연구를 통해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60년 전 영궁의 노동자계급 문화에 유효했던 비판의식이 지금도 적용 가능함을 부정할 수는 없다. 수용자들의 능동성은 끊임없이 도전받고 있으며, 미디어 산업은 그 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강력한 힘으로 수용자들의 비판적인 사고를 마비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일견 현재 우리나라의 상황과는 큰 연관성이 없어 보이는 『교양의 효용』이 지금도 호소력을 지닌다면 바로 이러한 점 때문일 것이며, 그것이 이 책을 ‘문화연구의 고전’이자 ‘인문사회학의 고전’의 반열에 올려놓을 수 있는 이유일 것이다.

이규탁 한국조지메이슨대·국제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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