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놓기 어려운 것들
놓기 어려운 것들
  • 방민호 편집기획위원/서울대·국어국문학과
  • 승인 2016.08.02 12: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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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깍발이] 방민호 편집기획위원/서울대·국어국문학과
▲ 방민호 편집기획위원

요즘 여러 일들을 겪으며 대체 나는 무엇을 싸안고 다니고 있는지 생각하게 됐다. 돌이켜 보면, 세상에 내려놓기 어려운 것이 셋 있다. 그 첫째는 자식이요, 둘째는 친구요, 셋째는 돈과 지위와 명예다.

우선, 자식 때문에 고생해 본 사람은 그로 인해 자신이 겸손해짐을 안다. 같은 일하는 사람 몇이 모여서 무슨 얘기를 해도 어느 것 하나 크게 다를 것 없는데, 오로지 자식 일만 다를 때 입을 닫고 화제에서 제외되고 싶어진다. 이런 때 누군가 자식 얘기를 묻는 사람 있다면? 징역 십 년이다. 얼마 전에 묻고 그걸 잊고 또 묻는 이 있다면 징역 십오년 형, 가중 처벌죄다. 내가 하는 일은 내가 책임지든 지지않든 나 하나에서 끝나면 그뿐인 것을, 자식은 그렇지 않다. 버릴 수도 놓을 수도 없다. 이것이 사람 부모 된 가장 큰 부담이요, 괴로움이요, 끊을 수 없는 인연 사슬이다.

옛날 하고도 옛적에 내가 어머니, 아버지 속을 무던히도 썩였더니, 하다하다 지친 어머니 말씀. 너도 자식 낳아 봐야 알지, 하시는 것이었다. 새까맣게 잊고 있다 자식 낳고 키우는 때 되고 나서 실컷 고생하다 문득 옛날 그 말씀이 떠올랐다. 그만큼 세월이 흐르고 흘렀다.

어디 자식뿐이랴. 학부, 대학원에서 함께 공부하는 학생들에 대해서도 어느 때는 친자식과 마찬가지로 괴롭고 불쌍하고 못마땅하기도 하다. 야심이 크고 공부를 열심히 한다 싶으면 남에 대한 배려심이 적은 것 같아 아쉽고, 사람 더 할 수 없이 좋다 싶으면 공부에 악착을 부리는 것 같지 않아 어딘가 부족하다 싶다. 배려심도 좋고 자기 공부도 좋은 학생이면 금상첨화일텐데 딱하게도 그런 사람은 적고, 있다 해도 제3의 단처가 엿보일 수 있다.

디음으로, 친구. 자식이며 학생만큼 신경 쓰이는 존재가 또 있을까 해, 어느 때는 가장 가까운 친구에게 터놓고 괴로움을 하소연할 때가 있다. 뭘 그래? 아무 것도 바라지 않으면 되지. 돌아오는 간단명료한 해답이다. 아무리 사이 좋은 친구라 해도 늘 좋고 늘 통하는 게 아님은 물론, 특히 친구들끼리 가장 괴로운 것은 가치관이 다름이다. 서로 흉금을 터놓는 사이라 해도 뼛속까지 배어 있는 시각만은 어떻게 조정하지 못하는 게 당연지사. 아무리 타인을 배려하고자 해도 어떻게 하는 게 그런 것인지 알 수 없고는 눈 먼 정성이 쉽게 통하기 어려울 밖에 없다. 그래도 어떻든간에 자식만큼이나 내려놓기 어려운 게 친구다. 자식 그냥 보아두기 어렵듯이 친구도 쉽게 없는 취급할 수 없다. 돈 없는 친구, 직업 없는 친구, 몸이 아픈 친구, 결혼 안 한 친구, 이 모든 괴로움을 다 가지고 있는 친구는 심사를 어지럽힌다. 나이 들수록 친구는 더욱 많을 수 없기에 그의 괴로움은 곧 나의 것이 된다.

헌데, 이런 것들은 다 욕망이라고 부를 수는 있으나 미워하기 어려운 것도 같다. 그와 성격이 다른 욕망들이 있으니, 그게 바로 돈이요, 지위요, 명예라 할 것이다. 공부하는 사람들은 이 가운데 마지막 것이 소중함을 일찍이 의식한 사람들이다. 자신은 진리를 탐구하는 사람이라는 좁은 허위의식을 공부하는 사람은 버리기 힘들다. 외려 그것으로 자기 존재의 집을 짓고 그 안에 틀어박혀 사는 것을 즐거움으로 여긴다. 그러나 이것은 아집의 첫 걸음이기는 하되 아직 크다고만은 할 수 없는 흠이요, 이 흠을 조심스레 잘 안고 가기만 하면 인생은 그런대로 버틸만한 게 된다.

심각한 것은 이 아집 위에 지위와, 나아가 재물을 위한 마음이 한데 뒤얽혀 본래 자기를 결정지은 공부라는 명예조차 위협해 들어갈 때다. 세상에 이 셋을 한데 누리기 어렵다는데, 어떻게라도 이 모든 것을 다 누릴 수 있을 조그마한 가능성이라도 엿보인다 치면 얼마간의 망설임도 없이 그것을 향해 나아가고 손을 뻗치는 일을 피하기 어렵다. 하지만 누구나 가지고자 하고 탐을 내는 것은 위험스럽다. 모든 것을 다 가지려 할 때 한 가지도 유지하기 어려운 일이 종종 일어난다.

그리고 이 위험은 처음에는 잘 드러나지 않는다. 내가 어디쯤 와 있는지 무엇을 하고 있는지 헤아리기 어렵다. 모든 사태가 진행될 만큼 진행된 다음에야 자기에게 스며든 욕망의 해독을 느낄 수 있게 된다. 그리고 그때는 이미 늦었을 수 있다.

사람 인생은 간단 명료하다. 20대 때는 세상을 모르고 산다. 30대 때는 세상에 적응하려고 산다. 40대 때는 세상 속에서 역할을 하느라 살고, 그러면 50대다. 겨우 안정을 얻었겠지만 바로 그때 가지고 싶고 놓기 어려운 것들의 역습이 시작된다. 어디 그렇게 매달렸으니 어디 한번 괴로워보라고 한다. 많이 생각하고, 매 순간, 放下着 세 글자를 잊지 않아야겠다.

방민호 편집기획위원/서울대·국어국문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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