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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진'에서 87년 체제 종식으로!
'퇴진'에서 87년 체제 종식으로!
  • 문성훈 편집기획위원/ 서울여대·현대철학
  • 승인 2016.11.21 1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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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깍발이] 문성훈 편집기획위원/ 서울여대·현대철학
▲ 문성훈 편집기획위원

박근혜 대통령은 헌법이 정한 국가 기관을 배제한 채 정체불명의 인물과 국정을 농단함으로써 헌법질서를 파괴했고, 국민이 뽑지도 않은 사적 개인이 대통령처럼 행세하게 함으로써 민주주의 질서를 파괴했고, 국민의 안녕과 국익이 아니라 개인의 사리사욕과 헛된 망상에 국가를 내맡김으로써 대한민국을 파괴했다. 그러나 대통령은 자신의 잘못을 통감하지 못한다. 하지만 100만 촛불집회가 보여주듯 대통령은 더 이상 대통령이 아니다. 국민은 퇴진을 원하고, 이미 대통령을 버렸다.

그렇다면 진정 대통령 퇴진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단지 대통령의 헌정 파괴 인정일까. 또한 온 국민이 분노한 것도 국가의 근간을 흔들어 놓은 박근혜 대통령의 과오 때문이기만 한 걸까? 아니면 퇴진 요구에는 더 큰 이유가 내포되어 있고, 퇴진은 더 큰 의미를 함축하는 걸까.

박근혜 정부에 대한 국민의 분노는 지난 총선 때부터 확인된 사실이다. 16년 만에 의회 권력이 교체되었고, 콘크리트처럼 강했던 영남표가 분열되었다. 분명 이런 변화가 일어난 것은 국민의 불만이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임계점에 도달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퇴진 요구 역시 그 동안 누적된 이러한 정서가 폭발된 것은 아닐까.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불리는 전대미문의 사건이 이러한 폭발의 기폭제가 된 것은 아닐까.

1987년은 민주화 원년으로 기록된다. 대통령 직선제가 실시됨으로써 이른바 형식적 민주주의가 확립됐다. 하지만 IMF 이후 한국사회가 신자유주의란 새로운 경제 질서에 편입되면서 새로운 권력이 등장했다. 시장을 지배하는 기업권력이 그것이다. ‘이제 권력은 시장으로 넘어갔다’는 노무현 대통령의 말처럼 그것은 대단한 것이었다. 일거에 노동시장을 유연화시키더니 비정규직을 양산하고,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든다며 각종 규제를 철폐하면서 정치권력까지 좌지우지하는 듯했다.

그 결과 대기업들은 한 때 사상 최대의 수익을 올리는가 하면 사내보유금은 조 단위로 늘어만 갔다. 그러나 반대로 가계부채는 1300조로 늘어났고, 정규직 월급의 반 밖에 받지 못하는 비정규직이 증가하면서 중산층은 무너졌다. 또한 청년실업이 지속되면서 3포 세대가 등장하고, 한 세대의 빈곤은 ‘흙수저’로 대물림된다. 급기야 상위 10%가 전체소득의 50%를, 하위 70%는 단지 20%만을 차지하는 참담한 상황이 벌어졌다.

그렇다면 이러한 상황에서 정치권은 무엇을 했을까. 사회적 양극화라는 참담한 현실에 대한 무력감 때문일까, 투표율은 현저히 떨어졌고, 대표성 없는 정치인들이 활개를 쳤다. 더구나 국민들은 이들이 짜놓은 선거 프레임에 갇혀 원하지도 않는 정치인을 할 수 없어 뽑든지, 아예 투표장에 나오지 않는 일들이 벌어졌다. 결국 한편에서는 민의에는 아랑곳 않고 자리보존에만 혈안이 된 정치인들이 득세하고, 다른 한편에선 정치 혐오와 분노를 삭히는 국민들이 늘어났다. 그리고 그 틈을 타 기업권력과 정치권력이 하나가 되어 거대한 지배체제를 형성한다. 이것이 1987년 쟁취한 민주화의 역설이다.

민주주의의 근본 원리는 모든 국민에게 자유롭게 살 수 있는 권리를 평등하게 보장하는 데 있다. 형식적 민주주의가 자유롭고 평등한 투표권은 보장했지만, 자유롭게 살 수 있는 권리마저 보장한 것은 아니다. 1대 99%라 할 만큼 양극화가 심각한 상황 하에서 자유롭게 자신의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아마도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퇴진 요구는 이러한 절망적 상황이 분노로 폭발한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민주주의는 어디로 가야 할까. 이제 민주주의는 새로운 민주주의로 도약해야 한다. 그것은 단지 투표권만을 형식적으로 보장하는 것이 아니라, 자유롭게 살 수 있는 권리를 실질적으로 보장하는 것이다.

문성훈 편집기획위원/ 서울여대·현대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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