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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단을 떠난 초보 농부의 꿈
강단을 떠난 초보 농부의 꿈
  • 윤석원 중앙대 명예교수, 농업경제학
  • 승인 2016.07.04 1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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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로칼럼] 윤석원 중앙대 명예교수, 농업경제학
▲ 윤석원 중앙대 명예교수
금년 2월말 정들었던 교정을 떠났다. 이제 30여년간의 농업경제, 정책분야의 연구와 제자양성이라는 교수로서의 직책을 내려놓고 고향인 강원도 양양으로 회귀해 작은 과수원(양양로뎀친환경농원)을 만들어 직접 농부가 됐다. 지난해 작은 농지를 구입하고 친환경 유기생태농업을 목표로 토양개선을 위해 석회고토도 뿌려주고 호밀도 식재해 땅심을 높이는 작업을 해왔다.
 
금년 3월부터는 친환경재배가 그래도 비교적 수월하다는 미니사과(알프스 오토메)를 재배하기로 하고 작목반에 들어가 농민 선배님들로부터 많이 배우며 땀 흘리고 있다. 농지원부도 만들었고 농협조합원도 됐으며 농가경영체 등록도 마쳤다.
 
나의 작은 일터이자 후반부 삶의 보금자리인 양양로뎀친환경농원은 강원도 양양 물치항과 물치해변이 직선거리로 1.5미터 떨어져 있어 멀리 바다가 보이고, 바람 많은 동해안이지만 뒤로는 나지막한 야산이 북서쪽을 병풍처럼 둘러쳐 있어 그래도 비교적 아늑한 곳, 따사로운 햇살이 하루 종일 드는 양지 바른 곳, 100여미터 아랫동네는 150여 가구가 200여년의 전통을 자랑하며 대부분 농민인 주민들이 옹기종기 모여 살아가고 있는 곳이다.
 
사실 지난 40여년 동안 특히 교수생활 30여년 동안 나름대로 이것저것 많은 것을 한 듯하다. 인류가 직면하고 있는 식량, 자원문제와 기후환경문제를 정치·경제·사회학적 관점에서 연구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중도성향의 농업경제학자라고 자부하기도 했다.
 
또한 농민단체나 시민단체와 함께 신자유주의에 저항하고, 농업·농촌·농민의 현장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연구와 대안제시에 많은 고민을 하기도 했으며, 정책에 대한 평가와 비판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기후환경변화와 생태순환의 문제는 물론 비인간적인 물신주의의 만연에 따른 인간(농민)소외의 문제를 농업경제학자의 시각에서 연구해 농업문명의 전환에 관한 연구도 시도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땅의 농업·농촌·농민의 현실은 날로 참담해 지고 있다. 농촌엔 젊은이들은 점차 줄어들고 아이들 울음소리가 그친지 오래됐고, 연로한 어른들이 농촌을 지키고 있어 생기를 잃은 지 오래됐다. 일년에도 수십개의 마을이 사라지고 농사지을 땅은 하루가 다르게 줄어들고 있다. 쌀을 비롯한 모든 작목의 재배면적은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고 자급률은 곤두박질치고 있다. 경자유전의 헌법정신은 훼손된 지 오래고 정작 농민에게 필요한 농지는 절반이 부재지주의 것이요 수도권은 80%가 넘는다. 농민들의 삶은 나날이 힘들어 지고 있다. 도시근로자 소득의 60%대에 머무르고 있다.
 
농업·농촌이 소중하다고 평생 외쳤으니 나라도 직접 농촌으로 직접 농사를 짓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다. 진정우리의 농업·농촌·농민과 함께하며 이들을 이해하고 그 중요성을 세상에 알리는 일에 헌신하는 것이 현직에서 나온 자들이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연어는 온갖 풍파와 험난한 삶의 자리인 바다에서 수천수만 킬로를 헤엄쳐 태어난 작은 강으로 회귀해 알을 낳고 장렬히 생을 마감하는 어종으로 알려져 있다. 나도 이제 그동안 험난했고 거센 삶의 자리였던 도시생활을 청산하고 연어의 고장인 고향 양양의 작은 마을로 회귀했으니 죽는 날 까지 작은 알 하나라도 낳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해 본다.
 
이제 막 시작한 초보농부의 꿈은 작은 과수원을 잘 일궈 내고 농민들과 함께 웃고 함께 우는 작은 농민이 되는 것이 인생 후반부의 꿈이다. 그렇다고 학자로서의 문제제기나 연구에 게을리 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죽는 날까지 당당하게, 소박하게, 그리고 담담하게 살아내려 한다.
 
윤석원 중앙대 명예교수, 농업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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