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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밥' 유감
'혼밥' 유감
  • 박순진 편집기획위원/대구대·경찰행정학과
  • 승인 2017.02.13 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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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깍발이] 박순진 편집기획위원/대구대·경찰행정학과
▲ 박순진 편집기획위원

일전에 한 케이블 방송에 공무원시험 준비 학원에서 벌어지는 ‘공시생(공무원 임용시험 준비생)’의 일상을 소재로 한 드라마가 방영돼 흥미롭게 시청한 적이 있다. 등장인물은 나름의 사연과 상처를 안고 각자 직면한 현실의 문제를 헤쳐나가려고 고군분투하는 우리 청춘들이었다. 드라마에서는 힘든 하루를 마무리하면서 홀로 술을 마시는 일이 무척 인상적으로 묘사됐다. 어떤 사람은 하루 종일 너무 많은 말을 했기에 안식하는 저녁 시간에는 조용하게 혼자서, 다른 사람은 함께 의논하고 의지할 곳 없는 외로운 일상을 마치면서 혼자서, 또 다른 사람은 세속의 각박한 경쟁에 내몰려 실망하고 분노하면서 혼자서 술을 마시곤 했다.

홀로 술을 마시거나 혼자 밥을 먹는 일이 우리 사회에서 어느새 하나의 사회현상이 됐다. 이런 일을 혼술과 혼밥이라 표현하는데 무한 경쟁에 내몰린 우리 청춘들이 각박한 현실을 어떻게든 버티며 살아내야 하는 세태를 반영하는 신조어다. 홀로 술을 마시거나 혼자 밥을 먹는다는 의미를 가진 이 신조어는 종래 다수의 사람들이 어울려서 했음직한 여러 일에 변용돼 적용되곤 한다. 혼자 설 명절을 쇠는 혼설이 최근 인구에 회자됐고 혼자 영화를 보는 혼영이 증가 추세라는 언론기사도 볼 수 있다. 바야흐로 홀로 삶을 영위하고 소소하게 문화를 즐기는 일이 일종의 사회현상으로 자리 잡은 것이다.

불과 몇 해 전만 하더라도 생소하게 여겨지고 비정상적이라고 치부되던 일이 당사자에게는 물론이고 사회적으로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물론 혼자 밥을 먹거나 홀로 술을 마시는 일이 그 자체로서 새롭고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다. 종래에도 어쩌다 혼자 밥을 먹고 홀로 술을 마시는 일은 드물지 않게 있었다. 미래 준비를 위해 친구와 즐거운 교제시간을 아껴가며 노력하는 젊은이도 많았다. 그러나 요즈음의 혼술과 혼밥은 종래 혼자 밥을 먹고 홀로 술을 마시던 것과는 확연히 다른 현상이다.

요즘 들어 혼술과 혼밥이 주목받고 논란이 되는 것은 그것을 선택하지 않을 수 없게 하는 힘든 현실이 있기 때문이다. 국내는 물론이고 국제적으로도 경제가 어려워지고 미래가 불확실해지면서 좀처럼 좋은 직업을 갖기 힘든 현실이 젊은이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결혼을 늦추거나 기피하고 독신이 늘어나는 것을 비롯해 다양한 이유로 혼자 살아가는 1인 가구가 전 연령층으로 확산돼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사회경제적 상황이 녹록치 않게 변하면서 혼밥과 혼술은 젊은이는 물론이고 중장년층과 노년층에 이르기까지 피할 수 없는 현실이 됐다. 이런 상황에서 혼술과 혼밥은 외롭고 슬픈 세태를 표현하는 용어다.

혼술하는 사람은 저마다 사연이 있다. 모든 혼술이 궁상맞고 안타까운 것은 아니고 모든 혼밥이 외롭고 서글픈 일도 아니다. 때로는 혼자 밥을 먹고 홀로 술을 마시면서 지친 일상을 스스로 위로하고 소소한 행복감을 갖기도 한다. 혼자 고독하게 실존적 고민을 마주하는 시간이 누구에게는 무척 소중하고 필요할 것이다. 그럼에도 유독 요즈음의 혼술과 혼밥이 예사롭지 않은 것은 이것이 사회적 약자의 힘든 삶을 대변하는 사회현상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일상생활을 함께 고민하고 아픔을 나누는 일조차 쉽지 않고 더불어 살아가는 여유는 좀처럼 갖기 힘든 일반 국민들이 현실을 견디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온 나라가 시끄러운 가운데 일부 전언에 따르면 대통령께서 그 동안 혼자 식사하기를 즐겨하셨다 한다. 국민이 주권자인 이 시대에 엄정하게 국정에 매진하면서 각계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듣고 국민적 지혜를 모아야 할 최고 권력자마저 혼밥하는 일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혼란스럽다. 무슨 사정이야 있겠지만 이 일은 소통하지 않는 권력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 같아 씁쓸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막중한 권한과 책임을 가진 권력의 불통은 음습한 비선이 공식조직을 무너뜨리고 국정을 농단하게 만든 단초가 되고도 남는다. 해가 바뀌어도 여전히 혼란한 국가 상황을 마주하면서 안타까운 마음에 부질없는 상념에 잠겨본다.

박순진 편집기획위원/대구대·경찰행정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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