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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대학의 과제
한국 대학의 과제
  • 허남린 논설위원/브리티시-콜럼비아대·아시아학과
  • 승인 2016.04.11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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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정론] 허남린 논설위원/브리티시-콜럼비아대·아시아학과

북미 및 일부의 유럽 대학들이 집중하는 가장 큰 과제는 세 가지다.

▲ 허남린 논설위원

첫째는 대학 구성원의 다양화 (diversity), 둘째는 부담가능한 학비의 해결(affordability), 그리고 셋째는 교육 및 연구의 국제화(globalization)다. 이것이 좋은 대학을 만드는 현재의 방법론이다. 대학총장들은 이들 과제의 중요성을 이구동성으로 강조한다.

다양화에 있어서는 학생들의 남녀비율은 이미 해결됐으므로, 남은 과제는 교수들의 동등한 남여비율과 학생과 교수집단의 다양한 인종 구성의 문제로 집중된다. 학비문제는 치솟는 등록금에 전적으로 기인하는 것으로 장학금의 확충노력으로 극복하고자 하지만, 현재 아직 그 출구가 잘 보이지 않는다. 세계화의 과제는 여러 프로그램을 통해 비교적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한국의 대학들은 이들 추세에 덧붙여 한국 특유의 세 가지 큰 문제에 직면해 있다. 첫째는 졸업생의 취업 문제이고, 둘째는 대학 순위에 대한 과도한 집착, 그리고 세 번째는 시간강사의 희생에 기반한 대학구성원의 상하 계급화다.

교육과 연구의 질적 향상을 위해 한국의 각 대학 및 관계기관은 필사의 노력을 경주한다. 여기서 흔히 채택하는 방법은 앞서 가고 있다고 생각되는 대학에서 시행하고 있는 제도를 연구, 도입해 내부 개혁을 추진하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른바 ‘선진적’이라고 말하면서 도입해 실행하는 제도들이 실은 선택적이고 때로는 자의적으로 왜곡된다는 점일 것이다.

인문학 및 일부 사회과학에 있어 논문위주의 연구평가, 그것도 특정한 리스트에 속한 저널에 게재된 논문을 떠받들며 이를 채용, 승진, 정년심사에 일률적으로 적용하는 것은 왜곡의 전형이라 할 수 있다. 북미의 어느 대학에도 없는 제도를 세계적 기준이라고 억지를 부리는 데, 이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대학구성원의 다양화는 그것이 인종에 관한 것이라면 이민의 나라가 아닌 한국에서는 구조적으로 큰 의미가 없다. 하지만 학생들의 성별 균형이 달성된 현재의 상황에서 대학교수들의 남여비율을 동등하게 만드는 목표는 구미의 대학들에 있어서와 마찬가지로 중요한 과제라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졸업생의 취업문제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계급구조가 심화돼 가고 있고, 분야에 따라 이중삼중으로 현격한 임금격차가 고착되면서, 여기에 사회의 일반적 의식조차 종속돼 가는 한, 대학 자체의 노력으로는 해결 불가능한 문제일 것이다. 대학이 풀 수 있는 것은 대학원생의 문제다. 해당 전문분야에 정규직으로 취업을 시킬 수 있는 인원만 뽑고 충분한 재정지원을 하면서 인재를 배출하는 것이 양심적인 행위일 것이다. 취업이 안 될 줄 뻔히 알면서 뽑는 것은 정의에 반한다.

대학은 종래 사회적 양심의 보루였고 진보적 사회정의의 산실이었다. 그러나 지금의 대학은 대학구성원의 집단이익이 계급화 되면서 사회일반보다 더 보수화돼 있음을 느낀다.

한국대학의 계급화는 비정규직 강사에 대한 열악한 처우로 민낯을 드러낸다. 대학교육의 한 축을 담당하는 구성원에 생활비에도 못 미치는 임금을 지불한다면 대학은 아예 동일노동 동일임금의 正義를 이야기할 자격이 없을 것이다. 사회정의는 대학 내부로부터 서서히 무너져가고 있음을 본다.

대학은 건강한 시민을 길러내는 곳이다. 대학은 소수의 영화를 위한 기관이 아니라, 사회전체를 위한 희망의 원천으로 존재해야 한다. 그것이 선진적 교육의 바람직한 모습일 것이다. 사회 전체의 복리를 지향하는 자존심 있는 대학교육의 지향, 이것이 지난 2년간에 걸친 칼럼을 마감하면서 맺고자 하는 필자의 바람이다.

허남린 논설위원/브리티시-콜럼비아대·아시아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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