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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변화를 읽어야 할 때
시대의 변화를 읽어야 할 때
  • 방민호 편집기획위원/서울대·국어국문학과
  • 승인 2016.11.07 11: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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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깍발이] 방민호 편집기획위원/서울대·국어국문학과
▲ 방민호 편집기획위원

예민한 촉수를 뻗어 시대의 변화를 감지해야 할 때다. 변화의 진정한 방향을 고민해야 할 때다. ‘5퍼센트’라는 숫자의 의미가 너무나 무겁게 보이는 오늘이다. 굉장한 힘과 능력을 가진 세력이 자신을 과신하고 있는 사이 국민은 돌연히 그들을 향한 전면적 불신을 표명했다.

1987년 6월과 2016년 11월은 확실히 다르다. 그때는 20일 동안 매일 수백만의 시민이 도심으로 밀려들었다. 인터넷도, 휴대폰도 없는 시절이었다. 오늘, 주말로 예정된 서울시 집회에 예상되는 인원은 불과 10만명이다. 하지만 그마저도 둑이 무너지고 있다. 시시각각 집계되는 시민들의 의사와 의지는 현재의 체제가 임계점에 다다랐음을 말해준다. 양상은 전혀 달라보셔도 ‘모든’ 축적이 이루어졌다. 바야흐로 질적 변화가 불가피한 상황이다.

무엇이 달라져야 하는가. 무엇보다, 모든 도그마와 현학과 궤변과 요설이 추방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람은 사람 사이에 신호를 보내고 받음으로써 이 세계를 유지하고 만들어간다. 그러니 뭐니뭐니 해도 말이 문제요, 관건이다. 우리는 말로 학문을 하고 말로 정치를 한다. 말이 효력을 다한 곳에 폭력과 증오가 서식하는 법이다. 너무 오랫동안 선한 논리와 이해와 설득이 설 자리를, 꾸며낸 여론과 댓글과 견강부회, 지록위마, 곡학아세로 채워왔다. 꾸며 만든 헛소문과 일부러 일으키는 사건과 마타도어와 험담, 비아냥, 악선동, 딱지 붙이기 같은 것으로 세력을 유지하는 방식은 이제 그쳐야 한다.
 
진정함 없는 허식과 진실을 가리는 거짓말로 어떻게 입장과 처지가 다른 사람들을 이해시키고 설득할수 있을까. 상대방의 말은 듣지 않고 자기 말만 하는 일방통행으로.어떻게 세상 사람들을 크고 길게 움직일 수 있을까. 의견과 입장이 다른 사람들이, 깊이 보면 ‘내’가 ‘나’의 삶을 의지하고 있는 존재임을 깊이 의식할 때 비로소 진의, 성의를 담은 말, 제안, 위로, 협의 같은 것이 가능해진다. 을르고 누르고 찌르는 말의 폭력에서, 상처 입고 피흘리는 말을 구해내야 한다.
 
다음으로, 모든 문제를 다루어 나감에 있어 극단적 생각을 버리고 다양한 방향과 방법에서 가능성과 해결책을 찾는 사고방식을 정착시켜 가야 한다. 1980년대 이후 우리 사회의 개혁적 ‘진화’ 과정에서 극단주의는 진정한 민주적 변화를 가로막는 장애물이 되어 왔다. 1970년대에서 1980년대로 이어지는 군사파시즘의 야만적 통치에 맞선 학생 및 청년운동의 흐름 속에서 반독재 운동을 또다른 전체주의에 수렴시키는 극단적 경향이 나타났다.

소비에트나 중국, 북한의 전체주의적 체제를 혁명적 사회로 인식하는 오해, 그 사회들이 진보적이고, 좌파적이라고 인식하는 무지 같은 것이 지금까지도 여전히 불식되지 않은 채 북한 문제나 통일 문제 등을 다룰 때 끈질기게 나타나곤 한다.

그리하여 오늘날 우리 사회에는 두 개의 정치적 극단주의가 존재한다. 하나는 현실에서 지배권을 행사해 왔으나 지금 급전직하 상태에 있는 과거 회귀의 극단주의다. 나라 곳곳에 동상을 세우고 천문학적 돈을 들여 기념사업을 벌이며 역사 교과서도 바꾸고 문학작품에까지 앙상한 이념적 천도를 들이미는 극단주의, 그것이 그 하나다.

다른 하나는 현실 정치권의 외형적 체제 구성에서는 추방됐으나 여전히 음습한 사고 경향으로 개혁파들 속에 잔존해 있는 또다른 전체주의적 극단. 이 두 가지 극단적 사유구조가 이제 바야흐로 열리고 있는 듯한 새로운 사회적 변화의 방향을 사로잡지 않도록 경각심을 잃지말아야 한다.

지금 우리 사회는 안팎으로 커다란 위기에 직면해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밖의 위기는 한중일 속에서의 고립이요, 미국의 신고립주의 등장에 따른 안보 위기로 나타났다. 안보의 위기는 우리가 하루하루 목도하고 있는 정치적 혼란에 경제 부진 같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정색을 하고 반문해 볼 필요도 있다. 안팎의 위기라는 것을 감당해야 하고 헤쳐나가야 할 사람들은 누구인가. 그것은, 하루하루 자신의 위치에서 일을 하고 장사를 해야 살아갈 수 있는 사람들이다. 그들이 지금 생활, 생존의 큰 위기를 겪고 있다. 이들의 삶에 깊은 관심을 품는, 동정과 상애의 정신이 바로 서지 않고서는 위기의 극복이란 단지 숫자의 회복일 뿐이요, 변화란 한갓 권력 담당 세력의 교체에 지나지 않게 될 것이다.

 

방민호 편집기획위원/서울대·국어국문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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