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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름발이 경제민주화
절름발이 경제민주화
  • 문성훈 편집기획위원/ 서울여대·현대철학
  • 승인 2017.01.23 1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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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깍발이] 문성훈 편집기획위원/서울여대·현대철학
▲ 문성훈 편집기획위원

박근혜-최순실의 국정농단이 밝혀지면서 재벌과 정치권력의 유착도 도마에 올랐다. 재벌들은 미르재단, K스포츠 재단 지원 등 각종 명목으로 수백억원을 상납하고, 이들은 기업 합병 등을 비롯해 재벌들의 애로 사항을 해결해 주는 양상이다. 이 때문인지 최근 재벌에 대한 비판 여론이 확산되고, 여야는 물론 대권주자들도 재벌 개혁을 외친다.

물론 재벌 개혁을 외치게 된 계기는 정경유착이지만, 이를 뒷받침하는 명분은 경제민주화이다. 즉 경제민주화를 위해서 한편으로 재벌의 지배구조를 개혁하고, 다른 한편 재벌의 경제력 집중을 해소하자는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재벌 총수의 횡포를 견제하기 위해 소액 주주의 권한을 강화하거나, 재벌의 갑질로부터 하청업체들을 보호하고, 중소기업과 골목 상권을 지키기 위한 다양한 정책들이 제시된다.

분명 재벌의 지배구조 개혁이나 경제력 집중 해소는 경제민주화의 한 축이다. 그러나 과연 이게 다 일까? 경제민주화 담론의 원조 격인 로버트 달의 저서 『경제 민주주의에 관하여』를 보면 경제민주화의 핵심은 1인 1표라는 정치적 민주주의 원칙을 경제적 영역으로 확장하는 데 있다. 이에 따라 경영자든 노동자든 기업구성원 모두가 1인 1표의 의사결정권을 행사한다면, 주식 수에 따라 더 많은 의사결정권을 보장하는 현재의 기업지배구조는 붕괴된다.

이렇게 기업구성원들의 동등한 의사결정권이란 급진적 주장은 아니더라도, 우리나라 헌법 119조 2항은 ‘균형 있는 국민경제’ ‘적정한 소득 분배’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 남용 방지’ ‘경제주체 간의 조화’를 위한 규제와 조정을 경제민주화로 규정한다. 아마도 최근 정치권에서 말하는 재벌개혁은 균형 있는 국민경제나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 남용 방지, 경제주체간의 조화를 위한 것으로 해석된다.

그렇다면 이런 경제민주화 담론에서 ‘적정한 소득 분배’ 조항은 어디로 간 것일까? 올해 열린 다보스 포럼 조차 향후 10년간 가장 시급하게 해결되어야 할 문제로 경제적 불평등을 꼽는다. 그리고 로버트 달이 경제민주주의를 주장한 근본적인 이유도 경제적 불평등이 확산되는 한 정치적 민주주의가 실현될 수 없다는 시대 진단에 있다. 더구나 재벌의 성장이 국민경제의 성장으로 이어지고, 이것이 모든 국민의 소득 수준 향상으로 이어진다 해도 과연 재벌이 문제일까.

재벌이 문제인 이유는 국가의 전폭적 지원과 모든 자원이 재벌에 집중돼 있음에도, 재벌기업이 총수 일가나 탐욕적 대주주들의 사적 재산으로 취급되고 이들의 이익에 복무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 결과 비정규직이 양산되고, 외주와 하청 노동자들의 실질 임금이 하락하고, 중소 상인들이 몰락하기 때문일 것이다. 결국 재벌이 문제인 이유는 재벌의 성장이 국민경제의 성장이 아니라 ‘1대 99 사회’라는 극심한 경제적 불평등을 확산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의 현실은 ‘헬조선’으로 표현된다. 상위 10%가 전체소득의 50%를, 하위 70%는 단지 20%만 차지하고 있고, 비정규직 평균 월급은 정규직의 절반, 중소기업의 임금 수준도 대기업의 절반, 3명 중 2명은 실패한다는 자영업. 그리고 끝내는 빚내서 생활하는 사람이 늘고, 가계부채는 1300조원에 이르고 있다. 과연 이런 상황에서 경제적 불평등 해소를 개혁과제 1순위로 제시하지 않을 수 있을까.

여야를 막론하고 모든 대권 후보들이 앞 다퉈 주장하는 경제민주화 담론이 국민적 지지를 받기 위해서는 단지 재벌 개혁이 아니라, 그 무엇보다도 경제적 불평등 극복에 집중해야 하며, 비정규직 차별 철폐, 최저임금 인상, 생활임금제 등 실질 소득 향상을 위한 다양한 정책적 대안이 마련돼야 한다.

문성훈 편집기획위원/ 서울여대·현대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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