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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의 정치
거리의 정치
  • 설한 편집기획위원/경남대·정치철학
  • 승인 2015.11.30 1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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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깍발이] 설한 편집기획위원/경남대·정치철학
▲ 설한 편집기획위원

대규모 집회가 열린 지난 14일 서울 도심은 격렬한 시위와 강경 대응으로 폭력이 난무한 무법천지의 아수라장이었다. 수많은 단체들이 반대와 투쟁의 목청을 돋우며 분노만 표출했다. 물리적 공방 속에 주요 의제들은 사라지고 ‘폭력시위냐, 과잉진압이냐’라는 논쟁만 남겼다. 모두의 마음속에 깊은 상흔을 새긴 채 승자는 없고 패자만 남은 너무나도 익숙한 시나리오였다. 분노와 저항의 시대는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거리의 정치’는 ‘일탈’인가, ‘정상’인가. 거리의 정치는 대의민주주의 체제에 기반한 정당정치가 갈등 조율과 민의 수렴의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 점에서 민주정치의 제도화 실패와 현 제도권 정치에 대한 불신임을 드러낸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리하여 일부에서는 거리의 정치를 정당정치의 후진성을 보여주는 것으로 규정짓거나, 무책임한 선동정치의 한 형태인 포퓰리즘으로 매도하면서, 거리의 정치가 제도정치?정당정치로 수렴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사실 한국정치의 현실을 보면 이러한 지적은 일견 타당한 면이 없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제도화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정치참여는 제도적인 정치 공간뿐만 아니라 비제도적인 공공 공간(public space)에서도 활발히 진행되기 때문이다. 삶은 추상적이지 않고 구체적인 것이다. 정치는 국민의 소리와 삶을 듣고, 보고, 체험함으로써 삶의 구체성을 반영해야 한다. 그래서 ‘정치는 거리에 있는 것’이다. 하지만 많은 정책결정이 충분한 사회적 공론화 없이 일방적으로 이뤄지는 현 정치구조에서 급격히 다원화된 시민사회의 요구와 이해가 제도적 통로를 통해 제대로 수렴?반영되기를 기대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런 점에서 시민들이 직접 행동을 통해 자신들의 요구를 표출할 가능성이 크고, 그만큼 거리의 정치가 확대될 가능성을 구조적으로 안고 있는 것이다.

우리 현대 정치사에서 거리는 지배 권력에 맞서 사회적 억압에 저항하는 정치투쟁의 장이자, 집단적 의사소통의 장으로서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거리의 정치는 일탈적이라고 보기 힘들 정도로 한국의 정치변화 과정에서 정치발전의 커다란 원동력이 돼왔다. 4·19혁명, 5·18민주화 운동 그리고 6월 항쟁 등으로 이어져 온 거리의 정치는 변화의 중요한 순간마다 큰 영향력을 미치며 역사의 전개 방향을 바꿔놓았다. 사실 한국 민주주의의 태생은 거리와 광장에서가 아니던가. 이런 측면에서 본다면 거리의 정치는 정당정치의 한계를 보여주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민주주의 발전이라는 측면에서 정당정치가 하지 못하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거리는 개방성, 다양성, 그리고 공공성을 특징으로 하는 공공재로서 거기엔 개개인의 다양한 경험과 정서, 욕망이 담겨 있다. 우리의 거리는 낭만과 저항의 거리에서 정치투쟁의 거리를 거쳐 소비문화의 거리로 변천해왔다. 이 거리는 놀이공간, 여가공간이기도 하며 정치공간이 되기도 한다. 그 어떤 특정 세력이나 권력도 거리를 독점할 수 없다. 公共이 주인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모든 국민에게 집회와 결사의 자유, 표현의 자유가 보장돼야 한다. 거리는 민주주의의 근간인 이러한 자유를 담보하는 최후의 보루다. 민주주의에서 거리는 그래서 중요하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고민해야 하나. 고비용·저효율의 ‘거리의 정치’를 답습할 것인가. 집회의 자유는 개인의 기본권을 넘어 민주적 공동체가 기능하기 위한 불가결한 근본요소다. 하지만 이 자유가 법적 평화와 공공의 안녕질서를 위협한다면 그건 한낱 방종에 지나지 않는다. 타인의 권리와 자유를 무시하는 비민주적인 ‘거리의 정치’는 그것을 가능케 한 바로 그 자유를 부정하는 결과를 낳기 때문이다. 4·19세대, 6·3세대, 5·18세대, 6·10세대가 태어난 그 거리에서 민주화 투쟁으로 지키고 키워온 자유가 부정돼서 되겠는가. 거리의 정치에도 格이 있어야 한다.

 

설한 편집기획위원 / 경남대·정치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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