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王命 앞에 눈이 다 따갑구나
王命 앞에 눈이 다 따갑구나
  • 서용좌 전남대 명예교수·소설가
  • 승인 2015.11.25 10: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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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용좌의 그때 그 시절 ⑦ 적상산 단풍
▲ 일러스트 돈기성

가을은 깊었는데 기차여행이라는 꼬드김에 넘어가서 단풍 구경을 나섰다. 기차가 달리는 동안 대체 이런 나들이가 얼마만인가 아득하다는 생각을 했다. 몇 번 안 되는 여행 중에 인상 깊기로는 단연 개성 방문이었다. 남북출입사무소에서 ‘출경’ 수속을 하던 일, 짐을 엑스레이로 통과시켜놓고 ‘녀자출구’에 섰던 기억이 새롭다. 검색대에 서면 사람들은 무조건 불안하다. 카메라는 따로 들고 서있어야 했는데, 배율을 확인받은 디카만 허용됐다.
언니 뭐해, 긴장되는 거야?

무슨, 나들이 나서니 개성 다녀온 일이 문득 생각나네. 가슴이 멍했어, 차창 밖 주민지구 집들이 2·3층짜리건 5층 아파트건 하나같이 파르르 얇은 종이박스 같은 인상이었어. 사람도 없이 텅 빈 창문들로 짐작해 보면 벽 두께가 겨우 마분지 두어 장이나 될까. 내 인상은 선입견 탓일 거라고 고개를 흔들었어. 그런데 첫 코스 박연폭포에 갔을 때도 이상했어. 관광객 말고 거기 사람들은 하나도 없었다니까. 다들 어디에 있었을까?

송도 3절 보고 왔으면 됐지, 웬 집 타령 사람 타령?

그렇기는 해. 선죽교 불그스레한 다리를 내 눈으로 봤으니. 고려박물관도 볼만 했어. 하필 거기 다녀온 달포도 못돼 개성방문길이 막혔잖아. 그때 학장이 고맙지, 사학과 교수였어. 참 그런데 덕유산과 적상산은 다른 거냐? 덕유산 찻길은 꽤 험했던 것 같은데….

다르니까 이름이 다르지. 

다르다는 적상산도 꼬불꼬불 버스를 타고 기어 올라가야 하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가슴 졸이며 도착한 그곳, 단풍은 아름다워야 할 시절에도 그리 아름답지 못했다. 본직이 농부라는 나이 지긋한 자원봉사 ‘가이드’씨의 말로는 여름 강수량 부족 때문이란다. 우리는, 인간은 우주에도 가는 실력에도 불구하고, 자연에다 대고는 단풍 색 하나 조절할 수 없다. 수력발전을 위한 넓은 인공호수 주변에 단풍들과 푸른 소나무가 함께 하고 있었다. 솔이 의연하구나…. 그런 인상이 너무 강렬해서 단풍구경을 온 것이 뜨악해졌다. 그러다 단풍 대신 훨씬 반가운 옛날을 만나게 될 줄이야. 

전망대까지 다녀오라는 자유시간에 그 멀리까지 서두를 필요를 못 느끼고 슬슬 거닐다가 뜻밖에 횡재를 했다. 안국사 길 초입에서 우연히 마주치게 된 조선왕조실록들, 비록 복본이라지만 역사가 글자 안에 살아 숨 쉬고 있었다. 

임진왜란 이후 『조선왕조실록』은 하나 남은 전주본 원본과 교정인쇄본을 합쳐 다섯 부를 만들어 춘추관, 마리산, 태백산, 묘향산, 오대산에 각각 보관했다고 한다. 후금이 세력을 떨치고 묘향산본의 관리가 위태로워지자 광해군 6년에 적상산에 실록전을 건립해 옮기기 시작해서 인조 11년까지 20년에 걸쳐 이들 모두를 옮겼다고 한다. 실록 824책을 포함해 선원록이며 의궤는 물론 잡서까지 5천권이 넘는 이 서책들의 운명은 국운을 따랐다. 

일제는 이를 규장각으로 옮겼고, 6·25전쟁 때는…. 다행히 소실된 건 아니고 북한으로 반출돼 김일성대학 도서관에 보관 중이란다. 하지만 『조선왕조실록』 34권과 왕실 족보 『선원록』 5권이 거기 그렇게 비치돼 있었다. 해발 900미터 산정에, 복본이면 어떠랴. 

태정태세문단세 예성연중인명선 광인효…….

▲ 서용좌 전남대 명예교수·소설가

이 실록전을 짓기 시작했던 광해군의 치적은 정작 『실록』이 아닌 『일기』로 남은 것이 역사의 아이러니다. 되돌아보면 실록이란 무서운 것이다. 사초 문제로 무오사화가 일어나기도 했고, 당쟁의 결과로 수정본이 쓰여서 『선조수정실록』 『현종개수실록』 『경종개수실록』 등이 있다잖은가. 선조들은 이 수정본과 정본을 함께 간직해왔음에서 우리가 배울 것은 크다. 역사를 하나의 눈, 특히 왕의 눈으로 보아서는 안 된다는 정설을 조선왕조실록은 가르치고 있다. 아주 의연하게. 

이 가을, 적상산에 실록전 첫 삽을 뜬 후 꼬박 500년이 흘렀다. 앞으로 또 500년이 흐른 뒤에 오늘은 어떤 역사로 기록돼 후세들의 눈앞에 드러날까. 역사교과서 국정에 반대하는 ‘혼이 비정상’인 사람들이랑 쌀 수입 반대하는 농민들이 운집한 집회에서 C18H27NO3라는 물질의 물대포가 분사됐다고 기록되게 생겼으니 어쩌나. 딱히 비관주의자는 아니지만, 50년 이후나 500년 이후나 미래는 참 두려운 존재다.

서용좌 전남대 명예교수·소설가
전남대 독일언어문학과 교수로 재직하는 동안 하인리히뵐학회장, 한국독어독문학회부회장 등으로 활동했다. 『도이칠란트·도이치문학』등을 썼다. 퇴임 후 소설집 『반대말·비슷한말』, 장편소설 『표현형』 등을 내고 PEN문학활동상, 광주문학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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