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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너진 신뢰의 정치
무너진 신뢰의 정치
  • 설한 편집기획위원 / 경남대·정치철학
  • 승인 2016.11.28 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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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깍발이] 설한 편집기획위원 / 경남대·정치철학
▲ 설한 편집기획위원

丙申년 시민 촛불항쟁의 역사적 현장은 촛불로 하나가 된 대한민국이었다. 자발적으로 뛰쳐나온 수많은 시민들이 파도처럼 광장과 거리를 가득 메웠다. 촛불을 손에 들고 마치 소풍을 가듯 몰려들었다. 대답 없는 거리에서 저항의 몸짓은 끊임없이 이어졌다. 분노 속에 몸은 부대끼는데도 왠지 미래에 대한 희망과 열정이 광장을 지배했다. 분노와 좌절로 처절하고 외로운 거리가 아니라 풍자와 해학, 유머가 넘쳐난 자유롭고 평화로운 광장이었다.

‘이게 나라냐?’ ‘이게 정치냐?’ 돌이켜보면 정치가 실종된 곳에서는 어김없이 거리의 정치가 등장했다. 촛불바다의 거대한 물결은 부도덕한 권력이 꾸며 놓은 위선의 무대를 덮쳐버렸다. 역사 창조의 직접적인 주체이면서도 역사의 주인이 되지 못했던 우리네 민중은 일상에서 뛰쳐나와 변화의 주체가 되었고, 이 역사적 현장을 기억하면서 진정한 시민으로 거듭났다. 기억한다는 것은 이런 역사가 다시는 되풀이되지 말아야 한다는 약속이며 새로운 역사, 새로운 나라를 만들자는 다짐이기도 하다. 그 기억 속에서 아직도 못다한 1970~1980년대의 기원과 열망은 미래로 이어지고 있다.

사실 ‘대권’이란 말은 王權의 잔영이 남아있고 권위주의 냄새가 물씬 풍겨 귀에 거슬림에도 왠지 주저 없이 사용돼왔다. 대권은 원래 천하를 제 마음대로 하는 권한이라 하니, 바로 그렇기에 단 한 번 잘못 휘둘러도 국가적인 불행을 초래할 수 있다. 이 대권을 지닌 대통령이 주권자인 국민을 위해 일하라고 위임한 권력을 남용하고 오용해 국가의 공적 시스템을 무너뜨렸다. 공적 권력이 거리낌 없이 사유화되면서 리더십은 실종되고 국가 운영은 자중지란에 빠졌다.

가히 충격적이라 할 수 있는 정치적 리더십의 최대 위기다. 리더십은 행동하는 양심이며 인격이다. 리더십은 기본적으로 신뢰 위에 구축된다. 그동안 헛된 명성은 과대평가되고 신뢰는 과소평가됐으니 이 위기는 탁상공론만 일삼은 우리 사회, 우리 정치의 자업자득이리라.

진정한 리더는 사익보다 공익을 우선하는 도덕성과 함께 그 자리에 자신이 ‘부름을 받았다’는 소명 의식을 가져야 한다. 도덕성은 후천적인 교육과 자기성찰, 자기훈련을 통해 길러지는 것이기에 아무나 가질 수 없다. 권한에 걸맞는 책임을 짊어질 도덕성은 리더에게는 선택이 아닌 필수다. 그러므로 도덕성이 결여된 리더십은 궁극적으로 성공할 수 없다.

신뢰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정치란 곧 올바름(政者正也)’이라 정의한 공자가 無信不立의 가르침으로 이미 더할 나위 없이 강조한 바 있다. 정치의 요체는 곧 신뢰라는 것이다. 정치가 거짓말에 오염되는 순간, 이미 정치가 아니다. 원칙과 신뢰를 입에 달고 살았던 대통령이 부도덕하고 무능한 리더십으로 민주주의를 파괴하였다. 많은 지지자들로부터 단단하고 강력한 지지와 사랑을 받아온 그 대통령이 민중의 억장을 무너뜨리면서 증오와 배신의 아이콘이 됐다.

신뢰 무너지는 소리는 끊이지 않고 악취가 뿜어져 나오며 추한 속살이 연일 드러나고 있다. 하지만 자신의 권리와 의무의 한계가 어디까지인지도 모르고 자기통제에도 미숙한 대통령의 권력의지는 고집스레 버티고 있다. 가벼운 깃털도 쌓이고 쌓이면 배를 가라앉게 하고, 민중이 입을 모아 외치면 쇠도 녹인다는데, 아무리 막강한 대권을 지닌 대통령인들 어찌 민중의 소리를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신뢰는 정치와 정치인의 생명이다. 선거를 통해 권력을 선출하는 나라에서 국민의 신뢰를 상실한 정치인은 변명의 여지없이 즉시 참회하고 사죄하며 물러나야 한다. 진정으로 국가와 국민을 생각한다면 때를 놓치지 말고 현명한 결정을 내려 결자해지함이 옳다.

우리 민족은 식민지와 전쟁, 쿠데타와 국가부도 사태를 겪으면서도 결국은 답을 찾아 저력의 역사를 일궈왔다. 정치권은 이 국민을 믿고 정도를 걸어야 한다. 광장에 넘치는 민의를 수렴해 정의와 민주주의가 살아숨쉬는 신뢰와 감동의 정치를 펼쳐야 한다는 말이다.

설한 편집기획위원 / 경남대·정치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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