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8 07:00 (일)
슈퍼 태풍이 된 공학교육 혁신
슈퍼 태풍이 된 공학교육 혁신
  • 이덕환 논설위원/서강대·화학
  • 승인 2016.03.07 11:5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대학정론] 이덕환 논설위원/서강대·화학
▲ 이덕환 논설위원

공학교육 혁신이 전국의 모든 대학을 초토화시키고 있다. 연구·교육·산학협력·창업을 두루 잘하는 공대를 만들겠다는 혁신도 좋고, 분야별 인력 수급의 미스매치를 해결하겠다는 혁신도 좋다. 그러나 교육부가 무차별적으로 밀어붙이면 사정은 완전히 달라진다. 오히려 대학의 혁신이 아니라 퇴화를 가속화시킬 수도 있다. 자율을 바탕으로 솟아나는 진정한 다양성을 추구하는 진짜 대학 개혁이 필요하다.

교육부가 졸속으로 밀어붙이고 있는 공학교육 혁신의 핵심은 ‘프라임 사업(산업연계교육활성화 선도대학 사업, PRogram for Industrial needs-Matched Education)’이다. 전공별 인력수급의 미스매치를 해결하는 공대 증원이 가장 시급한 당면 과제이고, 산학협력·융합·창업·맞춤형이 핵심 키워드다. 고용노동부의 어설픈 정책 참고자료를 엉뚱하게 대학 정원조정의 근거로 둔갑시켜버린 탓에 전국의 모든 대학이 진퇴양난의 늪에 빠져들고 있다. 달콤한 지원금을 함부로 포기해버릴 수도 없고, 부실한 구조조정을 무작정 밀어붙일 수도 없는 형편이다.

프라임 사업은 첫 단추부터 잘못 꿰어진 최악의 대학 정책이다. 정부가 끊임없이 변화하는 사회의 분야별 인력수급을 맞춤형으로 통제·관리하겠다는 생각은 근본적으로 잘못된 것이다. 획일적인 전체주의 국가나 신병훈련소에서나 가능한 발상이다. 기업이 대학 전공만으로 인력을 채용하는 것도 아니다. 융합을 강조하는 사회에서는 더욱 그렇다. 원전 산업계가 원자력공학과 출신만 채용해야 한다는 법도 없고, 원자력공학과 출신이라고 모두 원전 산업에 종사해야 한다는 법도 없다. 불합리한 입시 제도에서 선택한 전공에 과도한 의미를 부여해서도 안 되고, 직업 선택의 자유가 헌법에 보장된 기본권이라는 사실도 잊지 말아야 한다.

산학협력·창업·융합에 대한 발상의 전환도 필요하다. 그동안 대학에 쏟아 부은 엄청난 투자와 노력에도 불구하고 산학협력·창업·융합이 활성화되지 못한 이유를 정확하게 파악해야 한다. 대학이 아니라 기업과 사회의 현실에서 정책 실패의 원인을 찾아야 한다. 대학에게 모든 책임을 떠넘기기보다 기업 경영의 투명성·윤리성과 칸막이·패거리 문화를 개선하는 일이 훨씬 더 중요하다. 경직된 관료주의와 정책과잉의 현실도 확실하게 개선해야 한다.

烏飛梨落일 수도 있겠지만 미래부 공과대학혁신특위의 혁신방안과 작년 여름 서울대 공대가 떠들썩하게 내놓았던 자성론도 볼썽사나운 것이었다. 자칫 프라임 사업을 위한 멍석처럼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공대가 다른 분야보다 월등하게 많은 재정지원을 받았고, 특성화를 위한 수많은 제도 개선을 약속했던 사실도 잊지 말아야 한다. 연구중심을 지향한다던 대학이 느닷없이 산업 현장에 과도한 관심을 보이는 것도 어색하고, 공학교육의 모든 문제를 제도의 탓으로 돌려버리는 무책임한 자세도 실망스럽다. 공대에 모터·철강·플랜트 전문가가 없는 것은 스스로의 선택이었다. 한 대학의 공대가 모든 분야와 모든 기업을 상대해야 할 이유도 없다. 진정한 혁신은 스스로의 책임과 실수를 솔직하게 인정해야만 가능한 일이다. 정치인에게나 어울리는 무책임하고 선정적인 발언도 자제해야 한다.

우리의 경제 현실에 대한 분석도 황당하다. 우리에게 최근의 성장 둔화와 역동성 상실이 당혹스러운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고 모든 문제가 공학교육의 실패 때문이라는 진단은 설득력이 없다. 공학교육이 중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공학교육이 곧 경제일 수는 없다.

프라임 사업은 공학교육의 퇴화를 초래하고, 진정한 융합의 기초가 될 인문·사회·자연과학 분야의 교육도 부실화시킬 것이다. 공대의 급격한 증원이 공학교육의 부실을 부추기고, 취업률을 떨어뜨리게 된다는 사실도 분명하다. 교육부도 이제 알량한 지원금을 앞세워 대학을 뒤흔드는 일은 포기하고, 산적한 교육 현안과 사회부총리의 업무로 돌아가야 한다.

이덕환 논설위원/서강대 화학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