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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공유
대학공유
  • 문성훈 편집기획위원/서울여대·현대철학
  • 승인 2016.05.23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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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깍발이] 문성훈 편집기획위원/서울여대·현대철학
▲ 문성훈 편집기획위원

최근 연세대와 고려대 총장이 만나 ‘공유경제 개념에 근거한 자원공유’를 천명한 바 있다. 연세대와 고려대가 교수, 강좌, 시설, 학생, 학점교류를 포함한 모든 자원을 공유함으로써 대학 간 연합체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이른바 ‘공유이념’을 대학에 적용한 것이다.

이런 식의 공유이념은 서울시교육청이 올해 2학기부터 시범운영하려는 ‘학교연합형 교육과정’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이는 교육과정을 학교 간 협력을 통해 공동운영하는 것을 말하며, 이것이 시행되면 학생들은 자신이 소속된 고등학교가 아니라, 다른 고등학교로 이동해 수업을 들을 수 있다.

흔히 공유에 대한 학문적 관심을 불러일으킨 사람으로는 2009년 『공유의 비극을 넘어서』로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엘리노스 오스트롬이 거론된다. 물론 여기서는 물, 수산자원, 삼림 등 공유재에 대한 관리가 핵심 문제를 이루지만, 정보통신기술의 발달과 함께 새로운 공유 사례들이 1990년대 말부터 등장한다.

오픈 소스, 오픈 데이터, 오픈 엑세스처럼 소프트웨어, 지식, 콘텐츠 등을 저작권과 무관하게 모든 사람이 공유할 수 있도록 완전히 개방한 것이나, 인터넷 상에서 사용자들이 동시에 서버 역할을 함으로써 멀티미디어 파일을 공유하는 P2P 등이 대표적 사례들이다.

이러한 공유에 대한 관심은 현재 지역 공동체 내에서 물리적 공간, 생산도구, 기술, 서비스 등을 공유하려는 사회운동으로 발전하고 있으며, 공유의 대상과 방식이 어떤 것이든 공유이념은 개인적 이익과 효용만을 추구하는 경쟁 중심의 사회운영 시스템에 대해 상호협력과 공동번영을 주장하는 대안적 사회이념으로 등장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공유이념에 기초한 대학공유가 연세대·고려대만이 아니라, 전국 대학으로 확대된다면 어떤 변화가 일어날까? 현상적으로 볼 때 대학의 변화는 예산 절감으로 시작될 것이다. 왜냐하면 부족한 시설을 확충하지 않고도 다른 대학 시설을 이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다 본질적 변화는 정부의 선별적 대학 지원으로 인한 교육수혜 불평등이 해소되고, 개별 대학이 아니라, 개별 교수에게 무게가 실릴 수 있다는 점일 것이다.

지금까지의 대학 지원은 교육부가 일정한 기준에 따라 대학을 선별하는 방식으로 시행됐다. 그러나 이런 식의 지원은 국민의 세금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임에도, 그 혜택이 선별된 대학 학생들에게만 돌아가는 차별의 문제를 야기한다. 그러나 대학공유가 이루어진다면 어느 대학이 선별적 지원을 받든 그 혜택은 전국의 모든 학생에게 돌아갈 수 있다. 그리고 전국 모든 학생들의 동등한 혜택에 초점이 맞추어진다면 굳이 모든 대학이 아니라, 선별적으로 대학을 지원할 필요가 있을까.

또한 학점 이수가 입학 대학으로 제한되는 것이 아니라, 전국 어느 대학에서나 이루어질 수 있다면, 이제 중요한 것은 어느 대학에 다니느냐가 아니라, 어느 교수의 어느 과목을 수강했느냐가 아닐까. 만약 그렇다면 이제 대학 교육의 중심은 대학 자체가 아니라, 교수로 이동하고, 대학은 개별 교수들의 연구와 교육을 지원하는 데 모든 역량을 집중해야 할지 모른다.

더 나아가 대학공유는 한국 사회의 고질적 병폐인 대학 서열화와 학벌 사회를 해소할 뿐만 아니라, 이로 인한 초중교 교육의 왜곡을 시정하는 데도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전국의 모든 대학이 교육자원을 공유함으로써 하나의 통합체를 이루게 된다면, 과연 어느 대학을 입학했느냐가 지금처럼 중요해질까.

새로운 제도는 예상치 못한 많은 문제를 야기할 수 있고, 많은 제도들은 그 정당성을 파괴하는 역설적 결과를 야기하기도 한다. 과연 대학공유는 한국 대학의 유토피아일까? 아니면 디스토피아일까?

문성훈 편집기획위원/서울여대·현대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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