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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갈등과 합리적 판단
사회적 갈등과 합리적 판단
  • 박순진 편집기획위원/ 대구대·경찰행정학과
  • 승인 2016.08.16 12: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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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깍발이] 박순진 편집기획위원/ 대구대·경찰행정학과
▲ 박순진 편집기획위원

최근 들어 우리 사회에서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현안을 둘러싸고 다양한 집단 갈등이 여과 없이 적나라하게 표출되고 있다. 전국적 이슈에서부터 지역적 이슈에 이르기까지 첨예한 충돌이 벌어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직장과 대학에서도 여러 형태의 갈등이 날 것 그대로의 민낯을 드러내고 있다. 한편에서는 사드 배치를 비롯한 국가 안보 문제를 둘러싸고, 다른 한편에서는 정부의 경제 정책과 사회복지 제도에 대해서, 심지어 교육부의 대학구조개혁을 비롯한 개별 대학의 단과대학 설치와 학사제도 개편을 둘러싸고 갈등이 끊이지 않는다.

사회과학자로서 필자는 특정 사안을 둘러싸고 사회 내의 다양한 갈등이 분출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고 우리 사회의 건강성을 나타내는 것으로 판단한다. 집단 갈등은 종종 생산적인 논의를 이끌어내어 복잡한 사회문제를 해결하는데 도움이 되기도 하고 궁극적으로 사회나 집단의 발전을 이끌어내는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요즈음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갈등의 양상을 보고 있자면 여러모로 마음이 편하지 않다. 무엇보다 갈등 자체가 대단히 파괴적이고 공멸적인 양상을 보이는 것에 대해서는 선뜻 납득하기 어렵다.

어떤 사안이든 일을 결정하고 추진하는 데에는 분명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일을 추진하는 집단이 한편으로는 내부 집단의 전문성을 맹신하면서 정책 결정 권한이 자신들에게 있음을 앞세우고, 다른 한편으로는 사안의 시급성과 업무의 효율성을 내세우면서 정책 입안에서부터 시행에 이르기까지 정책의 대상이 되거나 영향을 받는 집단에게 설명하고 동의를 구하는 민주적인 절차를 생략하거나 축소하려고 하면서 사회적 반발과 갈등이 조장되곤 한다. 이런 사정은 최근 문제가 된 사안에서 정부든 대학이든 마찬가지이다.

일련의 사안에서 필자가 우려하는 것은 갈등하는 집단의 태도가 대단히 적대적이라는 사실이다. 정치적, 사회적 이슈를 둘러싸고 갈등하는 집단은 상대의 사정을 들으려고 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압도적인 비난을 퍼붓곤 한다. 상대가 제시하는 합리적인 논거나 대화의 시도는 쉽게 외면당하기 일쑤고 서로의 입장이 차이날 수 있고 추구하는 목표가 다를 수 있다는 사실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정책의 완전한 철회와 상대의 전면적인 항복만이 유일한 해결책인 듯이 주장한다. 이것은 더불어 사는 열린 태도라 할 수 없다.

갈등이 지나치게 진전되면 문제가 된 정책의 철회를 넘어 상대의 존재를 부정하고 전면적으로 박멸하는 것이 목적인 듯이 사태가 왜곡되어 진전되기도 한다. 가장 심각한 형태는 인터넷에서 이루어지는 막말 수준의 논쟁에서 잘 드러난다. 일부 논쟁을 보면 누구랄 것도 없이 근거 없는 편견과 막연한 증오를 쏟아낸다. 종종 공공연한 사실 관계조차 무시되고 악의적으로 왜곡되곤 한다. 다양한 집단이 공존하는 것이 사회이고 개인이나 집단의 다양성이 존중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 이런 태도는 전혀 생산적이지 않다.

개인 생활이나 집단 생존의 조건에 따라 사람들의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이 달라질 수 있다. 다양한 집단은 각기 다른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으며 각자가 바라보는 중장기 전망이나 추구하는 목표가 다른 것은 전혀 이상하지 않은 일이다. 특정 사안을 둘러싸고 개인이나 집단이 가진 정보 역시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큰 편차가 있을 수 있고 같은 수준의 정보를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여러 정보의 우선순위에 대한 평가가 다르다. 개인이나 집단이 특정 사안에 대해서 서로 다른 판단을 하는 것은 여러 측면에서 자연스러운 일이다.

어떤 사회나 집단에서도 의도적으로 잘못된 선택을 하려는 정책 결정자는 없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특정 사안을 반대하는 사람들 역시 상당한 수준의 타당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어떤 정책이든 그것을 추진하는 사람들은 물론이지만 그에 대해 논박하고 공개적으로 갈등하는 사람들도 각자 주어진 정보 안에서 최대한 합리적으로 판단하도록 해야 한다. 아울러 일의 경과에 대해 상호간에 필요한 정보를 공유하고 대화를 통해 상대의 입장을 이해하면서 갈등을 해결하는 생산적이고 성숙한 논의가 이루어질 수 있기를 기대한다.

박순진 편집기획위원/ 대구대·경찰행정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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