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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기술’에 대응할 지식은?
‘디지털 기술’에 대응할 지식은?
  • 손동현 대전대 석좌교수·철학
  • 승인 2017.03.20 1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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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동현 석좌교수, 대학교육 혁신의 길 ② 문명사적 전환과 지식사회의 지형변화

“파편화된 정보 범람 … 방향감 상실 우려된다”

21세기에 접어들면서 인류문명이 거대한 전환을 맞고 있다는 진단은 이제 상식이 된 듯하다. 그리고 그 격변을 정보화 및 글로벌화(세계화)로 보는 데는 식자들 간에 별 이견이 없는 듯하다. 그런데 주목할 것은 이 두 가지 메가트렌드가 서로 상승적 상호작용을 하며 긴밀히 연계돼 신문명의 바탕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뭐니뭐니 해도 이 문명사적 변화의 진앙은 ‘디지털 기술’에 있다. 디지털 혁명이라고 일컬어질만큼 엄청난 변화를 몰고 온 이 기술의 본질적 특성은 무엇일까? 

▲ 손동현 대전대 석좌교수·철학

첫째는 이 기술이 사유와 지각의 융합 및 호환을 기계 속에서 실현시켰다는 점이다. 디지털 기술의 특징적 기능은 바이너리 코드를 이용해 음성, 문자, 영상 등 각종 정보를 그 질적 성격에 구애받지 않고 비트(bit)라는 동일 단위로 분화시켜 이의 연속된 흐름으로 ‘해체’했다가 이를 다시 ‘복원’하는 방식이다.

달리 말해 어떤 정보든 그 질적 차이는 무시하고 오직 0과 1로 분석 환원시키고 이 정보자료를 동일한 수학적 방식으로 연산 처리함으로써 그 정보를 원활하게 조작 변형 가공 저장 유통하고, 이를 다시 그 질적 성격을 회복시켜 원형으로 복원하는 방식이다.

그리고 여기서 질적 성격이란 감각적 지각의 대상으로 우리의 감성 및 감정을 움직이는 것이고, 바이너리 코드로 분화해 이를 처리하는 연산작업은 전적으로 논리적인 수학적인 사고 활동이다. 따라서 디지털기술이 ‘정보기술’(IT)과 ‘커뮤니케이션기술’(CT)을 ‘정보통신기술’(ICT)이라는 하나의 기술로 융합했다는 것은 실은 기계 속에서 사고활동과 감각활동을 결합시키는 데 성공했음을 의미한다. 왜냐하면 정보기술이란 결국 인간의 사유활동을 보강·강화·대체하는 인공지능(AI) 기술이고, 커뮤니케이션 기술이란 감각적 지각의 범위를 시공적으로 확장시킨 통신기술이기 때문이다.  

디지털 기술은 결국 사유와 지각의 융합 및 호환을 비생명적 물리적 공간 속에서 현실화시켰는데, 자연종으로서의 영장류 동물의 ‘생체’에서나 가능했던 일이 이제 다량 생산되는 ‘기계’ 속에서 가능해졌다는 것, 이 점이 혁명적인 것이다. 그렇다면 이 전대미문의 새로운 기술이 인간의 문명적 삶에 가져다 준 근본적 변화는 무엇일까? 

사유와 감각의 호환기술은 이제 감각내용의 논리화, 사유내용의 감각화를 수행함으로써 정서적 감응과 수학적 사고 사이의 간극을 다리 놓아 이들을 연계시킨다. 이 연계의 교량이 곧 다양한 알고리즘(Algorithem)들이다. 컴퓨터 음악의 탄생, 포토샵을 이용한 사진 예술의 정교화 등이 그 좋은 예가 될 것이다. 사유와 감각의 호환이 가능해짐에 따라 일상인들은 사유 대상을 감각 대상으로 변환시켜 놓은 정보들에 의존해 생활하기를 즐긴다. ‘선형적(linear)’ 사유에 필요한 긴장을 피하고 ‘모자이크적’ 지각의 이완을 선호하는 것이다. 즉 논리적·합리적 사고를 기피하고 감각적 지각을 선호하는 문화생활이 널리 확산된다. 감각적 지각내용을 철저히 양적으로 분절해 수학적으로 연산 처리할 수 있는 과정을 개발함으로써 거꾸로 논리적 사유의 성과를 감각적으로 지각하는 일이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젊은이들이 도서보다는 영상물을 즐기는 이유가 여기에 있고, 비디오 콘텐츠의 범람이 이를 말해 준다. 이런 현상은 심지어 의사소통 활동에서 (기호, 이모티콘의 활용 등) 감각적 지각에 더 많이 호소하는 문맹적(illiterate) 의사소통 방식이 점차 사고 활동을 요하는 문해적(literate) 의사소통 방식을 대체해 나가기까지 한다. 

또 다른 혁명적 요인은 디지털 기술이 인간의 문화적 활동에서 시간적 공간적 제약을 최대한 제거해 준다는 데에 있다. 시간적·공간적 제약이 거의 없는 세계가 인간의 생활세계에 등장한 것이다. ‘유비쿼터스 커뮤니케이션’(Ubiquitous Communication)과 가상현실(Virtual Realty)이 이를 말해 주고 있다. 이 새로운 세계는 물리적 공간의 핵심적 원리인 공간 관계의 배타성이 더 이상 작동되지 않음으로써 연장성 즉 거리가 사라지고, 그 당연한 결과로 이 공간 안에서의 사건들은 역시 자연적인 실제 시간의 흐름, 즉 시간의 순차성에서 벗어난다. 

문명의 발달은 기술의 발달에 기초해 있는데, 그 가운데서도 매우 중요한 교통·통신기술의 발달은 언제나 본질적으로 시공적 제약의 극복에 정향돼 왔다. 가급적 빨리 이동하고 가급적 멀리까지 통신하려는 노력이 바로 그것이다. 이제 디지털 기술은 이 점에서 시간적 공간적 제약을 거의 남김없이 극복하는 것 같다. 왜냐하면 이 기술은 시공적 제약의 토대인 공간관계의 독점적 배타성과 시간관계의 불가역적 순차성 자체가 작동하지 않는 새로운 세계. 즉 가상현실의 세계를 구성하고 이를 일상의 생활세계에 전면적으로 도입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전대미문의 새로운 기술이 인간의 문명적 삶에 가져다 준 근본적 변화는 무엇일까? 

자연적 물리적 세계의 시공적 제약을 극복하는 이 디지털 기술은 거리의 소멸과 시간의 증발을 결과로 가져옴으로써, 사람들로 해금 욕구충족 과정의 순차성과 단계성을 뛰어 넘어 동시적 총체적 욕구충족의 가능성을 기대하고 이를 추구하게 만든다. 공간적 장소의 이동 없이, 시간적 대기 없이 욕구를 충족시키려는 경향이 점차 보편화되는 것이다. 제도적 절차에 따라 이루어지는 단계적 개별적 욕구충족의 방식이 외면당하면서 복합적인 다양한 욕구가 기성의 절차에 매이지 않고 동시적이고 총체적으로 충족되는 현상이 확산되고 있다. 욕구 자체의 속성이 이렇게 변화하고 있다. 기술의 융복합과 이에 기초한 산업의 융복합 현상은 이러한 욕구 및 욕구충족의 변화에 부응하기 위해 취해진 현상에 다름 아니다. 욕구의 변화와 욕구충족 기술의 변화는 상호작용하면서 상승하는 모습을 보인다. 

흔히 ‘정보화’라 일컫는 시대적 변화는 근본적으로 바로 이 두 가지에서 연원하는 것이라고 본다. 물론 이 전례 없는 변화가 인간의 사회적 관계와 공동체적 삶의 방식까지도 변화시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세계체험의 근본이 되는 시공체험 양식이 변모함으로써 무엇보다도 공동체를 구성하고 운영하는 방식이 그에 따라서 변모한다. 사회조직은 거대하고 강고한 고정적 피라미드형 체계에서 작고 유연한 유동적 네트워크로 변화한다. 자연히 그 폐쇄적 독자성이 와해되는 가운데 개방적 관계가 지배적인 것이 되고, 그 결과 사회적 활동 영역의 경계가 흐려진다. 이를 사회 조직의 ‘탈중심화’ ‘탈영토화’라 일컫기도 한다.

이런 와중에서 개인 간의 인격적 관계는 축소되고 피상화되며, 자연히 공동체적 유대도 약화되고 심지어 와해된다. 이른바 삶의 ‘유목화’ 현상이라는 게 이런 것이다. ‘세계화’란 유목화 현상이 가장 넓은 영역에서, 최대 규모로 전개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지식사회의 지형 변화

정보화와 세계화의 문화적 파장이 미시적으로나 거시적으로나 이렇듯 문명생활의 근본 양식을 바꿔놓고 있는 마당에, 지식사회가 변하지 않고 종전대로 유지된다는 것은 생각할 수 없는 일이다. 지식의 성격 및 양태에 큰 변화가 온 것은 당연한 일이다. 새로운 산업활동에, 새로운 정치사회적 기획에 새로운 지적 활동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복합적 욕구충족에 부응하는 복합지식이 요구되며, 유동적인 유목적 삶에 기여할 유연한 지식이 요구된다. 

전통적으로 지식인이 추구해 온 ‘학적 지식(episteme)’은 보편적, 불변적, 필연적 존재에 대한 보편타당한 지식이었다. 그것은 가능한 한 일상적 삶의 현실로부터 거리를 취해 직접적인 이해관계를 넘어설 때 얻을 수 있는 객관적인 진리의 체계였다. 이런 지식은 쉽게 얻어지지도 않았거니와 일단 공준을 받으면 그 타당성은 장구한 기간 동안 지속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는 ‘힘의 원천’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런 지식은 장기간의 노력 끝에 다음 세대에 전수됐고 언제나 사회 상층부의 지배 엘리트에 의해 독점되는 것이 보통이었다. 

종래 고전적인 의미에서의 지식은 그 산출, 보존, 공유, 전파 등이 안정된 제도적 장치에 의해 관리, 통제됐고, 이런 제도를 뒷받침하는 물리적 토대와 규제가 동반하기 마련이었다. 쉽게 변하지 않는 교육제도, 연구 시스템, 도서·출판 활동, 이에 종사하는 인력 양성의 여러 규약 등이 제도적인 것들이라면, 각급 학교, 연구소, 도서관 등의 시설과 교수 학습의 여러 수단들이 물리적 토대로서 지원과 규제의 역할을 한 것들이었다. 이들 유형·무형의 시설과 제도들은 한결같이 시간적 공간적 제약을 구성하는 것들이었고, 교육받는다는 것, 연구를 통해 새로운 지식을 산출한다는 것은 모두 이 시공적 제약 아래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오늘의 정보사회에서는 지식의 본성과 관련해 사정이 크게 달라졌다. 정보통신 기술의 혁명적 발달에 의해 세계가 하나의 촌락으로 좁아진 오늘날, 광범한 문화의 교류와 공존은 불가피한 것이 됐고 이 다문화적(multi-cultural) 교류문화적(inter-cultural) 시대의 문화적 지형은 관계성, 다양성, 상대성, 가변성으로 특징지어지게 됐다. 사회적 삶이 고정적 체계보다는 유동적인 그물망(network)의 형태 속에서 이루어지게 됨으로써, 그 자체로서 지속적 독자성을 갖는 ‘지식’이 수행하던 역할은 이제 더없이 유동적으로 된 현실의 삶에 형식을 부여하는(in-formatio) ‘정보’에게 넘겨진 것이다. 

지적 지형 변화

이러한 거시적 변화가 지식사회에 가져온 변화는 무엇일까? 먼저 외양적인 변화로는 다음 세 가지가 주목된다.

(1) 지식이 장기간에 걸쳐 어렵게 창출, 전수, 활용되던 과거와 달리 매우 용이하게 산출, 복제, 유통, 소비된다.

(2) 산출되는 정보의 양은 천문학적으로 급증하며, 이렇게 생산되는 정보의 유통에는 시간적 공간적 제약이 거의 없다.

(3) 정보의 효용기간, 즉 수명이 급속히 단축된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그 내적인 질적인 측면의 다음 세 가지다. 

(4) 감각적 지각작용이 논리적 사유활동보다 우세해진다.

(5) 문맥적 역사가 망실된, ‘기원이 소실된’ 파편화된 정보들이 범람한다.

(6) 융복합적 지식에 대한 수요가 급증한다. 

인간의 커뮤니케이션은 오감 가운데서도 특히 청각과 시각에 많이 의존돼 있다. 시각 커뮤니케이션은 감각내용을 동시적으로 한꺼번에 받아들이는 ‘모자이크적’(mosaic) 커뮤니케이션이다. 이에 반해 청각 커뮤니케이션은 정보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순차적’(sequential)으로 주어지는 ‘선형적’(linear) 커뮤니케이션이다. 여기선 인과적 연결이든 논리적 연결이든 하여튼 일관성 있게 앞뒤를 연결하는 파악작용이 요구된다. 

모자이크적 커뮤니케이션에서는 이지적 사고 활동보다는 감성적 감응 활동 즉 감각적 지각작용이 더 필요하겠지만, 선형적 커뮤니케이션에서는 인과적·논리적 고리를 이어나가는 강한 사고 활동이 요구된다. 

그런데 글에 의한 커뮤니케이션은 말에 의한 커뮤니케이션의 선형성을 더욱 극단화시킨다. 말을 하고 들을 때는 표정, 몸짓, 어조, 음색 등 말하는 이의 언어외적 의사표현 요소가 함께 작용하지만, 글로 쓰여진 기록을 통해 의사전달이 이루어질 때는, 이러한 부차적 요소들은 모두 증발하고 오직 전달되는 사유내용만 남게 된다. 따라서 글에 의한 커뮤니케이션에서는 자연히 그 사유내용의 정합성, 일관성 등 논리적 성격이 강하게 작용한다.

이 점에서 볼 때, 구텐베르크의 활자 인쇄술 개발은 도서의 다량 보급을 가능케 함으로써 다수의 보통사람들이 글을 통한 커뮤니케이션에 참여할 수 있게 했고, 그 결과 순차적 논리적 합리적 사고에 익숙해지게 됐다. 그리하여 도서의 보급은 여러 방면에서 이성적 사유가 삶의 원리가 되는 근대를 연 문명사적 전환점이 된 것이다.  

그런데 20세기 후반부터 정보화와 더불어 이지적 지형에 새로운 변화가 온 것이다. 다른 무엇보다도 사유와 감각의 호환이 불러온 변화는 사고에 대한 감각의 우세 현상 및 지식·정보의 파편화 현상이고, 시공적 제약의 극복이 불러온 변화는 복합적 욕구충족의 기대에 부응하려는 지식 및 기술의 융복합화 현상이다.  

사유와 감각의 호환이 가능해짐에 따라 일상인들은 사유 대상을 감각 대상으로 변환시켜 놓은 정보들에 의존해 생활하기를 즐긴다. 즉 능동적인 선형적 사유의 노력을 수동적 감각적 지각의 향유로 대체시켜 나간다. 감각이 사유를 능가하는 삶의 방식과 문화의 양식이 급속도로 확산되고 있다. 

사정이 이러하니, 기원이 실종된, 문맥에서 일탈된 ‘파편화’된 정보들이 범람하게 되고, 감각적 지각이 논리적 합리적 사고를 압도하는 새로운 현상이 등장하는 것이다. ‘문맥’을 짚어가는 것은 논리적 사유이지 감각적 지각이 아니기 때문이다. 모자이크적 시각, 커뮤니케이션과 선형적 청각 커뮤니케이션 사이의 균형이 근대초와는 반대방향으로 깨지고 있음을 가리키는 것이다. 

이 현상들은 지식사회가 고정된 지식의 비축과 독점에 머물지 않고 유동적 정보의 유통과 공유를 향해 개방된다는 전향적 함의도 갖지만, 그보다도 그 다원화 및 다양화에 대한 대가로 지식이 인간의 실천적 행동에서 선도적인 역할을 하지 못하고 오히려 방향감각을 상실케 함을 뜻하기도 한다.

인간의 지적 활동 및 그 성취물을 4개 층위 즉 ‘자료-정보-지식-지혜’로 구성되는 위계적 체계로 이해하는 이른바 ‘지식의 층위(Hierarchy of Knowledge) 이론’에 비추어 보자면, 정보사회에서의 지적 활동은 문자 그대로 ‘정보’의 차원에 머물러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때 정보는 우리의 잠정적이고 단편적인 행동에 유용성의 지침을 제공하긴 하나, 그것이 원리적이고 체계적으로 정당화돼 객관적 타당성을 갖는 것은 아니다. 개인적 일시적 파편적인 행동에 기껏해야 도구적 합리성만을 제공할 뿐 우리의 삶 전체의 목적이나 가치에 관계하는 규범적 의미를 추구하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이러한 ‘탈맥락적’ 정보의 범람이 행동의 ‘방향상실’을 야기하는 것은 불가피해 보인다.  

손동현 대전대 석좌교수·철학
한국철학회 회장, 성균관대 학부대학장, 한국교양기초교육원장을 역임했고, 현재는 성균관대 명예교수, 대전대 혜화리버럴아츠칼리지 석좌교수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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