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끊임없이 지배하려 ‘세뇌’ … 자신 위해 ‘맞설 용기’ 가져야
끊임없이 지배하려 ‘세뇌’ … 자신 위해 ‘맞설 용기’ 가져야
  • 서용좌 전남대 명예교수·소설가
  • 승인 2015.12.09 14: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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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용좌의 그때 그 시절 ⑧ ‘사페레 아우데’ 감히 알려고 하라
▲ 일러스트 돈기성

유난히도 빨리 가을이 저물었다. 사라져가는 가을 꼬리를 잡고 매달리면 수많은 가을들이 딸려 나온다. 1968년 베를린의 늦가을, 서른 살짜리 여성이 공식 석상의 단상에 걸어 올라가서 현직 수상의 뺨을 때리는 장면, 상상이나 할 수 있는 일인가. 만세 삼창처럼 ‘나치, 나치, 나치’를 외쳤다. 숨은 나치 전력자들을 찾아내어 진상규명(?)에 전력을 기울이는 활동가였다. 

당시 독일의 수상은 나치 12년 통치기간에 당원이자 전쟁 중엔 외무부 라디오 정책국 부국장으로 활동했었고, 패전과 더불어 체포돼 18개월간 수감된 전력이 있었다. 전후 독일, 서방측의 온건한 탈나치화 프로그램에서 4급 ‘단순 가담자(Mitlaufer)’ 판정을 받아 면책증명서를 지니고 새 인생을 시작한 식자층은 넘쳐났다. 

변호사, 기민연 연방의원을 거쳐 수상 직에 오른 65세의 거물 정치인에게 모욕을 가한 동기는 간단했다. 독일민족 일부는(특히 청년층은) 나치가 독일의 정상에 서있는 것에 반대한다는 것을 표현하고자 함이었다고. 순간 세상이 들끓었다. 

오늘 이 이야기는 그 정치적 동기와 파장을 해석하려는 것이 아니다. 한 작가가 그 여성에게 파리까지 붉은 장미다발을 보냈고, 다른 한 작가는 그 일을 비난했던 일을 말하고자 함이다. 꽃다발을 보낸 이유는 “작가로서의 행동의 철저한 연속선상에서, 1944년 공습에서 죽은 어머니, 나에게 나치를 증오하라고 심어주셨던 어머니 때문에, 또한 나의 세대, 살아남았지만 교사, TV편집자, 출판편집자 등의 직을 잃을까 염려해서 ‘꽃의 힘’으로 그 여성에게 공감을 표현할 수 없는 나의 세대 때문”이었다고 했다.(하인리히 뵐, <Zeit> 1969.1.10)

꽃다발을 보내 응원했던 하인리히 뵐도, 그런 ‘정신 나간’ 행위에 꽃다발을 보낼 하등의 이유가 없다고 선배를 비난했던 귄터 그라스도 공교롭게 후일 모두 노벨문학상을 수상하게 된다. 그러니까 어떤 계기에도 어떤 견해를 가질 수 있는 것이 사람이다. 그렇게 상반된 견해를 표출할 수 있는 곳이 살만한 나라다. ‘살만한 나라에서 살만한 언어를 추구’(뵐, 프랑크푸르트대학 특강 1964)했던 그는, 그라스 또한 사회적 이슈마다 자신의 의견들을 표명했다. 그래야 살만한 나라가 되기에. 

모르겠다, 왜 또 그 단어가 떠올랐는지. 그 여성이 숨은 나치들의 만행을 ‘진상규명’하고자 했었다는 글을 처음 봤을 때, 그 단어가 ‘계몽(Aufklarung)’과 동일한 단어여서 어리둥절했던 생각이 난다. 

그렇다. ‘사페레 아우데(Sapere aude) 감히 알려고 하라!’ 칸트가 호라티우스의 말을 빌려다가 계몽주의 표어로 쓴 이 말은 단순한 말이 아니다. ‘네 자신의 오성을 사용할 용기를 가지라!’ 철학용어 ‘오성(Verstand)’은 얼핏 봐서는 난해한 단어다. 비슷한 쉬운 말로는 지성이 가장 가깝다. 감성 및 이성과 구별되는 知力이니까. 그래서 감히 알려고 하라는 것이다.

또 실은 천년도 더 앞서서 공자도 앎을 중시했다. ‘免墻을 하려거든 시경을 읽어라!’ 공부를 해야 담벼락 보는 신세를 면한다고 했다. 예부터 아는 것이 중요했거늘. 시쳇말로, 알아야 면장을 하지! 덕분에 수도 없이 무조건 대학 진학을 했고, 먹물쟁이가 양산됐다. 그런 먹물쟁이를 배양하는 온실 속에서 계몽주의의 표어를 읽었다. 

사페레 아우데! 

무엇이 당대 사람들로 하여금 계몽사상에 열광케 했을까? 매년 학생들과 수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쉬운 말로 칸트를 인용하자면 이렇다. 계몽이란 인간이 자신의 잘못에서 비롯된 미성숙상태로부터 탈출하는 것이다. 미성숙상태란 다른 사람이 인도해주지 않으면 자신의 오성(지성)을 사용하지 못하는 무능을 말한다.

이 미성숙의 원인이 오성(지성)의 결핍에 있는 것이 아니고, 그것을 다른 사람의 인도가 없이 스스로 이용하겠다는 결심과 용기가 결핍된 때문이라면 이 미성숙상태는 철저히 자신의 잘못이다. 그러므로 네 자신의 오성(지성)을 사용하는 용기를 가지라! 

결론은 간단했다. 감히 알려고 결심하고 용기를 내라. 너의 오성, 이해력, 지성을 사용하라. 무엇을 위해서? 네 자신의 상태를 개선하기 위해서! 

마지막은 섣불리 이 부족한 선생이 덧붙인 내용이었다. 생명체라면 미물도 자신의 상태를 개선하고 자신의 유전자를 안전하게 복제 생산하기 위해서 분투한다. 알을 밴 모기는 거대한 인간의 피를 빨기 위해 죽을 각오로 덤빈다. 배불리 먹은 피 때문에 무거워진 그들은 더러는 인간의 손바닥에서 뭉개지고 만다. 유전자 복제생산이 불가능한 상황에 놓이느니 죽음을 불사하는 것은 그것이 생의 최고의 목표이자 최종 목표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모기를 불쌍해 할 것은 없다. 매년 7억명의 인간이 모기로 인한 질병으로 고생하고 그중 100만명 정도가 사망한다고 하니까, 모기란 것이 쉽게 볼 종이 아니다. 모기 종이 맛있고 영양가 높은 인간 종을 적절한 숫자만큼은 남겨서 미래의 식량으로 쓰려고 계획사육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이야기가 또 빗나간 것 같지만 실은 인간의 취약성을 말하고 싶다. 인간은 자연 상태의 동물에 비해 상당히 위축돼 왔다는 말이다. 자신이라는 개체가 도태되는 것을 의식하지 못한 채, 위대한 (그저 힘센) 영웅들의 가계가 수많은 밭을 통해서 복제되는 것을 인류를 위해서 당연시하면서 손뼉을 쳐왔다. 그것이 세뇌의 힘이다. 

사람들은 많은 것을 알 필요가 없었다. 높은 데서 내려오는 것을 믿으면 된다. 종교와 정치가 각각 두 개의 하늘이었다. 한쪽은 내세를 담보로, 다른 한쪽은 현세를 담보로 했다. ‘가난한 자에게 복이 있나니’라고, ‘일찍 일어난 새가 벌레를 잡는다’고 다그쳐왔다. 

지배자란 동서고금 우민정책을 편다. 유순할수록 좋고 어리석으면 더욱 좋다. 그러므로 계몽은 전략이 된다. 지배자와 지배구조에 대해 생각하고 비판하며 혹시 항거할 필요가 있다면 항거하는 조건이 된다. 그럼에도 지배자 집단이 늘 막강한 것은 대체로 세뇌돼 있는 피지배자 집단이란 ‘다른 상황’을 감히 알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계몽주의적 ‘무한진보’의 관념을 관철시키고자 프랑스혁명 당시 공교육에서 종교교육을 배제하려던 콩도르세의 교육관도 간단히 무산되고 말았다. 지롱드당은 죽어야 하는 정치판 때문이었다. 그가 꿈꾸었던 ‘부의 불평등과 조건의 불평등 그리고 교육의 불평등을 없애는 일’은 몇 백 년이 지나도 여전히 제자리걸음이다. 

자연이 모든 인간에게 똑같이 부여한 절대적 권리, 생존권과 행복추구권, 당시의 자연법 사상은 절대왕정과 귀족계급의 특권, 다른 한쪽으로는 종교적 도그마, 이 둘에 대한 투쟁의 성격을 배음으로 하고서 인간 본연의 권리를 갈구했다. 물질로서의 존재인 인간은 마땅히 자신을 보존해야 하고, 정신으로서의 인간은 이성(지성)을 통해서 완벽성과 행복을 추구한다. 그러나 계몽은 미완으로 남아있다. 물질의 부족으로 절대적 불행에 머무는 것, 물질이 풍요해지면 그럴수록 부족해지는 정신의 행복, 이것이 우리의 딜레마다. 

모기가 알을 배고서 죽음을 불사하고 인간의 피를 빨듯, 우리가 다음 세대의 자연스러운 발전을 위한다면 필사적으로 해야 할 일이 있다. 미래의 그들에게 ‘공정한’ 교육이라는 피와 양분을 물려줘야 한다. 우리가 무지한 채 그들을 세뇌할 일이 아니다.

▲ 서용좌 전남대 명예교수·소설가

앉아있으라… 하면 앉아있는 아이들. 더는 그럴 수는 없다. 세월호 참사엔 죄인 아닌 사람 없지만 교육도 큰 몫의 죄를 졌다. 광주엔 매달 첫째 월요일 ‘김원중의 빵 만드는 달거리 공연’이 있다. 8년 째라고 한다. 80번째 공연인 11월의 주제는 ‘가슴속에 맺혔던 원통함을 풀다’라는 뜻을 담은 ‘解寃’이었다. 

초대가수의 노래 중 어떤 가사가 귀에 박혔다. 보이는 것만 보고, 보여주는 것만 보고, 들리는 것만 듣고, 들려주는 것만 듣고…. 어느 것 하나 적극적으로 알려고 하지 않았던 태도에 대한 회한의 노래였다. 감히 알려고 해야만 한다. 그래야 이어서 행동도 한다. 살만한 나라의 살만한 내일을 위해서. 

사페레 아우데! 

서용좌 전남대 명예교수·소설가
전남대 독일언어문학과 교수로 재직하는 동안 하인리히뵐학회장, 한국독어독문학회부회장 등으로 활동했다. 『도이칠란트·도이치문학』등을 썼다. 퇴임 후 소설집 『반대말·비슷한말』, 장편소설 『표현형』 등을 내고 PEN문학활동상, 광주문학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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