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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입학정원의 逆說
대학 입학정원의 逆說
  • 허남린 논설위원/브리티시-콜럼비아대·아시아학과
  • 승인 2016.03.14 1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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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정론] 허남린 논설위원/브리티시-콜럼비아대·아시아학과
▲ 허남린 논설위원

대학의 입학정원은 전적으로 대학의 자율사항이다. 필자가 알고 있는 한 북미에서는 그렇다. 생산성 있는 교육의 제공이 가능하면 많이 받고 그렇지 않으면 적게 받는다. 국민의 세금이 큰 재원을 차지하는 주립대학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대학의 입학정원에 대한 권한이 정부에 속한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도 없다.

그러나 자율이라 하지만 대학들은 입학정원을 결정하는데 신중에 신중을 기한다. 주립대학의 경우는 공립학교라는 취지에 부합해 비교적 적은 등록금으로 많은 수의 학생을 받지만, 사립대학의 경우는 그렇지 않다. 캐나다에는 사립대학이 없으므로 논외이지만, 미국의 경우를 보면 사립대학의 입학정원은 의외로 적다.

미국의 인구는 3억2천 만 명으로 한국의 여섯 배 정도인데, 이름이 알려진 사립명문 가운데 한 학년의 정원이 2천명을 넘는 대학은 거의 없다. 대부분 1천명에서 많아야 1천700명 정도다.

흔히 최고명문으로 일컬어지는 두 대학의 경우를 보자. 하버드대는 한 학년의 학생 수가 1천670명 정도이고, 프린스턴대의 경우는 1천350명 수준이다. 한 학년의 학생 수가 2천을 넘으면 스스로 명문대학으로의 지향을 포기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

왜 그런가. 교육의 질과 학생 수는 반비례하기 때문이다. 높은 품질의 교육에는 적어도 다음의 두 가지 기본 조건이 전제된다.

하나는 지배적인 수업형태로서 토론식 수업(세미나)과 집중훈련식 수업의 제공이다. 토론식 수업에는 한 학급의 학생 수가 많아야 15명 전후다. 한편, 집중훈련식 수업의 한 예인 외국어 수업의 경우는 매주 전체수업 이외에 적어도 세 번은 한 시간씩 총 세 시간, 전임강사 한 명이 학생 2~3명과 둘러 앉아 철저하게 회화를 통해 배운 과제를 반복 연습한다.

다른 하나는 거의 모든 수업을 전임교수가 담당해야 된다는 점이다. 특정 대학을 선택하고 비싼 등록금을 내고 왔으니 학교에 소속된 전임교수로부터 수업을 듣고자 하는 것은 당연한 요구다. 여기에 졸업할 때까지 지속적인 지도와 어드바이스도 요구된다. 수업을 전임교수 이외의 강사에게 맡기는 경우는 특별히 초빙한 명성 있는 학자에 한정한다.

위의 두 조건을 충족시키자면 학생 수와 교수의 비율이 10대 1이 넘으면 물리적으로 불가능해진다. 이러한 대학들에 만약 정부에서 정원을 늘리라고 압력을 가한다면, 우리 대학을 망치고자 작정했냐고 아마도 필사적으로 저항할 것이다. 이들과 경쟁을 하는 주립대학들도 충분한 수의 전임교수가 확보되지 않으면 입학정원을 늘리지 않는다.

인구 5천만의 한국에는 초대형 사립대학이 많다. 한 학년의 정원이 4천을 넘는 곳도 여럿 있다.

어떻게 이것이 가능한가? 위에서 언급한 두 가지 조건과는 정반대의 방향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즉 하나는 소규모의 토론식 혹은 집중훈련식 수업이 아니라 대형 강의식 수업에 많은 학생들을 밀어 넣기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많은 수의 수업을 전임교수가 아닌 임시고용의 시간강사가 아주 낮은 임금을 감내하면서 담당하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너무 늘어난 대학 입학정원을 물리적으로 줄이는 작업이 한창이다. 왜 이렇게 됐는가. 한마디로 量의 논리가 質의 논리를 압도해왔기 때문이다. 한국 특유의 문어발식 재벌처럼 힘 있는 대학들은 수의 확장에 골몰했고, 이에 많은 대학이 덩달아 따르면서 스스로의 자율을 포기한 상태를 자초한 것이다.

허남린 논설위원/브리티시-콜럼비아대·아시아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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