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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가 병든 사회, 말의 정치
언어가 병든 사회, 말의 정치
  • 설한 편집기획위원 / 경남대·정치철학
  • 승인 2016.07.25 1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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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깍발이] 설한 편집기획위원 / 경남대·정치철학
▲ 설한 편집기획위원

한 공직자가 생각 없이 내뱉은 막말 한 마디가 온 국민의 마음속에 깊은 상처를 남겼다. 말을 함부로 하여 후회하고 자책하며 부끄러워하던 순간들은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많은 이들이 말로 인해 갈등을 빚고, 구설수에 올라 곤욕을 치르기도 한다. ‘입(口)은 화를 불러들이는 문’이라 했거늘 이 세상에 세치 혀처럼 다루기 어려운 것이 또 있을까. 그래서인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말조심에 관한 속담과 격언은 무수히 많다. 말이란 한번 하면 주워 담을 수 없기에 모두 말을 경계하고 말을 할 때는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저질 언어에 오염된 우리의 말 문화는 공감 능력을 상실한 우리 사회의 대표적인 병리현상으로 자리 잡았다. 사회 지도층과 일반 국민, 남녀노소,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가리지 않고 정제되지 않은 언어가 난무하고 있다. 정치권과 공직자의 막말, 상업주의 방송의 저속어, 청소년 욕설, 온라인상의 언어폭력은 일상이 되어버렸고, 소수의 일탈로 치부하기에는 그 도를 넘어서고 있다. 정보기술 혁명으로 인해 말 한마디가 갖는 파장과 위력은 날로 커지고 있는 반면, 말의 품격은 갈수록 훼손되고 있다. 언어폭력이 대중화되고 일상화되면서 막말과 폭력적 언어는 우리의 마음과 사회를 병들게 하고 불필요한 갈등을 심화시킨다.

그 중에서도 가장 큰 파장을 일으키는 것은 하루가 멀다 하고 나오는 정치인들의 막말이다. 그만큼 정치인의 말은 영향력이 크기 때문이다. 특히 국가와 사회의 지도층 인사일수록 언행을 신중히 해야 하건만 우리 사회를 막말과 독설의 경연장으로 황폐화하는 데 정치인들이 앞장서고 있는 셈이다.

정치는 관계적 활동으로 혼자 하는 것이 아니니 당연히 말이 통해야 이뤄질 수밖에 없다. 정치적 삶을 ‘행위(praxis)와 언어(lexis)’로 규정짓는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하면 정치적 행위는 말을 통해 실행되며, ‘적절한 순간에 적절한 말을 발견하는 것이 바로 행위’라고 한다. 그렇다면 정치의 본질은 결국 말이라 할 수 있다. 말은 때와 장소를 가려서 해야 하는 법. 적시성, 적절성, 적정성이 모두 잘 어우러져야 공감을 얻을 수 있다. 그런데도 입버릇처럼 늘 소통을 강조하는 우리 정치인들은 거칠고 천박한 막말과 말실수, 망언으로 舌禍가 끊이지 않고 있다.

정치인들의 막말이 꼬리를 물고 반복되는 이유는 뭔가. 승자독식의 적대적 정치구조 속에서 신념과 책임 윤리는 실종된 채 정치인들이 여전히 부족정치(tribal politics)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그들의 자극적인 발언은 자신의 존재감 부각을 위한 소영웅주의 심리의 발현이거나, 지지층 결속을 위해 계산된 정치적 행위에 지나지 않는 듯하다. 그렇다면 막말은 진영 갈등에 편승하여 당장의 정치적 이익과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의도된 정략의 산물일 뿐이다. 이처럼 지켜야 할 권위와 타파해야 할 권위주의를 분간치 못하는 정치인들의 퇴행적 언행은 스스로의 품위를 손상시키고 정치 혐오를 가중시키고 있다.

막말 정치는 어떠한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 막말은 지지층에 일시적인 카타르시스를 줄 수는 있지만 오히려 패거리 정치의 정체성과 소속감을 강화함으로써 종국에는 갈등의 골을 더 깊게 하고 혼란과 정국경색을 초래할 뿐이다. 옛 선비들은 한 마디 말을 할 때도 세 번은 생각하고 말을 해야 실수가 없다고 가르치고 있다. 함부로 입을 놀린 뒤 후회가 밀려와 얼굴이 화끈거린다면 역지사지의 자세로 본인이 내뱉은 말을 되새김해보라. 말로 인한 상처가 얼마나 아프고 오래 가는지. 그러고도 표현의 자유를 운운할 수 있는지.

말(言)은 내면의 거울이요, 인품을 담는 그릇이라 했다. 언어를 통해 우리의 존재가 드러나니 말은 곧 인격이고, 삶이다. 언어가 단순히 의사소통의 수단을 넘어 우리의 사유를 지배하고, 세상을 인식하는 통로라고 한다면 하찮은 농담이라도 함부로 던질 수 없다. 품격 있는 정치를 꿈꾸는가. 그렇다면 무엇보다 말을 가다듬고 口德을 쌓는 게 먼저다. 예의를 갖추고 존중과 배려의 말로 책임감과 신뢰감을 주는 그런 정치인이 그립다. 거기에 정곡을 찌르는 촌철살인적인 한 마디와 적절한 유머, 격조 있는 농담을 구사할 수 있다면 더 말할 나위가 있겠는가. 불통의 벽은 허물어지고 소통과 교감의 문이 열릴지니.

설한 편집기획위원 / 경남대·정치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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